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양기화와 함께 가는 인문학여행 - 아프리카

나이로비 외곽도로변 풍경. 우리네 50년대 풍경이 이랬을까?

퇴근길 교통체증을 피해 외곽도로를 이용했는데도 왕복 2차선도로라서인지 자주 차가 밀리곤 했다. 납작납작한 건물들이 도로에서 상당히 떨어져 있어 나중에 확장공사를 할 때 수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혹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을 만나게 되는데, 아직 해가 남아있어서인지 손님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곳 사람들도 불금을 즐길까?

사파리 파크호텔은 나이로비 시내에서 15분, 조모 케냐타 국제공항에서는 30분 정도 떨어진 케냐산으로 가는 티카고속도로(Thika Highway)변에 있다. 식민지배 시절 영국군이 설립한 장교클럽이 있던 자리이다. 그곳에 스프레드 이글 호텔(Spread Eagle Hotel)이 들어서 케냐의 북부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묵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을 1974년 사파리 파크 호텔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리고 우리나라 파라다이스그룹의 투자로 1986년부터 1992년까지 대대적인 확장과 개축으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숲속에 숨어 있는 객실동(좌), 풀장과 카페테리아 등 부대시설(우) (김일환님 제공)

이윽고 버스가 사파리 파크호텔(Safari Park Hotel and Casino)에 도착했다. 호텔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이 마치 거대한 성곽 같았는데, 문이 열리고 버스가 호텔 경내에 들어서자 주변 풍경이 확 바뀐다. 마치 순간이동을 해서 열대의 밀림 속으로 들어서는 듯하다. 사파리 파크호텔은 아프리카적인 분위기를 잘 살린 호텔로 유명하다. 5만여평(202,342.8m²)의 넓은 부지의 숲을 잘 살려 2층짜리 방갈로형의 객실 건물 9개동을 배치하였다. 특히 경내의 모든 건물들은 초지지붕을 올리고 석회로 벽을 발라 아프리카의 전통 가옥을 연상케 한다. 원뿔형 건물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기다란 통나무들이 꼭짓점에 모이고 있어 아프리카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장방형건물은 중앙의 대들보를 향하여 서까래를 이은 우리나라의 전통가옥의 분위기가 나고 있다.

널따란 호텔 부지에 비하면 203개에 불과한 객실을 가진 이 호텔은 규모면에서는 다른 호텔들과 비교가 안되겠지만, 미국 조경 건축가협회가 ‘아름다운 정원’의 하나로 선정할 정도로 아프리카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코끼리(elephant) 얼룩말(zebra) 등 야생동물의 이름을 붙인 9개의 객실건물들은 자연과의 조화를 고려한 거리를 두고 있어, 독립공간을 확보하고 있는 것도 자연속의 여유를 즐길 수 있도록 한 배려라고 하겠다. 지금은 소유권이 파라다이스그룹에서 아랍자본으로 넘어갔다는데, 운영은 여전히 우리나라사람들이 하고 있다.

사파리파크호텔의 환영세레모니(좌), 로비의 거대한 코끼리상(중), 그리고 프런트 모습(우)

버스가 프런트 건물에 앞에 서자 북소리와 노래 소리가 낭자하게 울려 퍼진다. 성장한 마사이족사람들이 입구의 좌우로 늘어서 환영의 노래와 춤을 추고 있다. 아마도 단체로 숙박하는 경우에 제공되는 서비스인가 보다. 생각지 못한 환대에 쑥스럽게 로비에 들어서니, 로비 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코끼리상이 눈길을 끈다. 프런트 뒤로는 파라다이스그룹의 전락원회장이 바다낚시로 잡았다는 청새치 박제가 걸려있다. 프런트 위로 헤밍웨이홀이라는 이름의 라운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정원의 풍경이 그만이라고 한다. 이렇듯 아름다운 숙소지만 다 저녁에 들어서 새벽같이 떠나야 하는 일정이 야속하다. 숙소에 들어 짐을 풀어 정리하다보니 벌써 어둠이 내려 호텔의 정경을 제대로 감상할 기회가 없다.

야마초마 렌치(좌)와 야마초마 메뉴(우) (김일환님 제공)

저녁식사는 8시부터 시작했다. 케냐사람들의 국민 요리라는 야마초마가 오늘의 저녁메뉴이다. 아프리카 사람들의 현지식은 대부분 숯불에 까맣게 익힌 것들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도 야마초마(nyama choma)는 스와힐리어로 고기를 의미하는 야마와 불을 의미하는 초마가 결합한 단어이다. 우리식으로 하면 숯불바비큐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식당입구에 있는 야마초마 렌치에서는 각종 고기들을 꿴 쇠막대기들이 숯불 위에서 돌아가고 있는데, 이렇게 구운 고기를 막대기채 식탁으로 가져와서는 칼로 잘라 접시에 담아준다. 마치 브라질의 츄라스코와 같은 요리방식이다. 렌치 옆에 서 있는 메뉴판에는 돼지, 닭, 양, 소, 타조 등과 같이 익숙한 동물도 있지만, 낙타, 악어 등과 같은 생소한 이름도 있다. 나중에 식탁에 가져온 고기 중에는 맷돼지도 있었다. 대부분의 고기들은 너무 익힌 탓인지 아니면 풀만 먹여 키운 탓인지 식감이 딱딱하거나 질긴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마블링이 많아야 고기가 부드러워지는데, 사료를 먹여야 생기는 것이고 이 부분이 지방질이라는 점에서 보면 미감은 좋지만 건강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겠다.

식사를 하는 동안 식당 안쪽에 있는 작은 무대에서 밴드가 연주와 노래를 들려준다. 연주하는 노래들은 우리가 모르는 것들도 있지만, 때로는 라틴분위기가 나는 노래도 있고, 카펜터스의 <탑 오브 더 월드> 같은 미국 팝음악, 심지어는 <만남>이나 <남행열차> 같은 우리나라 노래도 연주했다. 우리 노래를 연주할 때는 우리 일행 모두 뜨거운 환호와 박수를 보내 밴드를 격려해주었다. 일행 가운데 한 분은 케냐 사람들 형편으로는 상당한 금액의 격려금을 건네셨다는 후문이다. 생각지 못한 장소에서 우리노래를 듣고는 울컥하는 심정이 들더라고 했다. 개인적으로는 ‘가끔 박자도 틀리고 노랫말도 분명치 않네’라고 생각했던 것을 그 분의 열린 마음으로 인하여 고쳐먹게 되었다.

사파리 캣츠쇼(사진 좌, 중 김일환님, 사진 우 정해붕님 제공)

식사가 끝날 무렵 1시간에 걸쳐 사파리 캣츠쇼가 이어졌다. 이 쇼는 케냐의 42개 부족의 현란한 춤동작을 바탕으로 구성된 전통 공연이라고 소개되었다. 이들의 춤은 다양했다. 남성무용수와 여성무용수들이 각각 별도로 구성하는 춤도 있었고, 혼성으로 추는 춤도 있었다. 남성무용수의 춤은 동작이 크고 선이 굵어 힘이 느껴졌고, 여성무용수의 춤은 동작이 크지는 않지만 빠르고 섬세한 느낌이 들었다. 별도로 설명은 하지 않았지만 남성무용수들은 창과 방패를 가지고 부족 간의 전투에 나서기 전에 사기를 올리기 위한 춤사위와 전투장면, 전투가 끝난 뒤에 화해하는 장면 등을 춤사위로 표현하는 듯했다. 그리고 여성 무용수들의 춤은 전사들을 격려하거나 승전하고 돌아오는 전사들을 맞는 춤사위로 이해되었다. 남녀가 같이 추는 춤은 승전의 뒤풀이에 해당되는 것 아닐까 싶었다.

공연의 후반부에는 아크로바트에 가까운 쇼를 보여주었는데, 무용수들이 여러 층을 쌓는 묘기라든가 불쑈라든가, 혹은 낮게 걸린 막대 아래를 통과하는 묘기 등, 서커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묘기에 가까운 이런 것들이 아프리카 고유의 것인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보니 무용수들의 춤사위에서도 현대무용의 기교가 녹아든 몸짓도 느껴진다. 어쩌면 생활 속에서 이루어지던 전통춤을 무대예술로 옮기면서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일 수도 있겠다. 공연에 사용하는 소품이나 의상에 야광을 입힌 것도 조명과 더불어 강한 인상을 주려는 의도 같은 것이 읽힌다.
내일은 세렝게티까지 이동해야하기 때문에 여행사 단체여행에서 4-5-6이라고 하는 방식이 적용된다. 4시 기상, 5시 아침식사 그리고 6시에 출발한다. 사파리 캐츠쇼가 끝난 시간이 10시 가까이 되었으니 고단할 수밖에 없는 일정이다. 첫날부터 아프리카 여행 일정이 빠듯할 것을 예고하고 있었다. 자기계발전문가 제프 샌더스는 ‘아침 5시에 일어나는 버릇을 들이면 두 배로 근사한 삶을 즐길 수 있는 기적을 가져올 것’이라고 했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잡는다(The early bird catches the worm.)라는 영어속담처럼 여행에서 일찍 일어나면 구경거리를 더 볼 수 있는 것은 맞다. 하지만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을 벗어나 여유를 즐기려는 여행에서까지 새벽 같이 일어나는 긴장의 연속이 이어지는 것은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참고자료:
(1) 제프 샌더스 지음. 아침 5시의 기적, 비즈니스북스 펴냄, 2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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