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복장 권고안에 전문가들 “지엽적 문제 말고 큰 틀 봐야”

의료기관 감염 관리를 위해 의사들이 가운을 입고 외출을 하지 않도록 복장 권고안까지 마련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핵심을 벗어난 지엽적인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월 ‘감염관리를 위한 의료기관 복장 권고문(안)’을 마련해 의료기관 종사자는 근무복을, 환자는 환자복을 착용한 채로 외출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의료기관 여건에 맞는 복장 규정을 제정하도록 하면서 그 예시로 ▲짧은 재킷 형태의 가운 ▲넥타이 착용 자제 ▲수술복 형태의 반팔 상의 ▲손가락과 손목에 쥬얼리 착용 자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복지부는 의견 수렴을 거친 뒤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대한의료감염관리학회가 25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개최한 제22차 학술대회에서는 의료기관 복장 권고안이 감염 관리와는 상관이 없는 지엽적인 문제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의료감염관리학회는 “불필요한 규제가 될 우려가 있다”며 권고문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보건복지부에 전달한 상태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의료기관 종사자의 근무복으로 병원균이 전파돼 감염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할 학문적 근거가 없다”며 복장 예시 등 권고안 내용 중 상당 부분을 수정하거나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25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지속가능한 감염관리 체계 세우기'를 주제로 제22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학회 정책이사)는 근거 수준이 미약한 권고문을 만들기보다 일회용 치료재료 지원 등 실질적인 감염 대책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교수는 “정부가 권고안을 만든다면 비용 문제도 언급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 의료인 명찰 착용 의무화가 문제가 됐는데 기준을 맞춰 명찰을 다 바꾸려면 20억원이 필요하다고 한다”며 “의료인 복장은 명찰 수준의 예산이 아니다. 비용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정부가 강력하게 권고하는 것도 맞지 않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의료인 복장과 관련된 소모적인 논의가 더 중요한 감염관리 문제를 방해할 수 있다. 감염관리를 위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할 부분은 다른 데 있다”며 ▲내성균 발생 억제와 전파를 막기 위한 항생제 처방 관리 프로그램 개발·보급 ▲전문 인력 등 재원 확보와 지원 체계 형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엄 교수는 “손 위생과 관련된 시설 장비 지원이 충분치 않으며 일회용 가운이나 대방포 등은 급여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며 “지엽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틀을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 현장에서는 권고가 아닌 규제로 다가온다는 지적도 나왔다.

분당서울대병원 감염관리실 신명진 간호사는 “권고안을 받을 때마다 실무자 입장에서는 가슴이 내려앉는다. 복장 권고안의 궁극적인 목적이 내성균 전파 방지였다고 들었지만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내성균 전파를 막기 위해서라면 환자들과 접촉할 때 주의할 수 있도록 관련 재료에 대한 수가체계부터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 간호사는 “좋은 의도로 권고안이 나왔겠지만 받아들이는 의료기관 입장에서는 규제로 보인다. 다양한 평가에서 이번 권고안이 기준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우려된다”며 “병문안 자제 캠페인이 시작되자 병문안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체크리스트를 개발하고 모니터링과 인력 배치 방법을 고민하게 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신 간호사는 “권고안이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구체적이고 직관적으로 나와야 한다”고도 했다.

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이혁민 교수는 “복장에 있는 균이 환자에게 직접 전파되는지에 대해 규명된 게 없다. 균이 묻은 넥타이를 손으로 만진 뒤 그 손으로 환자를 진료할 때 전파되는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이건 손 위생을 강화하면 된다”며 “복장을 규제하는 게 얼마나 타당한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객관적인 증거 자료가 나온 뒤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감염 관리 정책에서 의료기관 복장 권고안이 우선 추진하는 과제는 아니라며 전문가들과 충분히 논의해 의견을 조율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복지부 질병정책과 강민구 사무관은 “손 위생을 독려하는 방안을 고민하다가 나온 방안이다. 그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어서 국회에서 관련 법이 발의됐을 때 법에 넣어 규제하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다”며 “복지부가 추진하는 감염 관리 정책 중 우선 순위인 과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강 사무관은 “향후 감염 전문가들과 의견을 조율해 나가면서 진행하겠다. 기본적인 원칙은 선언적인 수준으로 권고문을 만드는 것으로 캠페인 형식으로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며 “권고안을 준수하지 않으면 처벌하겠다는 게 아니다. 소통이 부족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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