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표 광주광역시의사회 명예회장

중국에 다양한 스타일의 미인을 뜻하는 '연수환비(燕瘦環肥)'라는 말이 있다. ‘연’은 수척하고 ‘환’은 비만하다는 뜻인데 연과 환은 한나라 성제의 부인 조비연(趙飛燕)과 당나라 현종이 총애한 양옥환(楊玉環, 양귀비의 본명)이며 중국 최고의 미인들이다. 물찬제비(비연)는 바람에 날아갈 정도의 날씬한 몸매를 가져 두 내시가 받든 쟁반위에 올라가 매혹적인 춤을 구사했고, 글래머 옥환은 최고의 비파 연주와 시문에 능한 천재적인 예술가였다. 왕을 치명적 유혹의 포로로 삼아 밝은 세상을 보지 못하게 한 이들은 이성보다는 감성지수가 뛰어나고 질투가 강했으며 정작 자신은 주체할 수 없는 관능적 욕구로 다른 남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고 치열한 권력다툼과 내분에 관여한 공통점이 있다. 결국은 나라를 기울게 하여 유방이 천신만고 끝에 세운 한나라와 현종이 이룬 태평성대는 끝장이 나버렸다.

사람은 누구에게 왜 치명적 유혹을 받는가? 웃음 없이 행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섹스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돈과 섹스보다 더 원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정과 칭찬이다. 아부하는 사람은 위선과 거짓임을 뻔히 알면서도 호감도가 증가하지만, 비판하는 사람은 옳은 줄 알면서도 비호감이다. 또한 자기와 유사한 사람과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을 좋아한다. 이런 경향은 왕이 되면 더 심해질 테다. 어찌 보면 간신배에 둘러싸여 나라를 망쳐먹는 군주들이 어느 역사에나 반복해 등장하는 것은 인간의 보편적 본성 탓인 듯하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 말은 모두가 아는 평범한 진리이지만 이를 실현하기는 쉽지 않다.

인사를 단행할 때는 패거리의 의리에 얽매이지 말고 무능함을 배척해야 한다. 관포지교로 유명한 관중은 관자(管子)라는 책에서 군주의 삼본(三本)은 신하들의 덕이 그 지위에 맞는지, 공적이 그 녹봉에 맞는지, 능력이 그 관직에 맞는지 살피는 것이며, 이는 어지러움을 다스리는 근원이라고 했다.

타 민족에 배타적인 몽골족의 칭기즈 칸은 거란 사람인 야율초재를 재상으로 삼아 위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제국을 마상(馬上)에서 건설할 수 있어도 통치할 수는 없다고 간언한 야율초재는 변변한 제도와 학문이 없는 야만적 제국의 통치 기반을 마련했다. 당 태종 이세민은 정적(政敵)의 신하로서 자신을 제거하려고 한 위징의 인물됨을 알아보고 높은 관직을 주었다. 그는 신하의 제안과 비판을 받아들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아 중국 최고의 현군(賢君)으로 꼽히며 최고의 태평성대인 정관의 치를 이루었다. 세종대왕은 기생의 아들이어서 벼슬 할 수 없는 천출 장영실을 특채했고 집현전에서 젊고 유능한 학자들을 길렀다. 이들은 자신과 이질적 집단에서 유능한 인물을 찾아 중용했다.

최대집 집행부가 출범한 지 반년이 되었다. 그동안 ‘인너써클’, ‘소통부재’, ‘편가르기’, ‘특정 임원과 16개시도회장단 패싱’, ‘내로남불’ 등 여러 단어가 등장하더니 회무 처리 방식과 결과에 대한, 그리고 임원의 인준 문제로 여러 잡음이 들린다. 임시대의원총회를 앞둔 지금 우리 대한의사협회는 인사가 만사임을 잘 새기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개원(開元)의 치(治)로 칭송받은 당 현종의 말을 새겨보자.

“소숭은 정사를 논할 때 사사건건 짐의 뜻에 따랐지만 그가 돌아간 후 마음은 항상 상쾌하지가 않았다. 걱정되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휴는 다르다. 정무를 논할 때마다 자주 짐과 논쟁을 벌이지만 한휴가 돌아간 후 마음이 언제나 상쾌했다. 일이 원만히 해결되었기 때문이었다. 재상을 선발하는 것은 나라를 위해서 하는 일이지 짐을 위해서 하는 일은 아니지 않은가.”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