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상대로 민·형사 소송제기…“허망함과 분노로 정상적인 업무에 방해 됐다”
법원, 한번의 변론에 '기각'…"공적업무 수행은 국민 감시와 비판의 대상"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장기요양서비스의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는 취지의 기사 때문에 직원들의 정상적인 업무에 방해가 됐다며 본지와 기자를 상대로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가 패소했다.

더욱이 공단은 건강보험 가입자 5,076만명이 납부한 보험료(연간 50조원, 86.6%)와 정부지원금(12.8%) 등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라는 점에서 무리한 소송은 결국 재정 낭비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공단(전 이사장 성상철, 소송대리인 공단 안선영 변호사)은 지난 7월 31일 창간 25주년 특집으로 <문재인 정부 ‘사회서비스공단’ 해부>(2017년 6월 30일자)를 보도한 본지와 기자를 상대로, 자신들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서울서부지방법원에 1억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공단의 사회적 평가가 훼손됐고, 직원들이 허망함과 분노를 겪어 업무 집중도가 떨어졌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최근 “공단은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으로,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의 주체성이 인정되지 않는다”며 소를 기각했다. 소를 제기한 지 약 5개월만이다.

공단은 무엇을 문제 삼았나?

우리나라도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면서 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 10년간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공단은 장기요양서비스의 모든 업무를 사실상 총괄해 왔다. 하지만 시설, 인력 등 인프라 확충에 집중하다보니 소규모 장기요양시설이 난립했고 불안정한 고용으로 인한 서비스 질 저하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제도가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새 정부가 출범당시 의욕적으로 내놓은 방안이 ‘사회서비스공단’이다.

지자체가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 장기요양과 보육 시설을 직접 운영하고 관리함으로써 고용은 물론 서비스까지 관리한다는 게 골자다. 현재 이를 위한 개선작업이 한창이다.

이에 본지는 사회서비스공단 공약이 발표된 이후 <문재인 정부 ‘사회서비스공단’ 해부>라는 주제로 두 편의 기사를 내보냈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의 사회서비스공단 관련 보고서와 서울시의 사례, 공청회 자료 등을 통해 ’새롭게 등장한 사회서비스공단...장기요양 대 변화 불러오나‘라는 기사에서는 현 장기요양보험제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 등을 집중적으로 짚었다.

또한 ’사회서비스공단이 생기면 건보공단은 뭐하나?‘ 에서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으로 인해 예상되는 제도 변화와 한계점 등을 해부하고, 이에 대한 보건의료단체, 사회학 전문가, 의료계 등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제시했다.

공단은 총 9,318자(원고지 52.1매)에 달하는 이 기획기사 중에서 두 번째 기사의 의료계 관계자 멘트를 문제 삼았다.

기사에 반영된 의료계 관계자 A씨와 B씨의 발언을 언급하며, “공단을 비방했고 악의적이고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을 했고, 공단이 이를 감내할 수 없어” 소송을 제기했다는 것이다.

기사에는 '사회서비스공단이 생기면 공단의 약했던 기능이 강화될 것'이라는 주장과 '사회서비스공단 설립과 상관없이 공단이 제대로 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적시돼 있었지만, 공단은 “(공단이)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의료계 관계자 멘트만을 골라 악의적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기본적인 확인 절차도 거치지 않은 허위 사실에 근거한 비방'이라고 주장했다.

취재 과정에서 의료계 관계자들은 공단에는 매우 단순한 서비스에 비해 많은 직원이 있고, 급여청구가 들어오면 (장기요양은) 정액수가라 별도의 심사를 하지 않고, 인정조사도 잘 안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공단과 지방자치단체의 업무 중복으로 인한 비효율적인 모습을 지적하며, 자신의 일이 아니라며 소홀히 하거나 4대 보험 통합관리를 했음에도 조직개편 등을 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해 방만하게 운영한다는 쓴 소리를 했다.

효율적으로 조직을 개편하는 등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었고 그 내용들이 기사에 그대로 실렸다.

허위사실이라 주장한 공단 “그 누구보다 성실히 업무를 하고 있다” 강조

하지만 공단은 취재하는 동안, 그리고 기사가 보도된 이후에도 이같은 지적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무응답으로 일관해 왔다. 그럼에도 고소장에는 “의료계가 인지하는 문제점은 허위 사실”이라고 적시한 것이다.

공단이 법원에 제출한 자료에는 “장기요양보험법에 따라 심사의 업무가 명시돼 있고, 전체 26.5%는 정밀심사를 하고 지난해 1만8,390개의 청구기관 중 494개 기관에 현지조사를 가서 6억2,000만원의 부당금을 적발했다”고 돼 있다.

또 부당청구에 대한 현지조사와 사후관리를 통해 환수하고 있다는 내부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이 외에도 기획조사나 부당청구 등에 대한 예방조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대 보험 통합징수로 인해 664명이 증원됐지만 선진화계획에 따라 365명을 감축했고, 그 이후 매년 인력이 증가한 것은 국정과제 수행 및 의료기관 관리강화, 장기요양 의료서비스 확대 등을 위한 것이라며 현재 1만3,319명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그러면서 공단은 직원들이 사명감을 갖고 성실히 일하고 있는데, 기사 때문에 주어진 업무를 전혀 하지 않는 불성실한 공공기관 직원으로 전락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기사를 본 직원들의 허망함과 분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이며, 이 때문에 업무 집중도가 떨어져 정상적인 업무를 진행하는 데도 큰 방해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공단은 제도를 운영하려면 국민과 신뢰가 필요한데 기사 때문에 신뢰가 깨졌고, 제도를 원활하게 운영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줘 향후 직원들의 업무량이 증가하고 정신적 고통도 커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법인인 공단, 명예권 주체 안 돼...언론 재갈물리기”

공단의 황당한 주장에 본지도 적극 대응에 나섰다. 특히 본지는 답변서를 통해 공단의 손해배상 청구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을 강조하며 기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단이 문제 삼은 부분은 사실의 적시가 아닌 의견의 인용이고, 심지어 진실에 부합한 데다 공익성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국민건강보험법 제1조’에 의해 설립된 공법인인 공단이 국민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존재 이유와 본분을 망각한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공단은 '기본권의 수범자이지 소지자도 아니며,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을 상대로 자신들의 무형적 손해를 주장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판례를 들어 반박했다(헌법재판소 1998.3.26. 선고 96헌마345 전원재판부 결정문).

본지는 또 공단이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정정보도 및 반론보도를 청구할 수도 있으면서 소송부터 제기한 것은 헌법상 인정된 기본권인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실제 공단은 과거에도 국민을 대상으로 형사 고소나 손해배상 청구의 소를 제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14년 포괄수가제 시행과 관련해 공단을 비판하는 댓글을 단 국민(의사)을 모욕죄로 서울서부지방법원에 형사고발했지만 무죄 선고가 났고, 대법원에서도 상고가 기각됐다.

2012년에는 공단이 대한의사협회를 명예훼손 및 업무방해혐의로 검찰에 고소했으며, 비슷한 시기에 공단을 비방하는 내용의 댓글을 단 네티즌 9명도 비밀누설 및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2014년 6월에는 공단의 방만경영을 지적하는 성명서를 낸 전국의사총연합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적도 있다.

한편, 공단은 기사에 자신들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이 또한 공단의 비협조 때문이었다.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공단 요양기획부 담당 부장과의 유선통화를 통해 입장을 확인코자 했으나 “어떠한 코멘트를 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답변을 회피했다. 공단 연구실의 담당 연구원 및 실장, 기획이사 등과의 인터뷰도 재차 요청했으나 거부됐다.

기사가 나간 후 1개월이 지난 7월 11일 경에 공단 홍보실이 기자브리핑 시간에 해당 기사를 언급함에 따라 기자가 담당자와 확인 절차를 거쳤음을 재차 설명하고 필요시 정정 및 추가 인터뷰 등도 수용하겠다고 했지만 홍보실은 이마저도 거절했다.

공공기관으로서 자신의 업무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자료 공개 등에 응해야 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은 채 마치 허위로 기사를 작성한 것처럼 호도, 언론사는 물론 해당 기자까지 지목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더욱이 이 소송은 건강보험 재정으로 고용된 공단 소속 변호사가 소송대리인으로 참여했다.

결국은 언론 길들이기?

명예권이 없다는 법리적 해석에 직면한 공단은 사회서비스공단 기사 이전에 쓴 기사들 때문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는 또 다른 주장을 펼쳤다.

아예 “기자가 해당 기사만 작성했다면 소송을 제기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준비서면에 명시하고, “언론에 현저히 부담이 되는 제재로서 금전적인 손해배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기사를 작성하는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를 대놓고 드러낸 것이다.

공단은 2014년 7월부터 기자가 공단에 대한 악의적인 기사를 작성해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섰다면서 그 근거로 ‘[특별기획] 공단, 쇄신이냐 해체냐’시리즈 9편을 포함한 15편의 기사(기자수첩 3편, 특별기획, 신년기획 등)를 제시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문제 제기한 청년의사 기사 목록>

일자 제목 요약
2014.7.1. [기자수첩] 쇄신보다 자정이 먼저다 공단 임직원의 자질 및 업무 능력 폄훼
2014.8.31. [특별기획] 공단, 쇄신이냐 해체냐 공단이 하는 일이 없어 일각에서 해체 필요성까지 거론하고 있다
2014.8.31. [특별기획] 공단의 쇄신 열풍이 몰고 온 위기 공단이 하는 일에 비해 인원이 많아 건보재정에 손실을 입히고 있으며, 직원 업무태만 해결되지 않으면 제도개선도 무의미하다
2014.8.31. [특별기획] 건보 무자격자 관리, 이제는 요양기관이? 체납보험료 징수에 무능한 공단이 요양기관에 수진자 사전자격확인업무를 떠넘겨 보험료를 징수하려 한다
2014.10.1. [특별기획] 진료비 청구권 이관하면 사무장병원도 잡는다? 공단으로의 청구권 이관은 무분별한 조직 몸집 부풀리기·재정관리부실 책임전가 의도다
2014.10.15. [특별기획] 건보료 부과체계, 소득중심 개편 가능한가 불합리한 부과체계가 아니라 공단 직원의 미흡한 업무수행 때문에 민원이 많다
2014.11.7. [특별기획] 받을 돈 못 받고, 나가는 돈 못 막고 공단이 보험료 징수 등 업무에 태만하여 보험재정을 관리할 능력이 없다
2014.12.16. [특별기획] 기는 공단 위에 나는 불법장기요양·검진기관들 공단이 장기요양건강검진의 질관리에 미흡하고 단순 행정업무에 치중하고 있다
2014.12.28. [특별기획] 존재감 없는 공룡 공단, 없어도 된다? 보험재정누수는 제도결함이 아니라 공단의 무능 탓이며, 이런 식이라면 보험자의 자리를 내놓고 해체해야한다.
2014.12.29. [커버스토리] 공단 개혁 세갈래, 쇄신 vs 해체 공단의 무능으로 4대보험징수통합의 취지가 무색해졌다
2016.6.29. [기자수첩] 공단에도 암행어사가 필요하다 직원 관리에 소홀하여 체납보험료 관리가 부실하다
2017.1.5. [신년기획] 노인장기요양보험, 이대로 좋은가 노인장기요양보험의 운영 미흡이 공단의 무능력 때문이다
2017.3.3. 팔리지도 않는 사옥, 짓고 또 짓는 공단 사옥신축이 공단 직원 편의를 위한 이기적인 행동이며, 인력 및 조직개편과 더불어 사옥도 통합해야한다
2017.5.22. [기자수첩] 허리띠 졸라매자며 직원 수천명 뽑는 공단? 불필요한 인력을 많이 선발하여 보험재정이 낭비되고 있다
2017.6.30. 새롭게 등장한 사회서비스공단…장기요양 대변화 불러오나 공단이 노인장기요양보험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해 사회서비스공단 설립계획이 나왔다
출처: 공단의 민사소송 준비서면. *'요약’ 부분은 공단이 작성, 오해를 막기 위해 모든 기사 링크를 첨부합니다.

공단은 특히 취재를 통해 작성된 기획기사와 정보공개청구도 거부한 채 숨긴 공단 인력 증원 계획 등을 비판한 기자수첩 등에 대해 대부분의 기사가 근거가 없거나 허위사실인 경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더 이상 공단 명예가 폄훼되고 임원들의 사기가 저하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금전적인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소송을 해야지, 언론중재법에 의한 대처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도 언론중재법을 통해 정정보도 요청을 하는데 공단은 그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주장인 셈이다.

더욱이 언론중재법에서는 기사를 안 날로 3개월, 있은 날로 6개월 이내 정정·반론보도 청구를 할 수 있는데, 공단은 이 기간이 피해자가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데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또 정정·반론보도가 인정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고, 원하는 내용의 보도가 이뤄질 가능성도 낮으며, 원하는 만큼 충분한 심리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는 등 언론중재법상 구제방법은 미흡하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공단은 언론중재법은 피해구제로는 충분하지 않는 데다 정정·반론보도만으로 언론에 큰 부담을 줄 수 없어 금전적인 배상을 요구하게 됐다고 서면답변서를 제출했다.

법원, 변론 1번 만에 기각...소 제기 5개월 째

그러나 법원은 이번에도 공단의 편을 들어주지 않았다.

애초에 공단은 명예훼손의 주체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구체적인 기사 내용의 위법성 여부는 따져보지도 않고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했다.

재판부는 “국가나 국가기관 또는 국가조직의 일부나 공법인은 기본권의 수범자이자 기본권의 주체로서 그 소지자가 아니고,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할 책임과 의무를 지고 있는 지위에 있다”고 했다.

따라서 “국민건강보험법에 의해 설립돼 국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는 공법인인 공단은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영역에서 국민의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된다고 할 것이고, 명예훼손 손해배상청구의 주체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또 언론중재법으로는 피해구제가 안 된다는 공단의 주장에 대해 “언론중재법의 제도적 개선을 통해 해결해야 할 문제일 뿐”이라며 “그 제도적 불비를 이유로 명예훼손으로 인한 민사상의 손해배상 청구가 인정돼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했다.

공단이 항소를 포기함에 따라 이 판결은 지난 26일 자정으로 확정됐다.

이번 판결에 대해 본지 법률대리인인 법무법인 신앤유 김주성 변호사는 “이번 판결은 기본권의 보장에 관한 각 헌법규정의 해석상 국민(또는 국민과 유사한 지위에 있는 외국인과 사법인)만이 기본권의 주체이고, 국가나 국가기관 또는 국가조직의 일부나 공법인은 기본권의 ‘수범자(受範者)‘이지 기본권의 주체로서 그 ’소지자‘가 아니며, 오히려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 내지 실현해야 할 책임과 의무를 지니고 있는 지위에 있을 뿐이라는 헌법재판소 96헌마345 결정을 재확인한 것”이라며 “공법인인 공단이 국민을 상대로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공단 노동조합도 서울서부지방검찰청에 본지 기자를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죄로 형사 고소했다.

노조는 성상철 전 이사장 이름으로 제기된 민사 소송과 거의 같은 내용으로, “실추된 공단의 명예가 회복되고, 직원들의 노고가 부당하게 폄훼되는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주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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