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허대석 교수 “윤리위 설치 기관만 접속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현장 혼란”
#1. 암 환자 A씨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했지만 현재 연명의료를 받고 있다. 입원해 있던 요양병원은 연명의료 정보 처리시스템에 접속해서 A씨의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 여부를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에게 심정지가 오자 요양병원 측은 CPR(심폐소생술)을 하고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이송했다.
#2. 말기암 환자인 B씨는 호스피스·완화의료를 받기 위해 요양병원을 찾았다. 하지만 요양병원 측에서는 B씨에게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해 와야 입원할 수 있다고 했다. B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기 위해 다니던 서울대병원을 찾았다.
현재 의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현장은 여전히 혼란스럽다.
서울대병원 윤리위원장인 허대석 교수는 지난 8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2018년도 한국의료질향상학회 봄학술대회’에 참석해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되고 시행됐지만 현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진다”며 이같은 사례를 공개했다.
허 교수는 “우리는 임종이 임박한 환자를 두고 뭔가 끊임없이 하는 의료집착 현상이 심각하다”며 “우여곡절 끝에 연명의료결정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한 명만 기권하고 나머지 의원들은 다 찬성했는데 법을 이해하고 찬성표를 던졌는지 모르겠다. 내가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허 교수는 “무의미한 연명의료에는 90%가 반대하지만 10~20%만 법정 서식(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을 작성한다”며 “법은 좋은 취지로 제정됐지만 시행령과 시행규칙이 입법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허 교수는 “연명의료 정보 처리시스템은 윤리위를 설치한 기관만 접속할 수 있다. 5월 28일 기준 전국 의료기관 중 4.3%인 142개소만 시스템에 접속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나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한 환자인지 확인할 수 있다”며 “자신이 쓴 연명의료계획서 등을 확인해서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가지 않으면 헛수고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또 “세계 어느 나라도 말기와 임종기를 구분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나눠서 제도를 복잡하게 해 놨다. 말기 환자의 경우 의사가 CPR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면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보편적 가치”라며 “우리는 모든 걸 자기결정권으로 해석하려고 해서 복잡해졌다. ‘환자 입장에서 무엇이 최선인가’라는 시각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 교수는 “가족 구조가 바뀌고 있는데 현행법에 의하면 연명의료 중단에 동의해줄 가족이 없는 1인 가구나 독거노인은 모두 무연고자로 법 적용을 받을 수 없다”며 “이같은 문제 때문에 일본은 올해 (연명의료 중단 동의할 수 있는 사람을) 직계에 국한하지 않도록 바꿨다”고 지적했다.
인천은혜요양병원 가혁 진료원장은 “법이 생기고 나서 현장에서는 자기결정권이 약화되는 것 같다”며 “현실적으로 와 닿을 수 있도록 절차를 간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보건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반윤주 사무관은 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했다.
반 사무관은 “제도가 시행된 지 4개월 지났다. 지금은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 뿐만 아니라 임종기 환자 돌봄 전반으로 제도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호스피스·완화의료와 연명의료 결정 사이 관계성을 강화하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