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정신의학회 '일일이 바꾸기도 어려워 전면개정 밖에 답 없다"
법률 자문 등 학회 TFT 기금 마련...유관 단체와 연대 활동도 불사

'건강증진 및 정신질환자 복지서비스 지원에 관한 법률(이하 정신건강복지법)' 시행이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일선 정신과 의사들은 말도 안되는 법이라며 전면개정을 위한 연대에 필사적이다.

특히 “세상 어디에도 이러한 법은 없다"며 "문제점을 지적하자면 한두 개가 아니어서 일일이 바꾸기조차 어렵다. 사법입원제도로의 전면 개정 밖에 답이 없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지난 14일 그랜드힐튼서울에서 '춘계학술대회 및 제60차 정기총회'를 열고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에 대한 설명회를 가졌다.

제의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동우 교수는 "학회 정신건강복지법대책TFT는 그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따라 정부의 법 시행령·시행규칙, 매뉴얼 작업에 협조해왔지만, 정부는 2인 전문의 진단 등재개정에 대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고 있다"며 "앞으로는 정부 협조를 거부하고, 법안 재개정을 위한 대응 로드맵을 만들어 지부학회와 TFT 협의체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우선은 14일 마감되는 민간병원 2인 진단 참여를 학회 차원에서 거부하고 국공립병원 2차 진단의사 또한 입원적합성심의위원회 소속으로 둬 법적 보호를 강화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이날 설명회에서는 법 자체의 문제점과 모순점으로 5월 30일 이후에는 대혼란이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신경정신의학회 이명수 정신보건이사(용인정신병원)는 “제도 자체는 논리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원을 못하거나 빨리 퇴원해야 하는 환자가 부득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지금 개정안은 정신의료기관과 정신요양원 입소기준이 동일하고 법적 책임성은 부재한 데다 과도한 벌칙과 기준만 있다. 인프라, 시스템, 인력, 프로그램 등 온통 부족하다”면서 “제도에 문제가 있으면 환자의 건강권과 생존권에도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세계 추세라고? 그 어디에도 이런 나라 없다”

복지부의 주장과 달리 전 세계에서 찾아볼 수조차 없는 ‘개념없는 법’이라는 비판까지 나왔다.

울산의대 김창윤 교수는 최근 복지부가 언론을 통해 ‘입원요건 2가지 충족에 대한 WHO의 지지, 미국·영국·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세계적 추세’라고 강조한 부분을 조목조목 짚으며 언론과 국민을 기망했다고 주장했다.

김창윤 교수는 “개정법의 강제입원 요건은 치료필요성과 자·타해 위험성을 모두 만족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치료적 관점에서 보면 위험성 기준을 없애야 한다”면서 “정부가 주장하는 미국이 대부분의 주에서 자·타해 위험이 입원 기준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기에는 중증장애에 대한 개념을 도입해 입원이 필요한 환자를 보완하고 있다. 실제로도 판사가 상식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경우를 판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심지어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국은 ‘치료 필요성’만 기준으로 두고 있으며, 제3자 입원제도가 있는 프랑스도 자·타해 위험으로 제한하지 않고 치료 필요성을 기준으로 한다”면서 “정신보건법이 잘 돼 있는 나라 중 하나인 호주나 탈원화 모범국가인 이탈리아에서 치료 필요성을 기준으로 두는데, 이탈리아는 오히려 위험 기준이 환자를 낙인한다는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EU 27개국 중 자·타해 위험, 치료필요성 기준을 모두 충족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 나라는 없으며, WHO 정신보건법에도 '위험성 and/or 치료필요성‘은 'or(또는)’의 개념으로 봐야한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이외에도 ▲형식적인 입원적합성 평가 ▲2주 진단 입원제도의 모호한 기준 ▲적합성 판정과 별개인 2인 교차 진단 ▲입원 판단 기간 문제 ▲보호자 2인 충족 요건 등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금 법은 일일이 바꾸기에는 문제가 너무 많다. 결국 사법입원으로 전면개정을 하는 수밖에 없다”면서 “아예 사법입원제도로 바꿔서 법으로 입원 적절성을 판단해야 한다.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의 치료받을 권리를 제한하면서 인권보호 기능까지 미흡해 환자, 보호자, 의사 모두를 만족하기 어려운 법이라면 시행방안을 달리하거나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울산의대 김창윤 교수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서 '개정 정신건강복지법의 철학과 재개정 방향'을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벌써부터 부작용 속출...정부 및 경영진 압박, 담합 의심도

벌써부터 의료현장에서는 경영진이 행정처분 등에 대한 압박을 받거나 공보의 근무지를 전환하는 등의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심지어 입원적합성 판단을 위해 평소 불법행위 등 문제가 있던 정신병원들이 담합하는 정황도 포착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희의대 백종우 교수는 “일부 병원들에서는 행정처분을 언급하며 진단기관 신청을 하라는 압박을 받고 있으며, 같은 재단에서 상호 2인 진단을 할 수 있도록 담합하려는 정황도 보인다"며 "평소 문제가 있던 기관에서 지정기관 신청에 적극 참여하려는 것 같고 일부에서는 취약의료지역의 공보의를 2인 진단을 위해 국립병원으로 배치하려고 하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지난 1월 개정안대로라면 4만여명의 정신질환자가 퇴원할 것이라며 2인 진단의 문제점을 지적했더니 복지부에서는 2명의 전문의 진단을 받을 수 없으면 2주 연장, 연장할 때에도 부득이한 경우 같은 정신의료기관 소속 2명 이상의 전문의 소견이 있으면 되도록 시행규칙을 개정했다”면서 “이는 잘못된 모법에 대안이 없다는 것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복지부는 입원적합성 판단시 개별 의사가 아닌 국립병원장의 이름으로 최종 통지가 갈테니 문제없다고 말하지만 최근 모 국립병원에서 자의입원환자의 의무기록을 안남겼다는 감사 지적을 받은 후 병원이 진료 당시 병원장과 주치의 3명을 고발하는 사건이 있었다”면서 “이 사례만 보더라도 1차-2차 진단의사의 판단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학회는 TFT의 활동을 강화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회원들을 대상으로 법률 자문 등 TFT 활동에 필요한 기금 후원을 시작해 3,200만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이미 전국지부학회에 책임자를 선정해 전국상황을 실시간 파악하는데 나섰고 법적 자문을 통해 학회 행동을 뒷받침하는 한편, 원포인트 개정안 추진, 각 대선후보 및 정당에 질의서 발송, 기금모금 등을 순차적으로 실행하고 있다.

특히 학회는 14일 대한간호협회 정신간호사회,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신보건센터협회, 한국사회복귀시설협회,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사협회, 한국정신보건사회복지학회, 한국정신보건전문요원협회 등과 함께 ‘제대로 된’ 인권보장과 ‘제대로 된’ 탈수용화를 위한 공동성명서를 발표하는 등 정부를 압박할 계획이다.

지난 13일 그랜드힐튼서울에서 열린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학술대회에는 개정 정신건강복지법 설명회를 듣기 위해 많은 의료진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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