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 책임 인정한 항소심 판결 파기 환송…"처치했더라도 악결과 예방·회피 단정 어려워“

분만 후 경과 관찰과 검사 등을 소홀히 했다며 항소심에서 억대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된 산부인과 의사들이 대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상고한 끝에 승소했다.

대법원 제1부는 신생아 A씨와 그 부모(B씨, C씨)가 의사 D씨와 E씨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D씨와 E씨가 A씨 등에게 2억1,27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한 항소심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지난 2009년 A씨를 임신한 C씨는 D씨가 운영하는 병원에 내원해 E씨로부터 정기적인 산전 진찰을 받았다.

하지만 출산을 앞두고 한 검사에서 태아의 머리 크기가 작고 예상 체중이 적다는 결과를 확인한 E씨는 C씨에 대해 유도분만을 하기로 결정했다.

2010년 8월 15일 C씨는 유도분만을 위해 병원에 입원했고 E씨는 C씨에게 16일 오전 7시부터 분만촉진제인 옥시토신을 투여하며 유도분만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결국 E씨는 17일 오후 제왕절개를 통해 A씨를 분만시켰다.

A씨는 출생 직후 울음소리가 약하고 청색증 소견이 있었으나 양압환기법을 통해 산소 공급을 시행하고 자극을 주자 청색증 소견이 호전되면서 자가 호흡이 돌아오고 활동성이 활발해졌다.

이후 측정한 활력징후는 심박동수 163회/분, 호흡 49회/분, 체온 36.9℃로 특별한 이상은 없었으며, 반응검사도 정상이었다.

하지만 다음날 오전 10시경 A씨는 아무런 자극이 없음에도 양손과 양발을 까닥거리고 입을 계속 오물거리는 경련 증상을 보였다.

이를 발견한 의료진은 급히 A씨를 인큐베이터로 옮겼고, 처치 후 곧바로 상급병원인 F병원으로 이송했다.

A씨는 F병원에 도착한 후에도 경련과 청색증을 보였으며, 이에 F병원 의료진은 항경련제와 칼슘을 투여하고, 산소와 수액을 공급했다.

하지만 A씨에게 무호흡과 청색증이 계속되자 F병원 의료진은 A씨를 G대학병원으로 전원했다.

G대학병원 도착 당시 A씨는 빠는 힘과 활동성이 저하돼 있었고, 후두음이 없었다. 다음날 진행한 뇌 MRI 검사 결과, 양측 대뇌에 아급성 단계의 다발성 뇌실질출혈 및 우측 뇌실내출혈이 관찰됐다.

이후 A씨는 H대학병원에서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았지만 현재 인지, 언어, 대근육, 소근육 등 모든 발달이 지연된 상태로 향후 기립, 보행, 식사 등 일상생활 동작 수행장애와 언어장애, 인지장애, 운동장애 등이 예상되는 상태다.

이에 A씨의 부모는 “C씨가 협골반(closed narrow pelvis)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D씨가 무리하게 유도분만을 시도했다”면서 “또 출생 당시 울음소리가 약하고 청색증이 나타난 상태였음에도 정상 신생아와 같이 조치했고, 경련이 발생했음에도 이를 수 시간 동안 방치해 A씨가 뇌성마비에 이르렀다”며 12억9,000만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A씨 측의 주장에 이유가 없다며, 의사들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E씨는 C씨를 진찰한 다음 태아의 머리 크기가 임신 경과에 비해 작고 예상 체중도 크지 않아 C씨의 골반이 작더라도 자연분만을 실시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판단했다”면서 “이와 같은 E씨의 판단에 잘못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유도분만이 실패해 제왕절개 수술에 이르게 됐지만, 이는 C씨의 자궁 개대가 원활하지 않고 태아 머리 선진부 하강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으로, E씨는 즉시 아두골반불균형을 진단하고 제왕절개 수술을 실시했다”면서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봤을 때 E씨가 C씨에 대해 자연분만을 시도한 것 자체가 잘못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판시했다.

분만 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A씨가 출생 직후 청색증 소견을 보이기는 했지만 일시적인 산소공급만으로 빠른 회복을 보였고 다른 특이사항도 없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D씨와 E씨가 A씨에 대해 신생아 집중관찰 등을 하지 않은 것에 과실이 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1심 판결에 불복한 A씨 측은 항소했고, 2심 법원은 D씨와 E씨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출생 이후 A씨에 대한 경과관찰을 소홀히 했다며 주의의무 위반을 인정한 것이다.

법원은 "출생 직후 하루 동안 다른 의료진이 4차례 활력징후를 확인한 것 외에 약 24시간 동안 담당의사가 대면진료를 했다거나 추가적인 검사를 시행했다는 증거가 없다"면서 "A씨에 대한 경과 관찰 및 적절한 검사와 처치를 소홀히 한 잘못이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했다.

법원은 이어 "이미 발생한 뇌실내출혈에 대한 응급조치 방법이 없더라도 신생아 경련을 치료하지 않으면 2차 병인이 유발되므로 항경련제로 이를 조절해 2차 뇌손상을 줄여야 했다"면서 "D씨와 E씨가 항경련제를 투약하는 등의 조치를 취했더라면 인지·언어·대근육·소근육 등 모든 영역에서의 발달 지연 등 악결과가 발생하지 않았거나 악결과가 악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뇌실내출혈이 발생한 원인이 명확하지 않고, 선천적 소인에 의한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분만방법 및 분만과정에서 의료진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려운 점, 의료진이 청색증을 발견한 이후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고 지체없이 상급병원으로 전원한 점 등을 종합했을 때 D씨와 E씨의 책임 범위를 20%로 제한한다”면서 2억1,270만원을 배상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D씨와 E씨는 대법원에 억울함을 호소하며 상고했고, 대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항소심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A씨의 악결과는 뇌실내출혈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설령 D씨와 E씨가 A씨의 경련을 조기에 발견해 항경련제를 투약했다고 하더라도 A씨의 악결과를 예방하거나 회피할 수 있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어 “A씨의 경련은 뇌실내출혈에 의한 것으로 이는 특별한 응급조치 방법이 없기에 다른 병원에서도 항경련제를 각각 투약했음에도 경련이 조절되지 않았다”면서 “A씨의 경련이 지속된 것은 항경련제를 투여하지 않았거나 뒤늦게 투여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뇌실내출혈에 대한 근본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이는 등 D씨와 E씨의 경과관찰 상 과실이 아니더라도 A씨의 악결과 발생은 피하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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