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연구진실성위 “지적 기여했지만 저자 인정기준 미달"…재심서 스승 손 들어줘

서울 한 대학병원 성형외과에서 벌어졌던 교과서 대리 집필 논란에 대해 대학 연구진실성위원회가 부당저자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기존 판정 결과를 뒤집었다. 대리 집필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 대학 연구진실성위는 대리 집필 의혹이 제기된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Plastic Surgery third edition by Peter C. Neligan) 22장(Ischemia of the Hand part)에 대해 재심의를 실시한 결과, 연구윤리규정 제31조 1항 4호 부당저자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같은 재심의 결과는 지난 8일 조사 대상자들에게 통보됐다.

이 교과서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성형외과 교과서로 우리나라 성형외과 전문의 자격시험에도 활용된다. 논란이 된 부분은 손 성형과 관련된 22장으로, 저자는 이 대학병원 성형외과 A교수다.

하지만 같은 대학병원 부교수로 있는 B씨가 교과서 집필에 상당한 기여를 했음에도 저자에서 누락됐다며 지난해 7월 4일 연구진실성위에 제보하면서 대리집필 논란이 일었다. B교수는 A교수 밑에서 전공의와 전임의 과정을 마쳤으며 전임의 시절 교과서 초안을 작성하는 등 집필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주장했다.

연구진실성위는 지난 2월 19일 “제보자(B교수)가 저자에서 누락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는 연구윤리규정 제31조 1항 4호(부당저자표시)에 해당하는 연구부정행위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A교수는 연구진실성위가 판단의 근거로 삼은 초본 자체를 자신이 썼다며 지난 3월 5일 재심의를 요청했다.

미국 성형외과 교과서(Plastic Surgery third edition by Peter C. Neligan) 중 손 성형 관련 내용을 한국 모 대학병원 성형외과 교수가 써서 화제가 됐다.

대학 연구진실성위 “지적 기여 했지만 저자 인정 기준은 충족 못했다”

그 재심의 결과가 3개월만인 지난 8일 나온 것이다. 연구진실성위는 피조사자의 재심의 요청을 받아들여 재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조사한 결과, 해당 교과서 22장은 부당저자표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이번에는 ‘국제의학학술지편집인위원회(International Committee of Medical Journal Editors, ICMJE)’의 저자 정의를 적용했다.

연구진실성위는 ICMJE이 정의한 저자를 ▲연구의 구상과 계획, 데이터 수집과 해석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고 ▲논문 초안을 작성하거나 중요한 지적 내용(important intellectual content)에 대해 그 논문을 비판적으로 교정 또는 개정해야 하며 ▲최종본을 확인 또는 승인하고 여구의 정확성과 온전성(integrity)에 대해 설명 가능해야 한다로 설명했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이 세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할 때 저자 자격을 인정한다고 했다.

연구진실성위가 1심과 달리 재심에서 문제의 교과서 22장이 부당저자표시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이유는 B교수가 ICMJE 저자 인정 기준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B교수가 교과서 초안을 작성하는 등 집필에 기여한 점은 인정했다.

연구진실성위는 “제보자(B교수)가 해당 교과서 챕터 22 본문의 초안 작성을 포함해 일정 정도의 지적 기여가 있었음을 인정한다”면서도 “ICMJE 저자 인정 기준을 모두 충족한다고 볼 수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진실성위는 “ICMJE에 따르면, 제보자와 같이 저작과정에 기여했으나 저자로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기여자(Non-Auther Contributors)로 분류해 감사의 글 등에 밝히도록 하고 있다”며 “피조사자(A교수)가 제보자의 기여에 대해 이런 행위를 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본교 연구윤리규정 제31조 1항 4호(부당저자표시)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판단했다.

“불명예스러운 일에서 벗어나 다행, 진실 어느 정도 밝혀져”

이같은 결과에 A교수는 뒤늦게라도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라고 했다. B교수가 교과서 집필에 어느 정도 기여했다는 판단한 부분은 사실과 다르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A교수는 “이번 교과서 집필건으로 많은 사람이 에너지와 시간을 낭비해 미안하고 안타까웠다. 나 역시 진료와 수술, 교육과 연구에 쓸 노력을 이 건의 소명에 소모했다”며 “재심 결과에 100% 만족하지는 않지만 불명예스러운 일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진실이 어느 정도 밝혀졌다”고 말했다.

A교수는 “재심의 과정에서 9차례나 답변서를 써서 냈다. 이런 일에 보낸 시간이 아까고 정신적으로도 많은 피해를 입었다. 무엇보다 이런 일에 얽매여 제자와 동료 교수에 부끄럽고 미안하다”며 “이제 정상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에너지를 모아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문제 제기를 했던 B교수는 납득할 수 없는 결과라며 제3의 기관에 다시 심의를 맡기는 방법까지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B교수는 “1심에서는 누가 많이 썼느냐는 부분을 봤다면 재심에서는 누가 많이 썼느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본 것”이라며 “지적 기여는 했지만 저자는 될 수 없고, 감사의 글에는 밝혀야 한다는 결론 자체가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B교수는 “연구진실성위는 재심까지 밖에 없다고 해서 학교 내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며 “1심에는 외부 위원이 참여했지만 재심은 그렇지 않았다고 들었다. 심의 과정이 공정했다고 볼 수 없다. 정치적인 입김이 개입했다고 본다”고도 했다.

B교수는 A교수를 상대로 제기한 저작권법 위반 소송도 계속 진행하겠다는 입장이다. A교수도 B교수와 대리집필 의혹을 처음 보도한 기자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상태여서 법정 공방전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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