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치헬스 CIO 율룬 왕 “미국도 원격의료에 저항…변화는 불가피”

미국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환자의 상태를 한국에서도 스마트폰으로 실시간 확인한다. 진료기록 같은 수치로 확인하는 게 아니다. 마치 직접 회진을 도는 것처럼 환자뿐만 아니라 병실 전체의 모습을 영상으로 본다. 환자를 앞에 두고 미국 병원에 있는 의사와 한국에 있는 의사가 실시간으로 대화하면서 협진도 할 수 있다.

인터치헬스가 개발한 원격의료 로봇을 이용해 협진하는 모습(출처: KHC 2018)

미국 원격의료업체인 인터치헬스(InTouch Health) 설립자겸 CIO 율룬 왕(Yulun Wang)이 보여준 모습이다. 인터치헬스가 개발한 원격의료 로봇 ‘RP-Vita(Remote Personal Virtual Independent Telemedicine Assistant)’이 중개 역할을 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RP-Vita는 의사가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환자를 진료할 수 있도록 돕는다.

율룬 왕은 1990년 세계 최초로 수술 보조 로봇인 ESOP을 개발했다. 그는 컴퓨터모션을 이용한 ESOP을 ‘외과 의사의 3번째 팔’이라고 표현했다. ESOP은 손 떨림 없이 최소 부위만 절개해 수술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한다. 1997년에는 최소 침습 관상동맥우회술을 할 수 있는 장치도 개발했다. 그러나 율룬 왕이 처음 설립한 의료로봇 회사는 특허 문제로 2002년 인튜이티브 서지컬(Intuitive Surgical)에 합병됐다.

율룬 왕이 그 다음 주목한 분야가 원격의료인 ‘텔레메디신(Telemedicine)'이다. 율룬 왕은 2003년 인터치헬스를 설립하고 원격의료와 로봇을 결합했다. 대한병원협회 주최로 지난 12일부터 13일까지 열린 ‘Korea Healthcare Congress(KHC) 2018’에 주요 연자로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율룬 왕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당시에는 텔레메디신에 인터넷을 접목하는 건 신선한 아이디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네크워크가 곧 병원(The network is the hospital)”이라고 강조했다. 인터치헬스는 병원 2,000곳, 의사 7,500명과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다.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과 클리블랜드 클리닉(Cleveland Clinic)도 협력 병원이다.

인터치헬스는 뇌졸중을 빠르게 진단해서 1시간 내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돕는 ‘텔레스트로크(Telestroke)’ 시스템도 개발했다. 미국에만 150개 텔레스트로크 네트워크를 만들었으며 각 네트워크는 10~15개 병원과 연결돼 있다. 클리블랜드 클리닉은 CT 촬영과 화상 원격 진료가 가능한 시스템을 갖춘 구급차를 운행하고 있다. 환자에게 뇌졸중 증상이 발견되면 병원으로 이동하면서도 원격의료 기기로 신경과 전문의가 실시간 진료한다.

인터치헬스 설립자 겸 CIIO 율룬 왕은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의료시스템이 현실에서 가상으로 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율룬 왕은 “텔레스트로크로 진단한 환자의 뇌졸중 환자의 90%가 한 시간 내에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올해에만 뇌졸중 환자 1만3,000명을 봤다”고 말했다.

인튜이티브 서지컬과 함께 암 수술 시 종양 제거를 완벽하게 할 수 있도록 종양을 3D로 재구성해서 보여주는 시스템도 구축했다. 로봇수술을 하는 집도의는 실시간 3D로 재구성된 종양을 보면서 수술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율룬 왕은 “4차 산업혁명이 의료에도 정착할 것이다. 이런 변화에 필요한 건 데이터를 종지에서 전자로 옮기는 일이다. 여기에 virtual care를 더하면 4차 산업혁명은 가속화될 것이다. 텔레헬스(Telehealth)는 의료서비스를 가상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율룬 왕은 “환자가 병원 응급실을 직접 찾는 대신 웹사이트에 로그인해서 의사를 만날 수 있는 방식이 있다면 어떨까. 미국은 현재 그런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다”며 “병원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의사들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환자들을 만날 수 있는데 미래 의료의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원격의료로 불리는 텔레메디신에 반감을 보이는 한국 의료 상황은 ‘성장통’으로 봤다. 10여년 전 미국의 상황도 한국과 비슷해서, 의사와 환자 모두 원격의료를 불신했다고 했다.

율룬 왕은 “미국에서도 원격의료에 많은 저항이 있었고 최근에도 있다. 텍사스주에서 원격으로 진료하기 전에 의사가 먼저 환자를 직접 봐야 한다며 의료진이 텔레메디신 회사를 고소한 일이 있었다. 결국 대법원까지 가서 텔레메디신 회사가 이겼다. 대법원은 원격으로 진료하기 전 환자를 대면할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다”며 “현실이 아닌 가상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가는 건 피할 수 없다. 왜냐면 더 싸고, 빠르고, 상황을 좋게 만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율룬 왕은 지난 13일 서울 용산구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열린 ‘Korea Healthcare Congress(KHC) 2018’에 참석해 '네트워크로 연결되는 의사와 입원환자'에 대해 발표했다.

대형병원 환자 쏠림 현상이 문제로 지적되는 한국에서 원격의료가 도입되면 쏠림 현상이 더 심화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원격의료가 균형을 맞추는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되려면 원격의료에 대한 재정적인 인센티브 체계가 확립돼야 한다고도 했다.

율룬 왕은 “수도권이나 큰 병원으로 환자가 몰리는 건 한국이 조금 더 심할 수는 있지만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오히려 원격의료로 전문성을 외부로 확산시켜 큰 병원의 혼잡도를 줄이고 작은 병원으로 배분해 균형을 잡게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율륜 왕은 “원격의료에 대한 재정적인 인센티브를 잘 갖춰야 한다. 인센티브를 설정하는 게 가장 오래 걸린다”고도 했다.

율룬 왕은 “15년 전 인터치헬스를 설립했을 때는 환자들이 원격의료를 거부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일은 없다. 미국원격의료협회(American Telemedicine Association) 회장을 맡기도 했는데, 원격의료가 효과적이라는 걸 보여주는 논문이 1,000여개 이상 발표됐다”며 “변화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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