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파브리병 환자 200명 불과…진단기준 못쫓는 급여기준 때문에 조기발견도 어려워

환자수가 200명에 불과한 희귀질환이 있다. 이 질환은 매우 어렸을때 증상이 나타났다가 한동안 잠복기를 거친 후 성인이 되면 다시 시작된다. 증상이 심한 경우 목숨까지 잃을 수 있다. 바로 파브리병을 두고 하는 말이다. 파브리병은 첫 증상 발현부터 진단까지 15년 이상 걸릴 정도로 조기진단이 어려운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대한신장학회 산하 파브리연구회가 7월 초 파브리병의 가이드라인을 구축하고 조기진단과 효소대체요법을 통한 치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진 왼쪽부터 권영주 교수, 양철우 교수, 오티즈 교수

유전병이자 희귀질환인 파브리병

파브리병은 알파-갈락토시다제A라는 효소가 결핍돼 발생하는 희귀질환이다. X염색체 우성 유전 질환으로 어머니가 환자일 경우 자녀는 성별에 관계없이 50% 확률로 유전된다.

아버지가 환자일 경우 딸은 100% 유전변이를 가지게 된다. 이에 환자 가족들도 파브리 유전자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먼저 진단된 가족으로 인해 조기진단과 치료를 받는 게 중요하다.

신장 질환은 파브리병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진단이 늦어질 경우 사구체 여과율이 지속적으로 감소해 30~50대에 걸쳐 말기신부전증이 발병할 수 있다. 학계는 말기신부전증으로 혈액투석중인 남성 환자 중 0.2~0.3%가 파브리병 환자라고 보고하고 있다.

조기진단이 매우 중요하지만 평균 15년 가량이 소요될 정도로 파악이 어렵다. 그 이유는 증상이 발현되는 시점에 환자의 나이가 어리고 시간이 지나면 이같은 증상도 잠시 사그러지기 때문이다.

고대구로병원 권영주(신장내과, 파브리연구회 부회장) 교수는 "파브리병 환아가 가장 흔히 겪는 증상으로는 손과 발의 통증이나 복통, 무한증, 그리고 온도변화에 취약한 것을 꼽을 수 있다"며 "특히 이 중 몇 가지 증상은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성인기에 이르러 신경 세포 파괴로 인해 더 이상 통증을 느끼지 않게 된다. 증상이 다소 비특이적이기 때문에 파브리병에 대한 인식이 없다면 단순히 어린 아이의 꾀병 정도로 치부될 수 있다. 각 증상에 주목하지 않거나 과거 이력에 주목하지 않으면 놓치기 쉽다"고 설명했다.

권 교수는 또 "처음 문제가 되는 질환은 혈관 질환이며, 더 진행되면 중추신경, 신장, 심장 등에 영향을 미친다. 증상이 가장 먼저 확인되는 장기가 신장이나 단백뇨 등으로 파악할 수 곳이 아니라 발견하는 게 쉽지않다"면서 "대만과 같이 신생아 스크리닝(NBS, New Born Screening)을 적극적으로 시행하는 나라도 있으나 국내 도입까지는 윤리성 및 소아과 등 관련 학과와의 논의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외국의 파브리병 가이드라인 내용은?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질환이지만 다른 나라들은 파브리병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이미 임상현장에 적용하고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 히메레스디아즈재단 보건연구소 알베르토 오티즈(신장내과) 교수에 따르면 유럽 등 주요 국가에서 적용하고 있는 치료법은 효소대체요법(ERT)이다. 신장, 심장 등에 발현될 경우 보조요법(adjuvant therapy)을 함께 시행하기도 한다.

오티즈 교수는 "파브리병은 태아일 때부터 시작되는 진행성 질환으로 일정 시기를 지나면 주요 장기에 비가역적인 손상이 일어나기 때문에 유럽에서는 조기 진단과 조기 ERT 치료를 강조한다"고 소개했다.

최근 개정된 가이드라인은 다양한 유형으로 나타나는 파브리병에 관한 내용도 다루고 있다고 오티즈 교수는 설명했다.

오티즈 교수는 "파브리병에는 전형적 유형(classical type)과 비교적 늦은 나이에 증상이 나타나는(late onset), 즉 다른 말로 비 전형적 유형(non-classical type)이 있으며, 어느 유형이냐에 따라 치료가 달라진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유형의 남성 환자는 어릴 때부터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바로 치료를 시작해야 하지만 비 전형적 유형의 환자나 여성 환자의 경우, 어떤 증상이 발현되느냐에 따라 치료의 기준이 달라진다는 것. 비 전형적 유형의 경우 과거 단백뇨가 보고된 시점이 치료의 기준이었다면, 지금은 단백뇨 이전 증상인 미세알부민뇨가 나타나는 시기부터 치료를 권장한다는 게 오티즈 교수의 설명이다.

오티즈 교수는 "ERT에 있어 용량의 중요성과 질환의 통합적 치료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현재 가이드라인은 주 치료인 ERT 외에도 각 장기에서 나타날 수 있는 증상에 필요한 보조 요법에 대해서도 굉장히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면서 "하나의 치료법이 아닌 주요 장기의 증상에 대한 통합적 치료를 제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의료진, 가이드라인 필요 공감…문제는 급여

파브리연구회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1만7,000명 중 1명, 남성 4만명 중 1명에서 파브리병을 앓고 있다. 신생아 스크리닝을 시행하는 이탈리아의 경우에는 3,100명 중 1명, 대만은 1만5,000명 중 1명으로 확인됐다.

우리나라 인구를 5,000만명으로 했을 때 적게는 600명에서 많게는 1,000명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연구회는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파브리병으로 보고된 환자가 약 200명에 불과하다. 800명의 환자가 아직 수면위로 드러나지 않은 것이다. 희귀질환이라고 하나 아직 진단되지 않은 환자가 많아 생각보다 환자는 더 늘어날 것이라는 게 연구회의 분석이다.

파브리연구회가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는 했지만 문제는 급여기준이다.

권영주 교수는 "보통 단백뇨 수치를 바탕으로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를 진행하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단백뇨 전에는 미세알부민뇨가, 그 전에는 족세포가 소변에 보이는 경우가 있다"면서 "다만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단백뇨가 300mg 이상일 때 급여 적용이 가능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권 교수는 "딥스틱 검사를 통해 단백뇨가 확인되지 않으면 미세알부민뇨 확인을 하게 되는데, 검사비가 비싸기 때문에 보통 단독으로 확인하기 보다 당뇨와 같은 다른 질환이 있을 때 검사를 한다"며 "대학병원 규모의 신장내과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정기적으로 단백뇨가 확인되는 경우이므로, 구조상 국내 환자는 증상 확인이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치료의 목적은 질환 속도를 늦추는 것이 아니라, 투석이나 신장 이식으로 질환이 진행하는 것을 막는 것"이라면서 "파브리병으로 인한 비가역적 장기 손상이 나타나기 전 조기에 질환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로 조기 치료가 활발히 이행된다면 질환에 대한 인식도 긍정적으로 변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파브리연구회장을 맡고 있는 양철우(서울성모병원 신장내과) 교수는 "각 병원의 의사 개개인마다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병원 내 한 명의 의사가 파브리병을 진단하고 환자를 발견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면서 "연구회를 설립한 것도 다양한 접근을 바탕으로 진단과 치료 시 서로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조직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