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의학기사단의 <환자혁명> 비판

우울증으로 치료받는 사람이 늘면서 경제적, 사회적인 부담도 날로 증가합니다. 누구나 우울증의 위험성과 치료의 시급함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이 효과적인 치료를 받지 못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우울증은 숨길 일이 아니며,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마음의 감기'라 할 정도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병이라고들 하지만 정신과 치료나 심리 상담, 항우울제 복용 같은 이야기는 여전히 선뜻 다가서기 어려운 주제인 것이 사실입니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과 질환은 드물지 않을뿐더러, 결코 불치병이나 난치병이 아닙니다. 물론 어려운 병도 있지만 질병마다 긴 세월에 걸쳐 연구 확립된 치료법이 있어 내과나 안과 질환처럼 치료받아 나으면 됩니다. 그런데도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로 고통을 받는 것일까요?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거나, 중단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이유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정신적 문제와 치료, 약물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존재한다는 겁니다.

과학적, 합리적인 치료법이 아니라 다른 길을 찾으라는 사람들로 인해 오히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은 비단 정신과의 일만은 아니지만, 유독 정신과에 많습니다. 의도적이든 선의에서든 그런 말은 해롭습니다. 고통을 줄일 수 있고, 치료 기간을 단축할 수 있고, 심지어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그야말로 소중한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또 비슷한 주장이 나왔네요.

<환자혁명>은 미국 '척추신경전문의'라 주장하는 '카이로프랙터'가 쓴 긴 책입니다. 이 책에서 저자는 당뇨, 고혈압, 아토피, 독감, 암 등 일상에서 흔히 보는 질병의 치료법에 대해 의학계에서 통용되는 상식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한 가지 한 가지가 수십 년의 공부와 노력을 들여도 겨우 이해할까말까한 방대한 지식 분야지만 그의 쾌도난마는 거침이 없습니다. 기존 지식을 따라가기만도 쉽지 않은데 전방위에 걸쳐 '모두 틀렸다'며 기염을 토합니다. 우울증에 대해 기술한 부분도 놀라울 정도로 위험한 내용이 많습니다. 어디가 위험하고, 어디가 황당한지 몇 가지로 정리해보았습니다.

첫째, 아무런 근거 없이 공인되고 안전한 치료법을 불신합니다.

우울증 치료에 대한 문제 제기는 처음부터 공격적입니다. '우울증 치료제가 효과 있다고 홍보하지만, 대부분의 연구에서 플라세보(위약)와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기운차게 선언합니다. 기운차게 외친 사람에게는 미안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그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논문과 증거를 찾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지요. 이미 항우울제의 기전과 효능, 한계를 연구한 논문이 수천수만입니다. 전 세계에서 지금도 수많은 환자가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물로 거뜬히 우울증을 극복합니다.

저자는 '항우울제의 문제점은 효과는 미미한데 심각한 부작용을 동반한다는데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모순되는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약에는 원하는 작용과 원치 않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간단한 소화제나 해열제도 그렇습니다. 비유하자면, 음식은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지만, 잘못 사용하면 '배탈'과 '비만'이란 부작용을 일으킵니다. 그렇다고 밥을 안 먹을 건가요? 기존 항우울제는 우울 증상 개선 효과가 아주 뛰어납니다. 따라서 최근 개발되는 항우울제들은 증상 개선은 물론 부작용 개선을 목표로 하며, 뚜렷한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둘째, 우울증의 원인을 호도합니다.

저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우울증의 숨겨진 생리학적 원인'이라며 갑상선 기능, 부신 기능, 화학적 독성 및 영양 결핍을 듭니다. 우울증의 원인이 다양한 것은 맞습니다. '마음의 병'이라고 하지만, '마음'은 해부학적 실체가 있는 기관이 아니지요. 마음은 때론 대뇌피질이고, 때론 변연계이며, 가끔 뇌 이외의 기관이기도 합니다. 그 사이를 오가며 정보를 전달하는 '신경전달물질'도 마음의 일부로 봐야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갑상선이나 부신도 마음일 수 있습니다. 갑상선의 기능 저하나 부신 피질 호르몬의 이상으로도 우울한 증상은 올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들이 그걸 모를까요? 잘 압니다. 정신과에서는 이런 병들을 '내과적 상태에 의한 우울증'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관리하며,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 연구, 진료합니다. 정신과 의사들이 갑상선 질환이나 영양 결핍 등에 대한 말을 별로 하지 않는 이유는 대단한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니라 그런 원인으로 인한 우울증이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경우 검사도 하고 내과 등 관련 과와 협진도 하지만 실제로는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는 경우가 훨씬 더 많습니다. 또한 치료해서 이상 수치를 정상화시켜도 우울증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시간과 비용을 얼마든지 쓸 수 있다면 1%의 가능한 원인까지 모두 찾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환자 입장에서든 의사 입장에서든 가장 흔한 원인, 가장 대표적인 검사, 가장 빠른 치료법부터 적용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자는 어쩌다 뭘 하나 알면 자기만 알고 남은 모르거나 감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혼자 그렇게 생각하고 살면 괜찮은데 책까지 써서 낼 정도면 조금 심각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니까요.

셋째, 우울증에 대해 극히 비효율적인 진단과 치료를 권합니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선 환자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울증의 원인은 실로 다양하므로 병의 원인을 신중하게 찾아야 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갑상선 질환이나 영양 결핍 등 내과적 원인을 포함하여 우울증의 원인을 찾는 과정을 가장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사람입니다. 체계적이란 말은 면담과 검사를 통해 우울증의 원인 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부터 하나하나 배제해 나간다는 뜻입니다. <환자 혁명>의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울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외면하고, 상당히 드문 원인부터 꺼냅니다. “손에 망치를 든 사람 눈에는 모든 게 못으로 보인다”는 말이 있지요. 우울증을 호소하는 모든 환자에게 갑상선, 부신, 영양 검사를 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환자는 뻔히 보이는 길을 두고 멀리 돌아가야 할 겁니다. 지금 정신과에서 시행하는 모든 검사와 처치는 오랜 시간에 걸쳐 많은 노력과 환자의 협조를 통해 얻어진 가장 효율적인 결론입니다. 이렇게 효율적인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저자 스스로 '결국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상담하는 데 진이 빠질 정도로 심혈을 기울이는 수밖에 없다'고 고백합니다. 혼신의 힘을 다해 환자를 보다 장렬히 쓰러지고 싶은 모양이지요? 문제가 있으면 치료하고 치료받으면 되지, 왜 쓰러져요? 딱한 것은 그런 무지몽매한 접근법을 통해 환자만 피해를 본다는 겁니다. 저자는 장렬히 쓰러지기는커녕 유튜브를 통해 계속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잖습니까?

우울증은 정신과 의사에게 치료받는 것이 가장 안전합니다. 정신과 의사는 정신과 이전에 의사이기 때문에 의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갑상선 기능 저하나 부신 피질 호르몬 이상, 영양 결핍으로 인한 우울 증상을 누구보다도 잘 감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울증 치료 중 생길 수 있는 합병증이나 약물 부작용에 대해서도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대처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적인 문제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병원 말고도 많습니다. 약물이 필요하지 않은 가벼운 우울감이나 성격 문제가 주된 원인인 우울증이라면 각종 심리센터에서 상담을 받거나, 정신과 치료 중에도 상담이 위주가 되는 정신분석적 치료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울증 치료에서 병원이 중심이 되어야 하고, 팀 어프로치의 중심에 정신과 의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는 바로 효율성과 합리성에 있습니다. 이 책 때문에 충분히 검증된 안전하고 빠른 길을 외면하고 괜히 돈과 시간을 들여 고생만 하다 치료 시기를 놓치는 안타까운 일이 늘어날까 걱정이 앞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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