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 유전학클리닉 손영배 교수

갑갑한 시국이지만,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희귀질환관리법’이 시행(2016년 12월 30일)된 것이다.

희귀 난치성 질환에 대한 국가적 지원체계 마련을 위해 제정된 희귀질환관리법은 ▲희귀난치질환 관리위원회 구성 ▲희귀질환 관리 종합계획 수립 ▲희귀질환 치료제 개발 및 공급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아주대병원 유전학클리닉 손영배 교수

이름 모를 병으로 진단부터 치료까지 오랜 시간 고통 받아온 희귀질환자와 가족, 그리고 환자 가장 가까이에서 질병과 함께 싸우는 의료진에게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전 세계적으로 현재까지 진단된 7,000여의 희귀질환 중 치료제가 개발된 것은 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리소좀 축적 질환(Lysosomal storage disorders, LSD)인 고셔병(Gaucher disease)은 전 세계적으로 인구 4만~6만명당 1명꼴로 발생하며, 국내 환자는 50여명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고셔병은 초희귀질환이지만 다행히 연구가 꾸준히 계속돼 환자의 치료 편의성을 높인 경구용 치료제가 개발됐다. 지금까지 고셔병은 주사로 결핍된 효소를 공급하는 효소대체요법(Enzyme replacement therapy, ERT)을 표준 치료요법으로 사용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최근 합성효소를 억제해 분해해야 하는 기질의 양을 미리 줄여주는 기질감소치료제(Substrate reduction therapy, SRT)가 개발된 것이다.

새롭게 개발된 약은 무엇보다 환자가 병원에 갈 필요 없이 편하게 복용할 수 있는 경구제라는 것이 장점이다. 기질감소치료법(제품명 엘리글루스타트)가 효소대체요법 대비 비열등하다는 연구 결과도 대한의학유전학회 ‘Journal of Genetic Medicine’에 발표됐다.

필자는 해당 연구에서 기질감소치료법에 대한 문헌 검토를 통해 국내 고셔병 환자와 의료진의 치료 옵션 선택에 지침을 제시하고자 했다.

효소대체요법과 기질감소치료법을 비교한 2개의 연구를 고찰한 결과, 각각 간 및 비장 크기 감소, 헤모글로빈 수치와 혈소판 수치가 개선됐으며 glucosylsphingosine와 CCL18 등의 관련수치가 감소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기질감소치료법이 기존 효소대체요법과 치료 효능에서 큰 차이가 없었다. 검토한 연구 수가 제한적이기는 하나 아직 국내 기질감소치료제 사용 경험이 있는 임상의가 극소수라는 점에서, 향후 국내 고셔병 치료가이드라인 개정 등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치료법의 선택은 환자의 특성과 상태, 기저질환의 여부 등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임상현장에서는 건강보험 급여라는 제한 때문에 최선의 치료를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고셔병 치료의 새로운 기준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기질감소치료법 역시 건강보험 급여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하다.

단 수십 명의 환자라 하더라도 실제 병을 앓고 있는 환자와 환자를 돌봐야 하는 보호자들에게는 한 가정의 삶의 질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수도 있다. 효소대체요법은 2주에 한 번 내원해야 한다는 제한이 있어 환자들은 사회생활이나 학업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보호자가 함께 동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환자는 물론 가족 전체의 삶의 질(QOL)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때문에 새로운 치료 선택권은 환자와 환자 가족 모두의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 삶의 수준을 혁신적으로 바꾸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올해부터 시행되는 ‘희귀질환관리법’은 그간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희귀질환의 치료에 신호탄이 될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한 ‘치료 접근성 확대’다.

이미 시장에 도입된 혁신적인 치료제를 공급하고 환자들의 치료 보장성을 강화를 포함해 환자의 치료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기점으로 우리나라 약 50만 명의 희귀질환자의 치료 선택권 보장을 위해 치료제의 접근성이 향상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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