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 특수성 고려치 않은 판결…방어진료 부추기고 책임 회피 조장할 것”

법원이 실수로 환자를 식물인간에 이르게 한 의사들에게 이례적으로 손해 전액에 대해 책임을 묻는 판결을 선고하자 의료계가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서울북부지방법원은 최근 과실로 환자를 식물인간에 이르게 한 의사 3명에게 내년 9월까지 3억8,000만원을 일시금으로, 이후 환자가 사망할 때까지 매달 400만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4월 동네병원에서 대장 내시경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의료진 실수로 A씨 대장에 지름 5㎝의 구멍이 생겼다.

이 사실을 몰랐던 의사는 고통을 호소하던 A씨의 시술을 병원장에게 넘겼고, 이후 A씨는 상급 병원으로 옮겨졌다.

대장에 구멍을 발견한 상급병원 의사 B씨는 접합을 시도했다. 하지만 수술 중 A씨에게 심정지가 발생했고, 호흡기에 관을 삽입하는 과정에 연달아 실패하며 20여분간 뇌에 산소 공급이 차단됐다.

결국 A씨는 현재 식물인간 상태이다.

법원은 의사 3명 모두 과실이 있다고 판단, 과실로 인해 발생한 손해의 전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A씨가 기존에 대장질환과 지병이 없었음에도 의료진 과실로 천공을 입었고 추가검사 도중 쇼크를 일으켜 최종적으로 뇌손상을 입었다”면서 “피고들의 책임을 제한하지 않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그러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5일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은 선한 행위를 기반으로 한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손해의 공평분담이라는 의료사안에 대한 이해가 전무했기 때문에 비롯됐다”면서 “작금의 현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의협은 먼저 “진료를 받던 도중 의식을 잃은 환자와 그 가족에게 가슴 깊이 위로를 전하고 이러한 일이 일어난 것에 대해 심히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다만 가족들의 원통함을 십분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황에서도 우리 일선 의사들의 입장을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점 또한 양해를 구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의료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이번 판결로 인해 방어진료 및 책임 회피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협은 “이번 판결은 열악한 여건 하에서 묵묵히 진료실과 수술실을 지키며 환자와 국민건강을 위해 헌신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하다”면서 “종국적으로 전국의 의사들로 하여금 가능한 책임질 일이 없는 방어 진료를 부추기는 결과를 만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어 “의료인에 의한 의료행위 과정에서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악결과는 의료행위의 침습성이라는 특성에서 오는 것이기에 그동안 의료분쟁 소송에서 공평한 책임의 분배라는 원칙에 따라 의료진의 책임을 분배해 왔다”면서 “하지만 이번 판결로 의료진에게 100%의 책임을 지운다면 어느 의사가 위험부담을 무릅쓴 채 환자의 생명을 지키려 하겠냐”고 반문했다.

특히 “의료 전문가인 의사라 하더라도 의료행위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측의 상황에 대해 예견하거나 회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게 사실”이라며 “환자를 수술하고 진료하는 의사 또한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전문적 지식과 경험에 따라 최선의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또 하나의 국민일 뿐”이라고 했다.

의협은 “이번 판결은 의료행위의 책임제한 법리를 독자적으로 배척한 잘못을 범한 것으로 반드시 상급심에서 파기될 것임을 확신한다”면서 “협회는 이번 판결이 상급심에서 바로잡아질 수 있도록 의료계의 모든 힘을 모아 나갈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정부와 법조계는 이와 같은 판결이 재발되지 않도록 향후 법조인 양성교육에 의료행위의 특수성과 이에 따른 위험성을 인식하는 의학 관련 정규 교육을 추가해달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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