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개설된 의료기관이라도 정상적인 진료 이뤄졌다면 요양급여 지급해야”

이중개설된 의료기관이라고 하더라도 정상적인 진료행위가 이뤄졌다면 건강보험 급여비를 환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판결이 또 나왔다.

서울행정법원은 A씨 등 치과의사 14명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급여비 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의 손을 들어주며 27억4,078만원 상당의 환수 처분을 취소했다.

치과의사 K씨는 지난 2000년 6월경부터 A씨 등을 구인해 실제로는 급여를 지급하지만 외형상으로 명의원장과 동업계약을 체결하는 방식으로 순차적으로 유디치과의 각 지점을 설립했다.

이후 K씨는 병원경영지원회사 Y사, 치과재료 공급업체 D사, 지점 개설 및 인테리어 업체 M사 등을 설립해 친인척을 대표자로 내세워 운영하면서 각 지점과 거래하게 했다.

하지만 2012년,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개정되면서 기존의 동업방식으로 더 이상 지점을 직접 개설·운영할 수 없게 되자, 외형상 지점 원장들과의 동업관계를 해지한 후 명의 원장들에게 자신이가 소유한 유디치과 지점을 임차하거나 전차하는 형태로 운영 외관을 바꿨다.

이에 공단은 A씨 등이 의료법 제4조 제2항 내지 제33조 제8항을 위반, 국민건강보험법상 환수 대상인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 비용을 받은 경우’에 해당한다며 이들을 상대로 27억4,078만원 상당의 환수처분을 내렸다.

A씨 등은 “의료법이 개정된 후 K씨와의 동업 계약을 해지하고 각자 자신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 이를 관리하며 진료를 했다”면서 “공단의 처분사유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설령 ”의료법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각 의료기관들을 개설·운영했다고 하더라도 각 의료기관들은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에 따라 건보법상의 요양기관에 해당되며, 의료인의 이중개설은 비의료인의 이중개설보다 불법성이 적어 요양급여 수급자격이 없다고 보기 어려운 점, 환자들을 진료한 이상 부당한 이득을 얻었거나 공단이 손해를 입었다고 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건보법에서 정한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법원은 A씨 등의 의료법상 이중개설 위반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이들에게 요양급여비 수급 자격이 있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유디치과 각 지점의 운영 상황 및 수익 회수, 양도 과정 등을 살펴보면 K씨가 2012년 6월 경 전 지점과 동업계약을 해지한 이후에도 여전히 관련 회사를 통해 각 지점의 인적·물적 설비를 관리하면서 의료행위에 개입했을뿐 아니라 지점 수입도 사실상 자신에게 귀속시키는 등 실질적으로 운영한 점이 인정된다”면서 “이에 A씨 등은 각 지점의 형식상 개설명의자에 불과하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이중개설 의료기관이라는 사정만으로는 건보법상 요양급여비용의 청구주체로서 의료법에 따라 개선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않거나, 이들이 보험급여 비용을 지급받은 게 건보법상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법원은 “건보법은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대해 형사책임까지 지워가며 요양급여 실시의무를 강제하고 있다”면서 “그러면 그 반대급부로 요양급여를 실시한 의료기관에게 공단에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법익침해 균형을 맞출 수 있고 공단도 의료기관의 비용을 전보해 줌으로써 의료보장 의무의 이행이라는 국가 행정 목적을 유기적으로 달성하게 된다”고 전제했다.

따라서 “어떠한 의료기관을 건보상 소정의 요양기관으로 인정할 것인지 여부는 그가 요양급여를 실시할 의무를 부담하는지 여부와 그에게 공단이 요영급여비용을 지급할 의무를 부담하지 여부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면서 “만일 어느 하나의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하나의 의무를 부정하게 된다면 이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의 취지에 어긋나게 되므로 A씨 등이 운영한 각 의료기관들은 요양급여비용 수급자격이 인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속임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급여를 받은 경우’에 대한 해석은 보험급여비용의 수령이 법률상 원인 없는 이득, 즉 부당이득이 되는 경우를 전제로 한다”면서 “진료계약이라는 적법한 법률상 원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부당이득으로 판단하다면 이는 사법상 법률관계를 전혀 고려하지 아니하는 결과가 돼 환자와 요양기관 사이의 계약자유의 원칙에 반하거나 헌법상 과잉금지 원칙에 위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이중개설을 위반한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허가가 취소되거나 의료기관 폐쇄명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요양급여를 실시하고 보험급여비용을 공단으로부터 받는 것 자체가 법률상 원인 없는 부당이득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의료기관을 중복·개설 운영했더라도 국민에게 실질적으로 정당한 요양급여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면 원칙적으로 그 비용을 지급하는 게 합당하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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