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공의 48% 성희롱 경험…성폭력 사건 끊이지 않는 의료계

과거 성추행을 당했던 사실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로 인해 검찰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고 있다. 이는 성폭력 피해를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이 국내에서 확산되는 계기도 됐다.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SNS에 해시태그로 ‘#Me too’(나도 당했다)를 남기며 성폭력 경험을 폭로하는 운동이다.

성추행과 성희롱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건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1년 고려의대에 다니던 남학생 3명이 동기인 여학생을 집단으로 성추행하고 이를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사건이 발생해 사회적 공분을 샀다. 당시 가해자인 남학생들은 실형을 선고받고 출교 처분을 받았지만 이들 중 2명이 다른 의대에 입학한 사실이 알려져 또 한 번 논란이 됐다.

2016년에는 인하의대에서 남학생 21명이 여학생들을 성희롱해 무기정학 등의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가해자들 중 일부가 제기한 징계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면서 피해자인 여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듣기도 했다.

전공의 성폭력 사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13년 서울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교수가 인턴이었던 여의사를 성추행해 파면 당한 사건이 있었다. 양산부산대병원에서 수년 동안 여성 전공의들을 성추행하고 성희롱해 왔던 교수는 언론을 통해 문제가 공론화되자 지난해 3월 해임됐다. 같은 해 10월 강남세브란스병원에서는 산부인과 교수가 회식 자리에서 여성 전공의를 성추행해 논란이 됐다.

서울대병원에서는 술을 마시고 여 교수를 성추행한 교수가 인사위원회에 회부돼 6개월 직무 정지 처분을 받는 일이 있었다. 최근에도 한 공공병원에서 여성 전공의를 성희롱한 남성 전문의가 해임됐다.

이는 언론을 통해 공개된 사건들로, 의료계 내에서 벌어지는 성폭력 사건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대한전공의협의회와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공동으로 실시한 ‘2017년 전공의 수련 및 근로환경 실태조사’ 결과, 전공의 1,768명 중 28.7%가 성희롱을, 10.2%는 성추행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특히 여성 전공의는 631명 중 48.5%가 성희롱을, 16.3%가 성추행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성폭력 사건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입는 일도 비일비재한 게 현실이다.

이에 의료계 내에서도 자정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여자의사회가 주도적이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숨지 않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표준화된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게 1차적인 목표다. 이를 위해 여의사회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마다 제각각인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표준화하고 ‘KMA Policy’에 관련 내용을 포함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여의사회는 ‘의료기관 성폭력 대응 표준 매뉴얼’을 개발하기 위해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진행한다. 매뉴얼에는 가해자에게 적절한 징계가 내려질 수 있도록 징계위원회 구성 등에 대한 내용도 담을 예정이다.

의료정책 등에 대한 대한의사협회 입장을 정리한 KMA 폴리시에는 실질적인 성폭력 예방 교육과 피해자 보호 노력 등을 담자고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여의사회는 한국여성변호사회와 손잡고 성폭력 피해 신고 접수는 물론 상담과 법적, 의료적 지원까지 하는 센터 개설도 추진하고 있다.

여의사회 신현영 국제이사(명지병원 가정의학과)는 “성추행을 당한 피해자가 오히려 고통 받는 건 부당하다는 서지현 검사의 말에 많은 여의사들이 공감할 것”이라며 “의료계 내에서 성추행이나 성희롱을 경험한 피해자가 이를 외부에 이야기하면 자칫 의사 사회에서 매장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큰 게 현실이다. 이는 가해자에 대한 징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고 지적했다.

신 이사는 “교육자와 피교육자, 수직적인 상하관계가 대부분인 의료계에서는 성추행이나 성희롱이 있어도 윗사람에게 이의제기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여의사회가 나서서 문제제기를 하고 분위기를 조성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 적절한 징계를 내릴 수 있도록 실질적인 대응 방안을 매뉴얼에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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