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관련감염학회, 요양병원 감염관리 지원 등 대책 마련 촉구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의 확산 속도가 심상치 않다. ‘CRE 아웃브레이크’가 발생한 의료기관이 40여곳을 넘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CRE를 3군 법정 감염병으로 지정, 오는 6월부터 모든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했다.

그러나 감염 전문가들은 정부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CRE 확산을 막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CRE 환자가 대학병원과 요양병원을 오가며 확산되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라도 감염 관리 지원을 요양병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26일 학술대회가 열리는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CRE 유행을 막기 위해 감염 관리 대책을 마련해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CRE 중에서도 항생제(카바페넴) 분해 효소를 생성해 다른 균주에도 내성을 전달하는 CPE(Carbapenemase-producing Enterobacteriaceae)부터 집중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CRE는 지금처럼 표본감시기관만 보고하고 CPE는 모든 의료기관에서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정부에 전달한 상태다.

대한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는 26일 세종대 광개토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CRE 확산을 막기 위한 감염관리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의료관련감염관리학회 유진홍 회장(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은 “CPE를 주목해야 한다. CRE 중에서도 확산 속도가 빨라서 더 문제가 된다”며 “CRE를 법정감염병으로 지정하되 모든 유형을 다 보고하도록 하면 감당이 되지 않을 수 있으니 CPE를 우선적으로 보고해 관리하도록 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유 회장은 “CRE, CPE 환자 발생지가 요양병원처럼 오해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내성은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다”라며 “요양병원보다 대형병원에서 발생했을 확률이 높지만 의료체계상 장기 입원할 수 없기 때문에 요양병원으로 전원했다가 증상이 악화되면 다시 대형병원으로 오다보니 착시 현상이 생긴다”고 했다.

차기 학회장인 김미나 부회장(서울아산병원 진단검사의학과)는 “무엇보다 시간이 중요하다. 감염 위험이 있는 환자는 우선 격리한 후 검사 결과를 받고 격리 해제해야 한다. CPE는 유전자 검사까지 해야 하는데 요양병원은 검사실 자체가 없어 불가능하다”며 “네덜란드 등 선진국은 보건당국에서 중소병원과 요양병원까지 감염 관리를 지원한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감염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요양병원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엄중식 정책이사(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는 “유입되는 CRE, CPE를 잘 감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이미 유입돼 다른 환자들에게도 광범위하게 노출되는 상황까지 모르고 있으면 문제가 복잡해진다”며 “CRE나 CPE에 감염됐을 위험이 큰 환자가 입원할 때는 몇 시간 내에 감염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엄 이사는 “요양병원은 진료비가 정액제이기 때문에 거기서 벗어난 행위는 수가로 보전 받지 못한다. 그래서 CRE 감시 배양검사를 할 수 없다”며 “요양병원들이 한달에 한번 정도는 감시배양검사를 하고 실비만이라도 인정해주는 프로그램이 없으면 감시가 안된다”고 말했다.

이재갑 홍보이사(한림대강남성심병원 감염내과)는 “많은 요양병원들이 감염관리 전담 인력을 두지 못하고 있다. 감염관리를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인 셈”이라며 “이런 부분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요양병원이 감염관리를 잘 하는 게 이익이라고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유소연 부회장(성빈센트병원 감염관리실)은 “미국은 10년 전에도 감염관리 전문 간호사 1명 당 요양병원 3곳 정도를 관리하도록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요양병원은 제도권 밖에 있는 것 같다”며 “요양병원은 감염예방관리료를 받을 수 있는 대상도 아닌데 감염관리를 하라고 하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유 부회장은 “현재 요양병원에 얼마나 많은 다제내성균이 퍼져 있는지 알 수도 없다. 전반적인 실태조사도 필요하다”고 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 이후 정부가 감염예방관리료를 신설하는 등 감염관리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지만 일선 현장의 변화를 불러오기에는 아직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나마 질병관리본부 내 의료관련감염을 담당하는 의료감염관리과가 신설된 점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의료감염관리과장으로는 이형민 연구관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엄 이사는 “의료관련감염을 담당하는 별도 부서가 신설된 것은 의미가 있지만 인력이 9명 밖에 되지 않는 상황에서 전국적인 CRE 유행에 원활하게 대응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지금은 열정 페이를 기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의료감염관리과 뿐만 아니라 질병관리본부 전체가 부족한 인력과 예산으로 일하고 있다. 질병관리본부가 독립적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가질 수 있도록 청으로 승격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박선희 총무이사(대전성모병원 감염내과)는 “감염관리 제도가 개선되고 새로운 방향으로 나가려고 하지만 하루 아침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라며 “새로운 전문 인력을 양성해서 트레이닝 시키려면 1~2년은 참고 기다려야 한다. 짧게 보지 말고 길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