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영의 모노태스킹

최근 세브란스병원은 “진료통계 20년 보고서”를 발간했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1년간의 각종 진료통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자다. 단일의료기관의 20년 의무기록이 정리되어 공개된 것은 국내 최초다.

180쪽에 이르는 보고서를 훑어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초대형 대학병원 한 곳의 자료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 동안 보건의료 분야에 얼마나 큰 변화가 있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는 데이터가 많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역시 고령화다. 연령별 퇴원환자 수를 보면, 80세 이상 퇴원환자 수가 1995년에는 375명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4,438명으로 12배 가까이 늘었다. 80대 이상 환자가 전체 퇴원환자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0.9%에서 4.1%로 4배 이상 늘었다. 70대 퇴원환자 수도 7.5배, 그 비율도 3배 늘었다.

수술 건수도 마찬가지다. 1995년에는 80세 이상 수술 건수가 124건(0.7%)에 불과했지만, 2015년에는 1,393건(2.9%)으로 크게 늘었다. 70대 수술 건수도 같은 기간 741건(4.4%)에서 6,454건(13.5%)로 급증했다.

우리나라 총 인구 중 65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1995년의 5.9%에서 2015년 12.6%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노인 환자의 증가 추세는 무서울 정도다. 2030년이 되면 65세 이상 노인의 비율이 2015년의 거의 두 배 수준인 23.1%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전망을 생각하면, 고령화로 인한 의료비 부담이 얼마나 심각해질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로 눈에 띄는 변화는 평균 재원일수의 감소다. 1995년 세브란스병원 입원 환자의 평균 재원일수는 12.5일이었지만, 2015년에는 7.0일까지 줄어들었다. 다른 OECD 국가들에 비해서는 여전히 긴 편이지만, 의료서비스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평균 재원일수의 감소는 긍정적인 신호로 보인다.

2013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입원 환자의 평균 재원일수는 16.5일로, OECD 평균(7.3일)의 2.3배에 달한다. 앞에서 살펴본 고령화 추세를 함께 고려할 때, 평균 재원일수를 끌어내리는 과제가 점점 더 중요하다고 하겠다.

세 번째로 눈에 띄는 것은 2000년 의료대란의 충격이다. 대부분의 연도별 통계에서 2000년 수치는 ‘아웃라이어’로 나타나고 있다. 보고서 어디에도 해설이 붙어 있지 않지만, 얼핏 보아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2000년의 수치들은 모두 격렬했던 의사 파업의 결과임이 틀림없다.

세브란스병원의 연간 퇴원환자 수는 1995년 42,311명에서 2015년 107,419명으로 매년 꾸준히 증가했지만, 유일하게 2000년에만 전년 대비 16%나 감소했었다. 수개월에 걸쳐 강도 높은 파업이 벌어졌으니, 진료 실적이 낮게 나온 것은 당연한 결과다.

흥미로운 것은 거의 매년 감소 추세였던 평균재원일수가 2000년에는 오히려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파업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중환자들만이 병원에 남아 있었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사망률 관련 통계도 마찬가지다. 세브란스병원의 환자 사망률은 20년 내내 비슷한 수준(조사망률 1.5~2.0%, 순사망률 1.3~1.7%)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유독 2000년에는 조사망률 2.3%, 순사망률 2.0%로 매우 높게 기록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두고 ‘파업으로 인한 환자 사망 증가’로 섣불리 해석해서는 곤란하다. 조사망률은 ‘사망환자수/퇴원환자수’, 순사망률은 ‘48시간 이후 사망환자수/(퇴원환자수-48시간 이내 사망환자수)’를 계산한 다음 각각 100을 곱해서 산출하는 것으로, 분모에 있는 퇴원환자수에도 큰 영향을 받는다. 분모가 작아져서 비율이 높게 나왔을 개연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실제로 2000년의 사망환자 절대수는 48시간 이내든 48시간 이후든 전후 연도들과 비교하여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비록 짐작일 뿐이지만, 파업 기간 중에도 중환자들에 대한 진료는 그나마 정상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통계다.

병원 측은 이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연구, 교육, 정책 등 여러 분야에서 다양하게 활용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 외에도 이 보고서는 다양한 데이터들을 담고 있어서, 다른 병원들의 경영 분석이나 전략 수립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병원의 데이터만 정리해도 이렇듯 여러 의미가 있다. 건강보험공단이나 심사평가원이 보유한 막대한 자료들은 잘만 가공되면 훨씬 더 큰 통찰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비슷한 사례가 없을 정도로 가치 있는 우리나라의 보건의료 데이터들에 대한 연구자들의 접근성이 더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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