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과학회 연속인터뷰①] 소아과학회 양세원 이사장 "소아과 역할 변화 고민할 때"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임신·출산 등에 대한 각종 대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임신·출산 장려 못잖게 태어난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의 정책들이 산발적이고 일시적이란 지적이다. 이에 본지는 ‘소아’ 관련 학회 대표 인터뷰를 통해, 소아 건강 문제 및 정책 등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짚어봤다.

대한소아과학회 양세원(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이사장은 지난해 안아키 논란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 등의 재발방지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소아 건강에 대한 시각 및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피력했다. 의사 개인이나 한두 병원의 노력만으론 한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양 이사장은 또 소아과 의사들의 역할도 과거와 달리 정립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대한소아과학회 양세원 이사장(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

- 저출산 문제가 심각하다. 소아과로서는 직격탄이 될 것이란 지적도 있다.
아이들의 수가 줄어들면, 소아과를 찾는 환아의 수도 줄어들 것이 자명하기 때문에 소아과 내에서도 우려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사례를 볼 때 반드시 ‘저출산=소아과 위기’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 등도 저출산으로 한 때 소아과 인기가 떨어졌었지만, 성장, 발달 등 소수의 자녀에 대한 건강과 양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소아과를 찾는 횟수가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국내에서도 아이들 건강에 대한 부모의 관심의 초점이 달라진 걸 느낄 수 있다. 예컨대 70~80년대 아이들의 키에 대한 관심은 지금과 같지 않았다. 하지만 현재는 성장 측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이다. 그러다 보니 사이비 성장 클리닉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나기도 했다.

- 성장, 양육 과정에서의 소아과 의사들의 역할이 중요해질 것이란 말로 들린다.
소위 키 크는 주사만 맞는다고 실제 키가 커지는 건 아니다. 또한 부모들이 근본적으로 바라는 건 키 큰 아이라기보다 건강한 아이일 것이다.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선 올바른 육아, 성장 정보가 필요하다.

하지만 온라인 등에선 부정확한 정보들이 판을 친다.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논란 등이 발생한 이유도 성장 육아에 대한 올바른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질병 예방은 물론, 부모와 사회에 건강한 지식이 확립되기 위해서는 소아과 의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는 소아과 의사들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환경이 안된다.

- 교육·상담 수가 등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현재도 일부 병·의원들이 육아, 영양 상담들을 자체적으로 진행하고 있긴 하다. 문제는 상담이 1, 2분 내 끝낼 수 있는 게 아니란 것이다. 현실적으로 (진료에 쫓기는)소아과 의사들이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없는 구조다.

부모에게 질병과 육아에 대해 교육하는 것은 아이의 질병예방과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는 연구는 이미 많이 발표돼 있다. 더욱이 영유아 시기 영양 상담을 통해 소아비만 등을 예방한다면 의료비 절감에도 도움을 줄 수 있다. 건강과 불필요한 의료비 지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지난해 사회적으로도 논란이 된 바 있는 안아키에 대한 견해는.
(안아키 참여) 부모들을 탓하고 싶지 않다. (육아, 질병 등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유혹이 들어오면 솔깃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소아당뇨병만 해도 완치되지 않는 질환인데, 이 말을 듣는 부모는 아이에 대한 미안함과 부담 등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런 부모들에게 00주사를 맞으면 완치가 가능하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당연히 혹할 수밖에 없다. 이를 무조건 부모의 잘못으로만 지적해선 안 된다. 황당한 정보로 부모들의 틈을 노리고 있는 것인데 이를 막을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부가 나서서 강력히 규제하고, 제재해야 한다.

- 안아키 외 임상에서 잘못된 정보로 병을 키운 사례를 접한 적이 있나.
한 두 사례가 아니다. 인슐린을 반드시 맞아야 하는 1형 당뇨병 환아가 응급실로 실려 와서 보니 뼈가 엉망이었다. (보호자의) 얘기를 들어보니 온라인 등에서 나오는 민간정보를 접하고 1년 간 인슐린을 끊었다고 하더라. 참담했다.

- 소아과 교육 상담은 어떤 단계부터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하나.
아이가 열이 나면 미지근한 물찜질 등을 통해 열을 내려야 하는데, 인터넷에 나왔다고 아이를 랩으로 칭칭 감는 경우도 있었다. 모유 수유 방법, 기저귀 가는 방법, 아이의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처하는 법 등 육아 시작단계부터 전문가들의 조언을 통해 제대로 된 정보를 숙지하게 할 필요가 있다.

- 최근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 사건과 관련해 성명을 내고, 의료환경에 대한 구조적 문제를 지적하기도 했다.
이대목동병원 사건은 해당 병원 자체 시스템의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개선을 위해선 환경을 바꿔야 한다. 우선 병원이 신생아 중환자실 등에 투자를 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 신생아 중환자실이 각각 방으로 이뤄져 있고, 각 방엔 환아 한 명당 간호사 한명이 배정되고 보호자 방도 따로 있다. 그럼에도 사고는 일어난다.

반면 우리나라는 간호사 한 명이 서너명의 환아를 챙겨야 한다. 병원 내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개선이 전제돼야 한다.

의사, 간호사 개인이 아무리 신경을 써도 제한된 인력으론 (감염 등의) 관리에 한계가 있다. 경영난을 우려하는 병원은 투자를 주저한다. 결국 재정 투입을 통해 환경을 바꿔야 이대목동 사건 재발을 막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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