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 없이 의료기관에 책임 전가"…일부 업체 시스템 연동 따른 별도 비용 요구
"진료기록 남는 것 꺼려한 환자들 약물처방 기피 우려…치료시기 놓칠 수 있어”

마약류 제조·생산 및 수입, 유통, 사용 등 전 과정을 전산으로 보고토록 한 ‘마약류 취급보고제도’가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하지만 의료기관에 과다한 경제적·행정적 부담을 전가하는 한편 환자가 치료를 기피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어 혼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18일부터 ‘마약류 취급보고제도’가 시행된다.

‘마약류 취급보고제도’는 수면마취제인 프로포폴을 피로회복주사로 투약하는 등 의료용 마약류에 대한 오·남용이 사회 문제로 부각됨에 따라 마약류를 보다 엄격히 관리하고자 마련됐다.

마약류 취급의 모든 단계를 상시 모니터링 해 그동안 발생했던 마약류의 오남용과 불법 유출 사례를 예방하고, 마약류 안전관리망을 구축하겠다는 복안이다.

(자료제공: 식약처)

기존에도 마약류 취급 시 마약류 대장 등에 취급내역을 기재해 보고해야 했으나, 이번에 시행되는 보고제도는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에 상시 보고토록 하고 있다.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에 약물 사용 등을 상시 보고하기 위해선 약물 바코드를 리더기에 접촉하거나 수기로 기록해야 한다. 다만 의사가 진료를 보며 바코드를 일일이 수기로 기록하기란 시간적으로 여유가 없는 만큼 개원가에서는 리더기를 구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리더기 가격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이에 대한 지원은 전무해 개원가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적지 않다.

외과 개원의 A씨는 “바코드 리더기 가격이 100만원에 달하지만 이에 대한 정부 지원이 전혀 없다”면서 “약물을 사용하기 위해 내시경을 할 때마다 마약류통합관리시스템에 입력하는 절차 역시 불편하다”고 토로했다.

또 “중점관리품목으로 지정된 약물들은 앞으로 확실히 덜 사용하게 될 것 같다”면서 “실수 한 번으로 마약사범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몸을 사릴 수밖에 없다”고 했다.

EMR(Electronic Medical Record, 전자의무기록)과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을 연동시키기 위해 별도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재활의학과 개원의 B씨는 “EMR에 약물 사용을 기록하면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과 연동되는 시스템이 있는데 일부 업체에서 이에 대한 별도의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면서 “규제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에 따른 지원도 필요하다. 하지만 계속 의료기관의 책임만 늘어나고 있는데 어느 누가 반기겠냐”고 꼬집었다.

보고 대상 약물, 특히 향정신성의약품을 처방받는 환자들이 기록이 남는 것을 두려워 해 약물 처방을 꺼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대한정신건강의학과의사회 관계자는 “기록이 남는 것을 꺼려 급여권을 포기하고 비급여로 약물을 처방 받는 환자들이 있는데 앞으로는 이 환자들의 기록이 마약류 통합관리 시스템에 저장된다”면서 “이로 인해 약물을 처방받아야 하는 환자가 이를 거부하거나 조기 치료로 증상이 나아질 수 있는 환자들이 치료시기를 놓치게 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한 산부인과 개원의는 “고시가 나오면 1일부터 시작하는 게 정상인데 18일부터 한다는 게 애매하다”면서 “의사들이 수시로 바뀌는 고시를 어떻게 알 수가 있겠나. 행정력이나 고시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의원급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대한의사협회도 마약류 취급보고제도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의협 방상혁 상근부회장은 “통합관리 시스템으로 인한 정보의 집중화는 유출의 위험성도 그만큼 높아지게 한다”면서 “특히 향정신성의약품 투약 내역이 유출된다면 환자 개인의 피해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지적했다.

또 “의료기관의 시스템 설치, 운영 및 입력 등에 따른 행정적·재정적 부담에 대한 고려는 하나도 없이 무조건적으로 해당 병의원이 이를 감수하게 하는 것은 받아들이기 힘들다”면서 “약물 종류에 따른 보고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간을 넘기거나 일부라도 보고에서 누락되면 업무정지 등의 행정처분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 또한 과도한 규제”라고 비판했다.

이에 “통합관리 시스템 도입에 따른 행정적·기술적 지원과 함께 마약류 관리 수가 신설 등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면서 “정보 유출 등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해 환자명이나 병명 등 민감 정보는 최소한의 한도에서 기록케 하고 보고기간 초과나 일부 누락 등으로 인한 페널티도 개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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