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교수가 세계 최초 의료기술 윤리선언인 ‘서울선언’을 만든 이유

4차 산업혁명이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는 말을 많이 한다. 의료 분야도 예외는 아니다. 인공지능(AI)과 같은 과학기술을 떼어 놓고 의료 발전을 말하기란 불가능한 시대다. 국립암센터 김영우 교수는 그렇기에 윤리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세계 최초 의료기술 윤리선언인 ‘서울선언’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김 교수는 3년 전 ‘Society for Medical Innovation and Technology(SMIT)’ 학술대회 유치에 성공하면서 미국 웨인주립대(Wayne State University) 폴 바라시(Paul Barach) 교수와 함께 의료기술 윤리선언을 준비해 왔다. 그리고 SMIT와 대한의용생체공학회가 지난 10일 서울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개최한 ‘SMIT2018-IBEC2018 Joint Conference’에서 ‘윤리적인 의료기술을 위한 서울선언(The Seoul Declaration: A Manifesto for Ethical Medical Technology)’이라는 이름으로 초안을 공개했다(관련 기사: 세계 최초 의료기술 윤리선언 나왔다).

김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기술이 의료를 이끄는 시대이기에 윤리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리가 빠진 의료기술은 인류에 해가 될 수도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서울선언이 윤리만 강조한 것도 아니다. 의료기기 등 새로운 의료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투자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았다.

SMIT2018-IBEC2018 주제이기도 한 ‘인간의 가치를 위한 의료기술(Medical Technology for Human Values)’이 서울선언의 핵심이다.

‘SMIT2018-IBEC2018 Joint Conference’ 조직위원회 회장을 맡은 국립암센터 김영우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세계 최초 의료기술 윤리선언인 '서울선언'의 의미에 대해 설명했다.

- SMIT는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학회다. 그런 학회의 학술대회를 유치했고 대한의용생체공학회 국제학술대회인 ‘International Biomedical Engineering Conference(IBEC)’와 공동으로 개최했다.

SMIT는 의료기술혁신학회라고 할 수 있다. 30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학회로, 아시아에서는 일본 도쿄와 중국 상하이에서 학술대회를 개최한 적이 있다. 우연한 기회에 SMIT 관계자를 만났는데 단 시간에 눈부신 성장을 이룬 한국 의료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학술대회 개최를 제안했다. 한국에서 SMIT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게 또 다른 기회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고, 3년 전 유치에 성공했다.

그리고 의료기기 개발 등 의료기술 발전을 위한 중요한 축인 의공학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됐으면 해서 의용생체공학회에 공동 개최를 제안했다. 학회 측에서도 흔쾌히 응해줬다.

- SMIT 학술대회를 개최하는 게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의료 분야에서도 점점 기술이 중요해지고 있다. 청진기와 메스로만 환자를 진료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진단의 정확성, 치료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기술이 도입되고 있다. 기술이 의료를 이끄는 시대에서 의료기기는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지만 우리나라 의료기기 산업은 열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기기 산업이 발전하기에 좋은 토대를 갖고 있다. 인구밀도가 높고 임상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는 대형병원도 많다. 의료기기 임상시험을 하기에 그 어느 나라보다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 아이디어를 구현해 내는 기술력도 갖췄다.

그렇지만 의사나 의공학자 혼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힘을 모아야 한다. SMIT는 의사와 엔지니어가 만나서 협력해 나가는 학회다. SMIT 학술대회를 개최해 국제적으로 한국의 잠재력을 알리고 한국 사회에서 이런 학회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 이번 학술대회에 1,500명 정도 참석했으니 어느 정도는 성공했다.

- 학술대회 개최에 그치지 않고 세계 최초 의료기술 윤리선언인 ‘서울선언’도 마련했다.

3년 전 독일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수술하는 자동화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충격이었다. 어떻게 수술을 기계에 맡길 수 있는지, 외과 전문의로서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무엇보다 윤리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사회적인 논의도 없었는데 이런 개발이 진행될 수 있는지 의아했다.

환자 안전보다는 금전적인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로 의료기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기준이나 가이드라인은 없다. 그래서 이번 학술대회를 계기로 의료기술 윤리선언을 마련해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웨인주립대 폴 바라시 교수와 논의해 초안을 만들어 이번 학술대회에서 공개했다.

- 서울선언이 갖는 의미는 무엇인가.

AI을 활용한 기술들이 봇물처럼 터져 나오지만 대부분 금전적인 이익에 방향이 맞춰져 있는 듯하다. 위험하다.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개발 단계에서부터 의사와 논의를 해서 진행해야 한다. 서울선언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 더불어 의료기기 개발에 정부가 조금 더 지원하도록 촉구하는 내용도 담았다. 앞으로 의료기기 개발 단계에서부터 서울선언의 의미를 생각하고 적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더욱이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을 국시로 갖고 있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이같은 내용의 선언이 나왔다는데도 의미가 있다.

- 열악하다고 지적한 우리나라 의료산업이 발전하려면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저수가 체제에서 의사는 많은 환자를 진료하느라 의료기기 개발과 관련된 생각을 할 여유가 없다. 그렇더라도 환자 진료에만 매몰되지 않고 의료기기 개발에도 역할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의료기기를 개발하는 회사는 의사를 이용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들을 주도자로 만들어야 한다. 의사가 주된 역할을 해야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단순히 자문료 얼마 받자고 적극적으로 참여할 의사는 없다. 서로 윈윈(win-win)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정부도 의료기기 개발에 더 투자해야 한다. 우리나라 R&D 규모가 20조원 정도이지만 의료기기 분야 연구비는 너무 적다. 서울선언문에도 나왔지만 정부가 더 지원하고 투자해야 한다. 그래야 뒤처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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