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혈액안전관리원 설립' 놓고 이견…적십자사-시민단체간 고성도 오가

국가혈액관리 개선방안 토론회가 열렸지만 대한적십자사, 혈액원, 학계, 시민사회단체 간 입장이 달라 개선안 마련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혈액원과 시민단체는 적십자사의 혈액사업 독점이, 적십자사는 혈액원에 대한 관리·감독 부재가 문제라며 서로를 헐 뜯느라 개선방안을 위해 머리를 맞대보자는 토론회에서는 시민단체와 적십자사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 김상희 의원은 10일 오후 국회에서 ‘국가혈액관리, 이대로 좋은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중앙의대 진단검사의학과 차영주 교수는 국가 주도 혈액관리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적십자사 중심 혈액사업을 국가혈액관리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영향으로 헌혈을 할 수 있는 사람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인 혈액을 효과적으로 관리·사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하며, 해결책은 국가주도 혈액관리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차 교수에 따르면 6일 현재 국내 혈액보유량은 O형은 2.6일분, A형은 2.6일분, B형은 5.1일분, AB형은 3.8일분으로, B형을 제외하고는 모두 적정혈액보유량인 일평균 5일분 이상에 미달한다(5일분 미만 관심, 3일분 미만은 주의, 2일분 미만은 경계, 1일분 미만은 심각).

이에 차 교수는 혈액사업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재)국가혈액안전관리원(가칭) 설립이 필요하다고 밝히며, 안전관리원을 통해 ▲공급혈액원의 혈액 수급 및 질관리 정책 총괄 ▲의료기관과 연곟나 수혈관리 수행 ▲미래수요 대비 지속가능성 확보를 위한 혈액·수혈연구 지원 등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187개 세계적십자연맹 회원국 가운데 적십자사가 채혈부터 공급까지 혈액사업을 수행하고 있는 나라는 약 11%에 불과한 21개국 뿐”이라며 “점차 정부 주도 혈액사업으로 이행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차 교수는 “우리나라 혈액사업은 컨트롤타워가 없어 복지부, 질병관리본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정부 기관 중 어느 한 기관에서 담당하기 어렵다”며 “정부가 위탁할 수 있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가 모여서 활동하는 전문기관 설립이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서로 반감 숨기지 않는 적십자사와 민간 혈액원

하지만 토론회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컨트롤타워 필요성에는 동의한다면서도 정작 혈액관리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으로 서로를 지목하는 등 갈등의 폭을 좁히지 못했다. 학계에서는 수혈을 줄이는 치료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한환자혈액관리학회 김영우 전 회장(국립암센터 외과)은 수혈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혈액을 소중히 사용하는 방향으로 치료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전 회장은 “수혈과 관련해 ‘오죽하면 의사가 피를 쓰겠냐’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것은 과거의 지식”이라며 “지난 10년 사이 수많은 논문을 통해 수혈을 피하는 방법으로 환자를 치료하면 환자 치료성적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이런 새로운 정보를 공유해 귀중한 혈액을 소중히 사용하고 수혈을 피하는 방향으로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회장은 핼액관리 컨트롤타워와 관련해서는 “재단법인 형태로는 혈액관리에 성공할 수 없다. 국가기관이 해야 한다”고 했다.

건강세상네트워크 강주성 대표는 국내 혈액사업을 90% 이상 독점하고 있는 적십자사가 문제라고 지적하며 “적십자사가 (국내 혈액사업을) 90% 이상 독점한 것이 수십년이다. 독점 때문에 각종 폐해가 생기는 것이다. 적십자사의 권한과 기능을 축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강 대표는 “지금 헌혈은 말이 헌혈이지 매혈에 가깝다. 10~20대 헌혈비율이 70%를 넘는 상황에서 이들이 영화표, 빵 때문에 헌헐을 하고 있다”며 “헌혈을 하면 주는 헌혈증의 경우도 사실상 자기 혈액을 예치해두는 헌혈예치증서”라고 지적했다.

강 대표는 “이런 상황이 왜 발생했는가. 혈액사업 주체의 혈액사업에 대한 관점, 이해, 태도가 잘못됐기 때문”이라며 “한 조직이 너무 많은 권한을 남용하고 있다. 적십자사 권한을 축소하고 국가혈액안전관리원을 설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대한산업보건학회 한마음혈액원 황유성 원장 역시 적십자사의 독점에 문제를 제기했다. 특히 황 원장은 보건복지부 등 정부가 조정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황 원장은 “헌혈과 혈액수급의 다양성과 적정성 제고를 위해 한마음혈액원과 중앙대병원혈액원이 설립됐지만 정부는 적십자사가 말을 잘 안들을 때에는 민간 혈액원을 지원하다가도 적십자사가 열심히 할 때는 지원을 꺼려했다”고 말했다.

황 원장은 “적십자사혈액원이 그동안 관행적으로 해왔던, 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일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도 정부는 선량하고 공정한 관리자의 역할을 하기 보다 적십자사 의견에 경도된 일처리를 하는 것처럼 여겨진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황 원장은 의료기관이 아닌 적십자혈액원이 입영 장정 신체검사를 무료 및 실비만으로 수행하는 것, 한마음혈액원 등의 군부대 헌혈 문호 개방 요구에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 등을 예로 들었다.

황 원장은 “국가혈액관리 컨트롤타워로서 국가혈액안전관리원 설립 불가피성에 대해 공감하며 지지한다”며 “혈액원 입장에서 실력과 능력을 갖춘 감독자가 생기는 것이 반가운 일은 아니며 불편할 수 있지만 국가적으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여러 토론자로부터 공격을 받은 적십자사는 오히려 민간 혈액원에 대한 관리감독이 부족하다고 맞받아쳤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 김명한 본부장은 “1999년 혈액사업 주체가 적십자사, 중앙대병원, 한마음혈액원으로 분산된 후 이런 분산이 옳았는지에 대한 평가가 한번도 이뤄진 적이 없다”며 “적십자사는 매년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를 받지만 민간 혈액원은 국고지원을 받으면서도 감사를 받지 않는다. 관리에 소홀한 것은 민간 혈액원”이라고 주장했다.

김 본부장은 “혈액사업을 여러 기관에서 나눠하는 것은 국민건강을 생각할 때 옳지 못하다. 경쟁으로 인해 기념품을 나눠주는 서비스만 좋아질 뿐”이라며 “이런 것에 대한 정확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본부장 외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적십자사 노조 관계자들도 민간 혈액원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노조 한 관계자는 “재단 형태의 국가혈액안전관리원이 생기면 한마음혈액원, 중앙대병원혈액원, 적십자를 디스하는 강주성 대표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며 “특정 단체에 이득이 생기는 재단 형식 관리원은 반대”라고 밝혔다.

양 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는 과정에서 노조의 또 다른 참석자와 강주성 대표 간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한편 정부 대표로 참석한 복지부 생명윤리정책과 박미라 과장은 혈액관리 컨트롤타워 구축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겠다고 밝혔다.

박 과장은 “(혈액관리 컨트롤타워 구축과 관련해) 협의체를 구성해 공론화작업을 하겠다. 가야할 방향은 안전한 혈액을 안정적으로 대다수 국민에게 공급하는 것”이라며 “이와 함께 폐기 혈액을 활용한 연구 지원 등 부수적인 부분도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복지부에서 더 깊이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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