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환자혁명>은 당뇨병에 대해 이렇게 주장합니다.

  1. 현대의학은 당뇨병을 완치 불가능한, 평생 관리해야 하는 만성 질환으로 보지만, 사실 당뇨병은 완치가 가능한 질환이다.
  2. 당뇨병의 근본 원인은 인슐린 저항이고, 혈당이 오르는 것은 그에 따른 부차적인 소견일 뿐이다. 따라서 치료 또한 인슐린 저항을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3. 인슐린 저항은 잘못된 식습관 때문에 생긴 것이니, 치료 또한 식습관을 개선해야 한다. 간헐적 단식, 탄수화물 제한식, 비타민/미네랄 보충으로 얼마든지 당뇨를 완치할 수 있다.
  4. 현대의학은 인슐린 저항은 내버려 둔 채 혈당만 조절하기 때문에 당뇨를 완치시키지 못하는 것이다. 특히 인슐린 치료는 혈당 수치를 낮춰주지만 동시에 인슐린 저항을 악화시킨다. 따라서 인슐린 치료는 오히려 당뇨를 악화시키는 아주 잘못된 치료다.

용어부터 정리합시다. 당뇨병에도 몇 가지 유형이 있는데, 흔히 말하는 당뇨병은 ‘제2형 당뇨병’ 입니다. <환자혁명> 책에서도 제2형 당뇨병만 지칭하고 있는 것 같으니 여기서도 제2형 당뇨병만 논의합니다.

제2형 당뇨병이 인슐린 저항 때문에 생기는 것은 사실입니다. 당뇨병은 인슐린 저항, 즉 인슐린에 대한 반응이 점점 떨어지면서 시작됩니다. 식사를 하면 혈당치가 올라가는데, 이를 정상으로 낮추기 위해 췌장에 있는 베타 세포에서 인슐린이 분비됩니다. 하지만 인슐린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 떨어지면 혈당이 충분히 낮아지지 않으므로 베타 세포는 인슐린을 점점 더 많이 분비합니다. 이 상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면 베타 세포에서 분비되는 인슐린의 양이 줄면서 베타 세포 자체도 위축됩니다. 인슐린 저항은 심해지는데 인슐린 분비까지 줄어들어 혈당치가 계속 높게 지속되는 것, 이것이 당뇨병입니다(참고문헌1).

의사들이 원인 치료를 안 한다?

내버려두면 이 과정은 계속 진행ㆍ악화됩니다. 당뇨병의 진행과 관련된 요인으로 ‘고혈당, 비만, 고혈압, 이상지질혈증, 젊은 나이’ 등이 밝혀져 있습니다(참고문헌1). 역으로 이런 요인을 해결하면 당뇨병의 예방 및 진행을 늦추는 ‘근본적인 치료’가 됩니다. 대한당뇨병학회에서 발간한 ‘2015 당뇨병 진료지침’에 따르면, 당뇨병의 예방 및 진행을 늦추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 및 식사요법을 통한 체중 감량’입니다. <환자혁명> 책에서 제시하는 당뇨 치료법과 동일하죠. 여기까진 좋습니다.

<환자혁명>의 문제는 이미 당뇨가 발병하여 조절되지 않는 고혈당을 약물ㆍ인슐린으로 낮추는 치료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매도한다는 겁니다.

“현재의 모든 당뇨 치료는 혈당에만 집중하고 있다. 약물로 혈당을 조절하는 것은 당뇨병을 고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실제 당뇨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환자혁명, 154p)

현재의 당뇨 치료가 혈당에만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은 바로 앞에서 말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운동ㆍ식사요법을 통한 체중 감량’은 언제나 당뇨 치료의 기본입니다. 특히 비만이 동반된 초기 당뇨병 환자는 이것만으로 충분합니다. 그러나 베타 세포의 기능이 회복될 수 있는 선을 넘어 어느 정도 진행된 당뇨 환자는 약물ㆍ인슐린으로 혈당 자체를 낮추는 치료를 병행합니다. 환자 상태에 맞춰 치료를 달리하는 것이지요.

혈당관리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

조한경씨는 두 번째 치료, 즉 혈당을 낮춰주는 치료가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겁니다. 거꾸로 묻고 싶습니다. 고혈당 자체가 아무 문제가 없다면 대체 당뇨병을 왜 치료하죠?

당뇨병이 무서운 이유는 고혈당으로 인해 합병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인슐린에 대해 잘 몰랐던 과거에는 주로 급성 합병증(당뇨 케톤산증, 고삼투압성 고혈당성 비케톤성 혼수)이 문제였지만, 인슐린과 다양한 약물이 개발된 현재는 미세혈관 합병증(신장병증, 망막병증, 신경병증)과 대혈관 합병증(심근경색, 뇌졸중, 말초혈관폐색) 같은 만성 합병증이 문제입니다. 어느 정도 진행된 당뇨병 환자는 인슐린 저항성을 치료하는 동시에 반드시 혈당 자체도 떨어뜨려 급ㆍ만성 합병증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실제로 2008년까지만 해도 의학계는 혈당을 치료하는 것이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고 믿어왔다…(중략)… 하지만 대규모 연구 결과는 달랐다! 혈당을 잘 관리하거나 말거나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혈당을 잘 관리해왔던 환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비슷한 비율로 당뇨 합병증이 발생했다. 혈당을 ‘관리’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환자혁명, 154~155p)

2008년에 혈당을 관리해도 당뇨 합병증 예방에 아무 도움이 안 된다는 대규모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2008년에 발표된 대규모 임상시험은 ACCORD와 ADVANCE 연구, 두 가지입니다. 논문만 보면 멋대로 해석하는 조한경씨,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네요. 이 임상시험들은 애초에 설계 자체가 한 쪽은 혈당관리를 잘 해보고, 다른 한 쪽은 아예 안 해본 것이 아닙니다(참고문헌2, 참고문헌3). 한 그룹은 적당한 정도로만 혈당을 관리하고(당화혈색소 7~7.9%), 다른 한 그룹은 혈당을 거의 정상까지 낮춘 다음(ADVANCE는 당화혈색소 6.5%, ACCORD는 6% 이하) 두 그룹을 비교한 겁니다.

우리가 궁금한 것은 혈당관리가 당뇨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느냐가 아닙니다. 혈당조절이 급성 합병증과 만성 합병증 중에서 미세혈관 합병증을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수없이 많은 연구에서 계속 보고되어 이제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다만 대혈관 합병증 예방 효과가 아직 명확하지 않고, 당화혈색소를 어느 정도까지 낮추는 것이 제일 좋을지 답을 얻기 위해 임상시험을 계속하는 거죠. 실제로 2008년의 임상시험을 통해 당화혈색소를 6.0% 이하로까지 낮추는 것은 오히려 안 좋다는 것, 그리고 혈당관리만으로는 대혈관 합병증을 예방하기에 불충분할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가장 최근(2017년)에 발표된 J-DOIT3 임상시험에서는 당화혈색소를 6.2%까지 낮춘 그룹을 6.9%까지 낮춘 그룹과 비교했는데, 6.2% 그룹에서 대혈관 합병증 중 심근경색 발생은 비슷했으나, 뇌졸중 예방 효과는 더 좋았습니다. 미세혈관 합병증은 당연히 6.2% 그룹에서 더 좋았지요(참고문헌4).

조한경씨, 이미 오래 전에 밝혀진 사실도 몰라 엉뚱한 소리를 하고, 임상시험이 실제로 어떻게 설계ㆍ수행되는지 확인도 안 하고, 당뇨 연구의 기초적인 배경이나 흐름도 모른 채 결과를 멋대로 해석해서 책까지 냅니까? 중기ㆍ말기로 진행된 당뇨 환자가 당신 책을 읽고 혈당을 관리하지 않은 채 생활습관 개선만 붙들고 있다 혈당이 500, 600이 돼서 케톤산증으로 응급실에 가거나 사망한다면 누구 책임입니까? 그건 살인입니까, 아닙니까?

당뇨를 ‘완치’시켜 봤다고, 당신이?

“치료를 열심히 해도 합병증이 줄거나 환자가 줄지 않자 나온 변명이 당뇨병은 만성 진행성 질환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진실은 당뇨병은 만성 진행성 질환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많은 당뇨병 환자들이 당뇨병을 고치기 때문이다.” (환자혁명, 156~157p)

당뇨병의 예방과 진행을 늦추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 및 식사요법을 통한 체중 감량’이라고 했습니다. 초기, 특히 비만이 동반된 당뇨 환자는 이것만으로 일정 기간 약물 없이 지낼 수 있다고도 했습니다. ‘완치’라는 표현은 하지 않았습니다. 의사들은 당뇨병 ‘완치(cure)’라고 하지 않고 ‘완화(remission)’라는 용어를 씁니다. 왜냐하면 어디까지나 당뇨의 진행을 늦추었을 뿐, 체중 관리가 소홀해지면 언제든 인슐린 저항과 동반된 베타 세포 이상이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나마 비만이 동반된 당뇨병 환자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마른 환자에서 발병한 당뇨병은 체중 감량도 소용 없습니다.

의사를 찾아가면 평생 약을 먹어야 되고, 자기한테 오면 약 없이 ‘완치’되는 것처럼 자꾸 거짓말을 하는데, 체중 감량만으로 당뇨 환자가 ‘완화’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일반인들도 알고, 임상시험까지 완료된 상태입니다(참고문헌5). 의사들은 당뇨병이 병태생리상 만성 진행성 질환으로 관리가 소홀해지면 언제든지 다시 진행될 수 있음을 잘 알기에 함부로 ‘완치’라는 표현을 쓰지 않을 뿐입니다.

묻지마 단식? 탄수화물 제한식?

마지막으로 식단을 볼까요? 조한경씨는 당뇨 식단으로 간헐적 단식, 탄수화물 제한식을 추천합니다. 효과를 보는 경우도 있겠지만, 이상적인 영양 구성 비율은 각자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참고문헌6). 정확하지 않은 정보만 믿고 일률적으로 식단을 선택하지 마세요. 검증된 정보(공식 학회나 병원 교육자료 등)를 바탕으로 핵심 개념을 이해하고(참고문헌7), 구체적인 것은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습니다(참고문헌8).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 영양분 구성도 중요하지만 섭취하는 총 칼로리 양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루에 식사를 몇 번 할지 보다, 하루 세 끼 제대로 된 식사를 하되 양을 어떻게 조절할지를 고민하세요(참고문헌9).

당뇨 환자분들은 운동 많이 하시고, 잘 짜인 당뇨 식단으로 체중을 줄이고, 정기적인 내과 진료를 통해 혈당을 체크하고, 필요하다면 꼭 약물을 함께 복용하시기 바랍니다. 운동, 식이 조절, 체중 감량 등 생활 습관 개선에 대해 일언반구 없이 당뇨약만 처방하는 의사가 있다고요? 나쁜 의사입니다. 유감스럽게도 의사 중에도 좋은 의사와 나쁜 의사가 있습니다. 그렇다고 의사도 아닌 사이비를 찾아갈 필요는 없습니다. 건강만큼 소중한 건 없으니까요. 평판이 좋은 다른 병원으로 옮겨 안전하고 정확하게 치료받으면 됩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