醫 판정 불일치로 인한 법적책임 우려…복지부 "불법 없다면 책임지는 일 없을 것"

오는 5월 30일부터 '정신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안이 시행되지만, 정작 논란이 되고 있는 입원판정을 위한 인력 확보나 매뉴얼조차 마련되지 않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정신과 전문의들은 법 개정으로 인해 환자 및 환자 보호자들에 의한 강제입원 소송 등 법적 책임 등에 휘말릴 것을 우려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5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정신의료기관 관계자를 대상으로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보건복지부 정신건강정책과는 대전에 이어 지난 25일 서울시청에서 서울시 소재 정신의료기관 관계자 80여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복지법 주요내용’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복지부는 현재 정신의료기관에 일정기간 이상 입원하는 환자 수는 8만명, 이중 비자의 입원환자를 70% 정도로 추정했다. 특히 정신과는 입퇴원을 반복하는 특성을 감안하면 환자 1인당 평균 1.7회 입원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정신건강복지법이 개정되면 입원 3개월 이후 6개월 단위 입원판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1년간 입원판정건수는 평균 15만~16만건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병식이 있는 환자는 자의나 동의입원으로 입원형태가 전환될 수 있어 연간 13만건의 입원판정이 필요하다는 게 복지부 판단이다. 일주일 단위로 한다면 평균 2,700건의 입원판정이 필요한 셈이다.

이에 복지부는 오는 5월부터 입원판정건수가 다소 늘어날 것으로 판단하고 입원판정을 할 수 있는 전문의 수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현재 대안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는 국공립 정신의료기관의 전문의가 입원판정을 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행자부에 국공립의료기관의 전문의 TO를 늘릴 수 있도록 협의 중에 있다. 2월 초까지는 몇 명이 충원할지 답변을 듣고 기재부 예산이 나오면 3~4월에 채용을 할 것”이라며 “하지만 행자부 조율 결과가 늦어질 수도 있어 민간 의료기관을 지정해서 커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을 것이다. 민간의 경우 적절한 비용 보전이 가능하도록 수가(환자당)를 산정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비자의 입원시 입퇴원관리전산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다.

이 시스템은 입원판정이 필요한 환자가 발생할 경우 3일 이내 해당 의료기관에서 시스템을 통해 신고를 하면 소속이 다른 전문의를 자동으로 선정, 2차 입원판정을 가능하도록 하는 형태다.

복지부 관계자는 “현재 입원판정 등에 대한 매뉴얼을 준비하고 있다. 3~4월에 지자체별로 다니면서 매뉴얼 교육을 진행해 현장에서 차질없이 시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4개월 남겨놓고 아직도 매뉴얼이 없다? 현장 우려 속출

하지만 이에 대한 정신과 전문의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일각에서는 4개월 남짓 남은 이 시점에서 TO가 확보된다고 해도 채용이 어려울 수 있으며, 입원판정제도로 인해 법적 책임 논란이 커질 수 있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A의료기관 관계자는 “현재 국공립 정신의료기관에서 입원 판정을 하러 올 수 있는 의사가 있냐”면서 “당장 5월부터 시행인데 4개월 남겨놓고 입원판정을 할 수 있나. 입원 진단을 할 때 수가를 3만원 준다는 말도 있다. 국가에서 할 일을 민간에 미루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B의료기관 관계자도 “국공립 의사가 (필요한 만큼) 충원될 거라 믿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민간인 우리병원에게) 참여를 할지 (정부가) 물어보면 ‘예’라고 말할지 ‘아니오’라고 할지 고민된다”고 말했다.

C의료기관 관계자는 “이번 법 개정으로 정신질환자의 범위가 정신병상 증상은 없지만 자타해 우려가 있는 경우도 포함됐다. 이에 많은 보호자들이 알코올 중독자 등이 입원하지 못할까봐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서 “또 한 의사가 입원이 가능하다고 진단했다가 다른 기관 전문의가 다르게 진단해 문제가 생기면 전문의 간에도 법적 다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D의료기관 관계자도 “비자의입원시 전문의의 권고 이후 2주간 진단입원을 하게 되는데 만약 2주내에 처리가 안되고 지연될 경우 법적 책임은 누가 지게 되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100% 확답을 할 수는 없지만 전문가 자문을 구한 경우 전문의가 비대면 진료 등의 불법적인 요인이 없다면 책임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난 2015년 10월 판례를 예로 들며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최선의 진료를 하지 않았다(퇴원 후 사고 발생 등)고 해도 전문의로서 전문적 판단을 한 것이기 때문에 법원에서 전문성에 대한 다른 판단을 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2~3명에게 법률 자문을 받았을 때 (의사에게 책임이 없다)고 한다. 미국, 캐나다, 대만, 영국, 프랑스 등도 모두 환자 인권을 위해 한명 이상의 전문의의 소견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대법원 판례가 나와있지 않아 무엇도 100%라고 말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입원 판정 불일치로 인해 환자를 퇴원시켰을 때 발생한 사고의 법적 책임 소지'에 대해 “오히려 국가에서 책임소지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다. 전문의가 공무를 수행한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책임을 질 수 있다”고도 했다.

이외에도 참석자들 중에서는 민간의료기관을 지정해 입원 판정을 할 경우 담합의 소지가 있고 외국처럼 2명의 전문의 진단이 대다수 일치한다면 불필요한 행정 부담만 준다고 없애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E의료기관 관계자는 “입원판정 등 매뉴얼이 나오고 제도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하고 있어도 늦은 시간인데 아직도 나오지 않고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너무 늦다. TO를 확보한다고 해도 근무여건이 열악할 것인데 인력이 충원이 될까”라고 반문했다.

이 관계자는 “의사들이 소송을 당할 개연성이 충분한 상태에서 이대로 법을 시행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면서 “실제 이 법이 시행될 경우 발생할 문제점을 감안하고, 입원적합성심사처럼 1년간 유예기간을 두는 등 지금이라도 문제가 있는 법은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자체에서 정신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설명회와 간담회 등을 개최하며 지정의료기관 신청을 독려하자 부당한 압력이 있을 경우 제보 해달라고 회원들에게 공지했다.

학회 관계자는 “아무래도 의료기관은 지자체의 권고 등을 무시하기 어렵다. 때문에 일선에서 많은 부담감을 가지고 있다”면서 “이 과정에서 부당한 압력을 받을 경우 사례를 모아 올바른 정책 시행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에 의견을 제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