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멈춰버린 허혈성심질환 통합평가...그 사이 심장질환 사망자수는 증가
심평원 "하루빨리 재시행돼야"...학회 "현 적정성평가 도구로는 제대로 된 평가불가"

국내 사망률 1위는 악성신생물, 그 뒤를 잇는 사망원인이 ‘심장질환’이다. 통계청이 2016년에 발생한 사망사건을 분석한 결과, 심장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인구 10만명 당 58.2명이다.

2006년만 해도 심장질환 사망자수는 인구 10만명 당 41.1명으로 뇌혈관질환 61.3명보다 낮았다. 하지만 10년 새 역전현상이 나타나 뇌혈관질환 사망자수 45.8명보다 12.4명이 늘었다.

왜 그럴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허혈성심질환에 대한 평가기전이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통계청, 2016년 사망원인통계

실제 국내 의료의 질을 평가하는 대표적인 방법 중 하나인 요양급여적정성 평가에서 허혈성심질환 평가는 3년 전(2014년)에 멈춰 있다. 외과에 대한 평가는 유지되고 있지만 내과계 평가는 현재 평가가 중단된 상태로, 2013년 진료분에 대한 결과값 이외에 그 어떤 병원도 급성심근경색증(AMI)과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 평가를 받지 않고 있다.

평가가 중단된 이유는 2014년 4월, 대한심장학회가 허혈성심질환 통합평가를 보이콧 했기 때문이다.

당시 심장학회는 관상동맥우회술(CABG), 급성심근경색증(AMI), 경피적관상동맥중재술(PCI)을 통합해 평가하려는 심평원에 반발하며 평가 보이콧을 선언했다. 병원 줄 세우기식 평가의 문제점를 지적하며, 심평원의 핵심 업무인 요양급여 적정성평가의 한계를 표면 위로 떠올렸다.

적정성평가의 개선이 시급한 상황에서 이를 통합해 또다시 평가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게 당시 심장학회의 주장이었다. 그 바람을 타고 병원들이 수십가지의 평가를 받기 위해 투입되는 시간적, 금전적 비용부담을 거론했고, 행정적 비용 보상, 새로운 평가 틀 마련 등의 요구가 쏟아졌다.

결국 학회를 필두로 유수 대형병원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현재까지도 허혈성심질환 통합평가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그 여파는 컸다. 심평원은 중앙심사평가위원회를 의료평가조정위원회로 격상시키는 구조개편을 했고, 평가 기획단계에서부터 의료계가 참여하는 절차도 마련됐다. 또 평가에 따른 행정비용 보상도 정례화가 됐다.

하지만 PCI, AMI, CABG 등을 통합해 시행하려 했던 허혈성심질환 평가는 여전히 시작도 못하고 있다. 심질환 평가 중 CABG에 대해서만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통합평가 이야기가 나온 때부터 심평원과 심장학회 측은 여러차례 공식적, 비공식적으로 만나기도 했지만 평가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나 조율은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나마 당시 심장학회에서 요구했던 평가 개선 방안을 위한 연구용역 ‘허혈성심질환 평가 개선방안 연구’만 마무리됐을 뿐이다.

본지가 입수한 '허혈성심질환 평가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AMI 평가가 국민의 알권리 보장, 의료질향상이라는 목적을 충분히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평가 지표선정, 자료수집 및 분석과정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제외국의 문헌고찰 결과, 병원평가 공개의 효과나 가감지급제의 의료질향상과의 연관성은 효과가 없거나 불분명한 경우가 더 많은 것으로 지적됐다.

이는 그동안 심평원이 17년간 적정성평가를 해왔던 ‘의료 질 향상’이라는 당위성과도 정면 대치되는 부분이다.

또한 보고서에는 현재의 평가에서는 등급을 폐지하고 구조개선이 필요한 의료기관을 지원하는데 노력해야 한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돼 있다. 다만 구체적인 평가지표나 평가방식 등에 대해서는 제시되지 않았다.

이같은 보고서가 나온 이후, 심장학회에서는 이 보고서를 토대로 심평원에 공청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심평원은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내놓지 못한 것은 물론 학회와도 공식적인 논의를 갖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평원, 2017년도 요양급여 적정성평가 계획

문제는 심장학회와 심평원이 통합평가에 대한 개선방안을 찾지 못하는 사이 허혈성심질환 평가는 CABG만 이뤄지고 있고, 일부 항목에 대해서만 평가가 이뤄지다보니 각종 의료질 평가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데 있다.

실제 2018년도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에서도 의료서비스 수준을 측정하는 요양급여 적정성평가 21개 항목 중 심장질환(AMI, PCI, CABG)에 대한 평가 자료가 없어 5년전 결과값을 그대로 반영하는 땜질식 평가가 이뤄졌다.

또 선택진료제 폐지에 따른 의료질평가지원금이 올해부터 기존 5,000억원에서 7,000억원으로 확대되는 등 의료질평가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작 AMI 등은 첫해에만 반영될뿐 현재까지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지난해 5월 30일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해 국가적으로 심뇌혈관질환의 예방, 진료, 재활 및 연구 등 종합적인 정책을 수립하겠다고 나섰지만 정작 이에 대한 근거가 될 국내 질환 치료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심평원 관계자는 "허혈성심질환 사망률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고 있는 것처럼 비춰질까 안타깝다"면서 "심뇌혈관질환법에 근거해 정책을 수립할 때 사용할 자료는 6차 AMI 평가자료가 마지막으로 최근 자료가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에 이 관계자는 "심뇌혈관질환법에 따른 심뇌혈관질환 관리방안에 합당한 평가 틀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심장학회도 새로운 평가 틀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했다.

심장학회 한 관계자는 "연구용역 보고서에 나온 이후 평가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하는 상황이지만 AMI 질환 특성상 국가와 지역사회가 참여하는 응급네트워크가 필요하고 퇴원후 사후관리가 중요하기 때문에 심평원의 요양급여기준 및 심사, 적정성평가라는 도구를 사용하는 데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 관계자는 "급성심근경색증치료의 대응수준 및 사망률이 국가적 질관리 지표로 흔히 사용될 만큼 국가차원의 보건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면서도 "하지만 대부분 민간 의료에 의존하는 한국에서 응급의료, 중증외상, 응급심뇌혈관질환 대응은 국가가 더 책임지는 방향으로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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