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한국여자의사회 김봉옥 회장 “한순간에 달아올랐다 식을까봐 걱정”

법조계에서 시작된 성폭력 문제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 의료계에서는 한국여자의사회의 움직임이 눈에 띈다.

서지현 검사의 과거 성추행 사건 폭로가 있기 전부터 여의사회는 의료계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왔다. 사건이 발생한 병원으로 임원들이 직접 찾아가 피해자를 만나고 병원 측에 사건을 제대로 해결해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2차 피해를 보지 않고 시스템 안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의료계 성폭력 대응 매뉴얼을 표준화하는 작업도 하고 있다. 여의사회 내 ‘인권센터’(가칭)도 설립한다.

여의사회 김봉옥 회장은 본지와 인터뷰에서 “젊은 여의사들 대부분 자신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낸다. 그러다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한다”며 여의사회가 성폭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를 설명했다.

-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성폭력 문제에 사회적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달라진 분위기를 느끼나.

한국여자의사회 김봉옥 회장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성폭력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확실히 달라지긴 했다. 하지만 그래서 더 두렵기도 하다. 한순간에 달아오른 열기는 쉽게 식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의사회가 그동안 조용히 일해 왔던 이유도 관심을 끌기보다는 차근차근 준비해서 앞으로 나가고 싶어서다. 이슈에 발맞춰서 성명서 한번 내고 주목받는 게 목적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여성변호사회와 함께 ‘의료계 성폭력 대응 표준 매뉴얼 TF’를 만들고 ‘인권센터’(가칭)도 설립하려고 한다.

젊은 여의사들 대부분이 자신은 성폭력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지낸다. 그러다가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할지 몰라 당황한다. 그런 피해자들에게는 연락하고 상담을 받을 곳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 법조계에 비해 의료계는 성폭력 문제에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 않다. 의료계는 그래도 현재 일어난 일을 갖고 이야기한다. 법조계는 8년, 10년 전 일어난 일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공개해도 괜찮은 사람들이 앞장선 셈이다. 지금처럼 미투(Me too, 나도 당했다)가 늘어나 오늘 당한 일도 바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 성폭력 사건이 발생한 현장에도 직접 나갔던 것으로 알고 있다.

지난해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던 5곳에 여의사회 임원들과 함께 찾아가서 피해자를 만나고 도울 방법을 논의했다. 피해자만 만난 게 아니라 기관장을 만나 사건을 제대로 해결해 2차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해 달라고 요구했다. 법률 상담이 필요한 피해자는 여성변호사회와 함께 만나기도 했다. 만나기를 꺼리는 피해자는 이메일이나 메신저 등을 통해 연락했다. 5건 모두 가해자들이 징계를 받고 피해자와 업무에서 분리되거나 병원을 떠났다.

- 그 과정에서 힘든 일은 없었나.

매뉴얼은 아직 없지만 피해자를 돕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상황이 심각한 곳에는 피해자에게 또 다른 피해가 가지 않도록 제대로 조치해 달라는 편지를 써서 내용증명으로 보내기도 했다. 피해자들이 오히려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했다. 힘들었던 건 현장에 가기 위해 임원들이 모이는 일이었다. 모두 의사로 일하고 있으므로 시간을 내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런 우리의 노력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때까지 계속해야 한다. 여의사들이 혼자가 아니라 경험 많은 선배들이 뒤에 있다는 걸 알려 나가겠다.

- 성폭력 피해자들이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면.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법적인 부분을 늦게 준비한다. 하지만 가해자들은 자신이 잘못한 걸 알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법적인 대응 전략을 짠다. 피해자에게 친근하게 접근하고 대화한 내용을 녹음해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할 수도 있다. 피해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법적 대응을 해야 2차 피해를 막을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당할 수 있다. 이 부분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의료계 성폭력 대응 표준 매뉴얼’을 만들려는 것이다.

- 여성변호사회,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외에도 대한여자치과의사회, 대한여한의사회 등과도 교류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변호사회가 성폭력 문제에서는 전문직 여성들끼리 모여서 연대하면 좋겠다고 하더라. 그래서 힘을 합치기로 했다. 우리가 먼저 치고 나가야 다른 여성들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겪은 사람들이, 말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정도로 안정된 사람들이 길을 닦아 놔야 그렇지 못한 수많은 여성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제도와 문화를 바꿔야 한다.

- 남자가 대부분이었던 의료계에도 여의사 비중이 늘고 있다. 여의사들이 늘면 의료계 내 분위기도 바뀔 거라고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저 여의사 비중만 늘어서는 바뀌는 건 없다. 말하지 않고 요구하지 않으면 착한 의료노동자밖에 안 된다. 의사결정권자 레벨에 더 많은 여의사가 올라가야 한다. 리더 중에 여의사가 늘어야 한다. 그래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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