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요즘 <환자 혁명>이란 책이 화제입니다. 건강 서적 1위를 휩쓸고 있지요. 인터넷 서평이며, 블로그, 유튜브를 통해 입소문을 타더니, 카페가 결성되어 회원 수가 2만명에 육박합니다. 동아일보를 위시한 몇몇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가 하면, 현대차 그룹에서 사내방송을 통해 책을 소개했답니다. 기시감이 듭니다. 우리 사회는 얼마 전에도 이런 일을 겪었지요. 그래서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질이 낮은 책이었습니다. 몇몇 논문을 인용했을 뿐 거기 담긴 정보의 수준은 ‘약 안쓰고 아이 키우기(안아키)’와 비슷한 정도였지요.

또다시 ‘안아키’ 같은 사태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책을 비판하고 올바른 정보를 알려야 할 의무감이 들었습니다. 안아키의 김효진은 어린이에 초점을 맞추었지요. <환자 혁명>의 조한경은 암이나 성인병은 물론 요로 결석, 우울증, 예방접종에 이르기까지 모르는 게 없는 것처럼 말합니다.

일단 저자의 경력이 특이합니다. 인터넷 서점에는 ‘현직 의사가 기존 의료 상식에 반기를 들면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책. 미국에서 활동 중인 저자가 자신의 임상 경험과 연구를 바탕으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의사라고 믿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틀린 정보가 많았습니다. 조금 아래를 읽어보고서야 실체를 파악했습니다. ‘남가주대학(USC)을 졸업하고 2000년 카이로프랙틱 척추신경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짧은 소개글이지만 진실을 가리기 위해 참 교묘한 전략을 동원했습니다. 세 가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지요.

  1. 계속 자신을 ‘의사’라고 포지셔닝합니다.
  2. 임상 경험과 연구를 많이 한 대단한 의사처럼 과대포장합니다.
  3. 남가주대학에서 카이로프랙틱 자격을 딴 것처럼 되어 있습니다.

차근차근 보겠습니다. 카이로프랙터가 뭔지 알아야겠지요? 한국 카이로프랙틱협회의 소개를 인용합니다. “그리스어인 chiro(손을 통하여)와 practic(이루어지다, 치료하다)이라는 단어가 합쳐진 용어로, 추골의 변위에 의해 신경이 압박되고 있는 골관절면을 기존의 양방에서 시행하는 주사, 약물 등의 치료에 의존하지 않고 순수한 맨손으로 정상적인 위치가 되도록 하여 신경압박을 제거하고… 질환의 예방 및 치유하는 자연요법 즉 대체의학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런 정의에 가장 알맞은 단어는 뭘까요? 사전에 나옵니다. “도수치료사” 또는 “척추지압사”지요. 이 협회에서 제시한 “미국 면허범위”에 대한 자료를 보면 이렇습니다. “미국과 캐나다의 카이로프랙틱 면허 발급 기관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몇몇 주에서는 진료 범위를 척추수기치료만으로 한정하고 있는 반면, 다른 주에서는 침구, 근전도 검사, 임상검사 등 다양한 검사 및 치료도 진료 범위로 인정하고 있다.” 결국 근골격계 질환의 도수치료사네요. 기껏해야 침술, 근전도, 임상검사만 할 수 있고, 약을 줄 수도, 주사를 줄 수도, 수술을 할 수도 없는 사람이 의사인가요?

그래도 이 사람은 지지 않습니다. 취득한 자격 명칭이 ‘Doctor of Chiropractor’란 겁니다. 허허허, 그럼 Doctor of Philosophy는 철학 전문의, Doctor of Literature는 문학 전문의인가요? LA에서 의사를 하는 지인에게 물으니 현지 교민신문에도 척추전문의라고 광고하기에 한번은 한인 의사회장께서 그러지 말라고, 척추전문의는 신경외과나 정형외과에서 따로 펠로우를 한 분들만 쓸 수 있는 명칭이니 자제하라고 당부까지 했다고 합니다.

미국에는 의사 아닌 의료인들이 많습니다. 척추지압사뿐 아니라 자연요법사(naturopathy), 동종요법사(homeopathy), 침술사(acupuncturist), 한의사(Chinese medicine doctor), 물리치료사(physiotherapist) 등입니다. 제한된 면허를 받고, 허락된 범위 내에서만 의료 행위를 합니다. 의사의 영역을 침범하지도 않고, 그럴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원래 자격증을 선호하기에 1.5세나 2세 중에 이런 직종을 가진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개업하면 주류 백인들은 많이 오지 않기 때문에 한인들만으로 영업을 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게 어려운 중에도 전문분야만 성실하게 하시는 분들이 훨씬 많지요. 하지만 이 책이 대히트를 쳤으니 혹시나 이상한 마음을 품고 우리나라 책 시장, 강연시장으로 뛰어드는 분이 있을까 걱정도 됩니다. 안아키는 국내법으로 규율이 가능하지만 이렇게 카페나 책, 유튜브 등으로 파고들면 규율이 어렵지요. 보건당국의 관심을 촉구합니다.

2번은 자동으로 입증되었네요. 척추나 근골격계에 대해 많이 안다면 그것만 잘 하면 됩니다. 당뇨, 고혈압, 우울증, 자폐증, 암 등의 분야에서 환자를 많이 봤을 리도 없고, 연구를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닌 것은 분명하지요. 앉아서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저널을 찾아본 것을 연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3번은 다시 한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남가주대학에서 카이로프랙틱 자격을 취득한 것’으로 읽히지 않습니까?’ 남가주대학은 명문대학입니다. 그런데 여기는 카이로프랙틱 과정이 없습니다. 저자의 페이스북이나 클리닉 홈페이지에 가보면 조금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남가주대학을 졸업하고 Southern California University of Health Sciences(SCU)란 곳에서 카이로프랙틱 자격을 땄다고 되어 있습니다. 단순한 오류일까요?

물론 경력과 자격은 논쟁의 중심이 아닙니다. 따라서 저희는 의학적인 사실을 근거로 책을 비판하는 데 주력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묘한 말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포장하고 사람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주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행위입니다. 이 책에 실린 말을 믿고 혈압이나 당뇨, 심지어 암 치료를 중단한다면 환자들이 건강을 잃고 위험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 글부터는 이 책의 어떤 부분이 그렇게 문제인지 지적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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