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예전에 저자와 관련된 네이버 카페에는 이렇게 공지돼 있었습니다. ‘닥터조의 건강이야기 카페는 대한민국의 국가 예방접종 프로그램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환자 혁명'을 읽고, 그의 활동을 지켜보신 분들에겐 믿기지 않는 얘기입니다. 누구든 자기 뜻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출판할 정도라면 근거가 명확해야지 데이터를 멋대로 짜깁기하면 곤란합니다. '독감 백신을 꼭 맞아야 하는가?'를 묻는 책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1. 유사독감이라고?

저자는 '항온동물의 숙명' 운운하며 '환절기에 걸리는 감기는 바이러스와는 관계 없이 날씨나 환경 변화에 맞추기 위해 몸이 부대끼는 몸살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환절기 감기 대부분은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이 아니고, 따라서 백신은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무슨 큰 비밀이라도 알려주는 양 'ILI(Influenza like illness)'란 용어에 대해 설명합니다.

‘ILI(Influenza like illness)라고 해서 굳이 번역하자면 ‘유사 독감’이다. 바이러스와는 관계없이 우리 몸이 외부 환경 변화에 맞추기 위해 부대끼는 몸살이다(환자 혁명, 299p).’

애썼습니다만 굳이 어렵게 번역할 필요 없어요. 이미 우리나라 질병관리본부에선 ILI를 가리켜 ‘인플루엔자 의사환자(의심질환)’이라는 용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세계보건기구(WHO) 및 여러 국가에서 사용하는 ILI의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최근 10일 이내에 38도 이상의 갑작스러운 발열과 더불어 기침 또는 인후통을 보이는 급성 호흡기 감염’(cdc.go.kr 표본감시 결과보고서, 참고자료1).

사실 ILI는 독감 유행을 조기에 인지하고, 관리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하는 개념이지, 새로운 진단명이 아닙니다. ILI는 ‘독감과 증상은 유사하지만 바이러스와는 관계가 없는 몸살’이 아니라, 단지 ‘호흡기 감염자 중 독감이 의심되는 사람’을 지칭하는 용어일 뿐입니다. 용어를 멋대로 정의하니까 황당한 주장이 가능해지네요. 상상력이 풍부한 건지, 어디서 누가 잘못 적어놓은 걸 베껴 왔는지 몰라도 책에다 저런 말을 써놓으면 민폐가 되지요.

2. 독감의 전염력

용어의 정의도 헛갈리는 양반이 이번에는 독감에 대한 오해를 풀겠다며 소매를 걷어붙입니다. 독감 시즌에는 사람들 대부분은 바이러스를 보균하지만 면역력이 떨어진 일부에게만 증상이 나타나며, 그 확률은 3% 정도랍니다(환자 혁명, 300-301p). 이미 보균 상태니 백신은 맞아봐야 소용 없고,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지요?

미안해서 어쩌나. 이미 독감 시즌의 바이러스 보균자 비율은 약 18%로 보고됐습니다(참고자료2). 18%가 ‘대부분’인가요? ‘독감이 증상을 일으킬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자료에 따르면 인플루엔자 감염자의 50%에서 증상이 나타납니다(참고자료3). 일단 감염이 되면 절반에서 감기 증상이 나타난다는 거지요.

3%란 수치는 어디서 온 건가요? 혹시 ‘전체 인구 중 독감 환자의 비율(유병률, prevalence)’을 말하고 싶었을까요? 그렇게 생각해도 틀렸네요. 독감 시즌 동안 통상 유병률은 5~20% 정도입니다. 2010-2016년 미국 내 독감 유병률은 약 3~11%(평균 8%)였습니다(참고자료4). 3%도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매년 3% 이상이었던 겁니다. 그냥 감염성 질환을 예방하는데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세요. 왜 알지도 못하는 숫자들을 갖다 대서 비웃음을 자초합니까?

3. 독감 백신의 효과

저자는 한 방송에서 '2014~2015년 독감 백신의 효과는 25% 정도였으며, 매해 그 정도 밖에 효과가 없다'고 했습니다(참고영상 27분 00초) . 책에서도 "학급에 독감이 돌아도 모두 다 독감에 걸리지 않는다. 왜 그럴까? 독감 예방주사 덕분은 아니다(환자 혁명, 112p)"며 비슷한 주장을 하죠. 근거라고 든 CDC 자료를 한번 봅시다.

CDC 자료에 따르면 독감 백신의 효과는 매해 40~60% 정도입니다(참고자료5). 다만 2014~2015년도에는 그 효과가 19% 정도였고, 2014~2015년을 제외한 최근 10년간 효과는 대부분 40% 이상이었습니다(참고자료6). 가장 효과가 적었던 해를 예로 들어 '매해 그 정도 밖에 효과가 없다'라고 하면 왜곡이지요? 독감 백신은 저자의 주장보다 효과가 훨씬 뛰어납니다.

효과가 40~60% 정도면 별로라고요? 백신의 실질적인 효과는 훨씬 우수합니다. 독감 백신은 어린이의 의료기관 방문 횟수를 87%나 감소시킵니다. 노인의 경우, 독감으로 인한 입원을 예방하는 데 50~60%의 효과가 있고, 인플루엔자로 인한 사망을 예방하는 데는 80% 정도의 효과가 있습니다(예방접종지침서 제8판 206p, 예방접종 대상 감염병의 역학과 관리(2017) 450P).

미국 CDC에선 2015~2016년 독감 백신에 의해 약 510만 건의 독감이 예방되었다고 추정했습니다. 병원 방문으로 치면 250만 건, 입원으로 치면 7만1,000 건으로 약 3,000명의 귀중한 목숨을 구한 셈입니다. 연령별 예방접종률은 약 32.2~69.7%였는데, 만일 전 연령의 70%가 접종을 받았다면 약 240만 건의 독감을 추가적으로 예방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참고자료7).

저자도 책에서 '결국 병원균보다는 내 몸의 면역력이 변수(환자혁명 112p)'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내 몸의 면역력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수단이 백신접종이라는 것을 왜 애써 부정할까요? 영양과 위생이 중요하기 때문에 백신을 접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도둑을 막기 위해 창문은 모두 잠가 놓고, 정작 현관문은 열어놓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만일 모두 독감 백신을 맞는다면, 수면, 운동, 영양섭취가 좋은 아이들이 그렇지 않은 아이들보다 독감 예방에 유리합니다. 하지만 영양과 위생 상태가 동일하다면 백신을 접종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독감 예방에 훨씬 유리합니다.

저자가 한 가지 뛰어난 게 있다면 현란한 말솜씨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읽다 보면 다 맞는 얘기 같지요. 사실은 데이터를 교묘하게 짜맞춰 맥락을 오해하게 만드는 겁니다. 어떤 데이터는 자기도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인용합니다. 저런 말에 귀 기울이지 말고 매년 독감 백신을 맞으세요. 특히 어린이와 어르신들은 꼭 맞아야 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