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전면 급여화 못한다면 재사용 기준 마련해 관리해야”

C형간염 집단 감염 사건으로 일회용 주사 의료용품 사용이 금지됐지만 일회용 치료재료 관리나 재사용 기준 등이 명확하지 않아 혼란을 부추긴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지난 25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제22차 학술대회를 열고 일회용 치료재료 관리 체계에 대해 논의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일회용 치료재료에 대한 정부 정책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의료법은 ‘일회용 주사 의료용품’ 재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서울아산병원 감염관리실 박희연 Unit Manager(UM)는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에 대한 국내·외 현황을 설명하며 우리나라도 관련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지난 2009년 발표한 ‘진단 및 치료재료의 재사용 원칙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프랑스와 스페인, 오스트리아, 포르투칼 등은 일회용 의료기기 재사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독일과 미국, 호주, 덴마크, 스웨덴, 벨기에, 노르웨이, 네덜란드 등은 질적 관리 하에서 재사용을 허용하고 있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25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지속가능한 감염관리 체계 세우기'를 주제로 제22차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박 UM은 지난 2002년 일회용 의료기기 재처리 관련 법안(Medical Device User Fee and Modernization Act, MDUFMA)을 제정한 미국의 사례를 자세히 소개했다. 박 UM에 따르면 미국 식품의약국(FDA)는 이미 2000년 8월 일회용 의료기기(Single-use devices) 재처리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병원과 재사용 가공 업체는 제조사와 동일한 방법으로 재처리하도록 하고 있다. 이후 MDUFMA를 제정해 FDA에 등록된 시설에서만 일회용 의료기기 재처리를 하고 재처리 의료기기 목록을 제출하도록 관리하고 있다.

박 UM은 “우리나라는 현재 어떤 제품이 일회용인지 파악하는 것도 쉽지 않다. 우리도 이제는 방향을 정해야 한다”며 “일회용을 재사용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택하든지 아니면 안전한 방법으로 엄격한 재처리 규정을 마련해 재사용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가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은 오랜 시간 프로세스를 만들었지만 우리는 평소 사용하던 제품이 일회용이었는지를 파악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다. 우리도 장기적으로 프로세스를 정립해야 한다”고 했다.

서울성모병원 감염관리실 이지영 차장은 “법을 개정해서 일회용을 재사용할 수 있도록 하든지 아니면 수가를 개선해서 한번 쓰고 다 버릴 수 있도록 하든지 결정하지 않으면 갈등이 계속될 수밖에 없다”며 “현실적으로 일회용을 재사용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미국처럼 소독과 세척, 멸균 기준을 마련해 그에 맞춰서 재사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는 “현재 일회용 치료재료 재사용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 법부터 개정해야 한다”며 “일회용 치료재료 재사용 쪽으로 간다면 엄격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엄 교수는 “미국은 재사용이 가능한 기구를 검사한 후 새 제품보다 싼 가격에 재사용할 수 있도록 원칙과 기준이 세워져 있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11월 발표한 일회용 치료재료 보상 방안에 대해서도 우선순위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엄 교수는 “치료재료 급여화는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너무 수술 재료 쪽으로 편중된 게 아닌가 싶다”며 “감염 관리와 관련된 치료재료를 급여화할 때는 발생빈도와 중증도를 고려해서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의료관련감염 사망의 60% 이상을 인공호흡기 관련 폐렴(VAP)이 차지하지만 수술부위 감염 관련 치료재료들이 주로 급여화 대상에 올랐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재정적인 부분을 고려해서 급여화를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복지부 보험급여과 구성자 사무관은 “정부 입장에서는 재정 부분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단계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며 “품목 결정 과정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는 점을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치료재료 급여화가 결정할 사항이 많아 빨리 진행되지 않고 있지만 오는 9월 (1단계 급여화 대상인) 12품목 중 일부를 고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며 “지난 1월까지 품목 허가 신청을 받아 본 결과, 88개 업체에서 150개 허가증이 접수됐다. 유형을 세분화해서 간담회를 갖고 급여기준과 가격 등 실무적인 검토를 마칠 계획이다. 올해까지 마무리하겠다”고 했다.

복지부는 지난해 11월 단계별로 치료재료 52품목을 별도 보상하겠다고 발표했으며 그 중 ▲1회용 수술포 ▲1회용 멸균가운 ▲1회용 체온유지기(2품목) ▲1회용 제모용클리퍼 ▲N95마스크▲ ▲안전바늘 주사기 ▲안전나비바늘세트 ▲needless connector ▲saline prefilled syringe ▲방호후드 ▲페이스 쉴드 등 12품목을 올해 안에 급여화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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