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스크린 인지행동평가시스템 도입한 연세의대…김어수 교수 “동물-임상 평가방식 통일”
17일 연세대암병원 서암강당에서 열리는  ‘Dementia & Technology’ 융합 컨퍼런스서 소개

신생기업이 연구개발(R&D)에 성공하고도 자금부족 등으로 사업화에 실패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기간을 ‘데스벨리(death valley)’라고 한다. 데스벨리는 신약 개발 과정에도 존재한다. 동물실험 성공이 임상시험 성공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사장되는 걸 의미한다.

어렵게 찾은 신약 후보물질이 동물실험에서는 효과를 보였지만 막상 임상시험에서는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지 않아 실패로 끝나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그런데 그 원인이 후보물질이 아닌 동물실험 방식에 있다면? 특히 치매처럼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에서 진행되는 인지행동평가 방식이 다르면 신약 후보물질의 효과를 입증하는데 한계가 있다.

흔히 동물실험에서는 치매에 걸린 실험용 쥐가 미로나 물속에서 길을 찾는데 걸린 시간이 얼마나 줄어드는지를 테스트한다. 전기충격을 줘서 특정 물질이 있는 곳을 기억하도록 하는 방법도 있다.

터치스크린 기반 전임상 동물모델 평가기술 시스템(사진제공: 보건복지부)

하지만 치매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임상시험은 동물실험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보통 단어 12개를 알려준 뒤 일정 시간 뒤 얼마나 기억하고 있는지를 평가한다.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은 치매 신약 후보물질의 효능을 알아보는 방식이 전혀 다른 셈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University of Cambridge)에서 터치스크린 인지행동평가시스템을 개발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인지행동검사 항목을 동물실험에서도 검사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 시스템을 개발했다.

연세대 의과대학은 지난 2016년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연수 중이던 정신과학교실 김어수 교수가 주도했다. 김 교수는 이 시스템이 기존 동물실험의 한계를 극복하고 동물실험과 임상시험 간 간극을 줄이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한 인지행동 장애를 일으키는 원인을 밝히는데도 효과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김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런던 킹스대학 연구팀과 함께 이 시스템을 이용해 ‘TDP-43(transactive response DNA binding protein 43 kDa, TARDBP) 유전자 돌연변이가 전두엽 치매나 루게릭병과 관련된 뇌행동 기능 이상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이 연구는 지난 3월 19일 신경과학분야 최고권위지인 ‘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 김어수 교수는 지난 10일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터치스크린 인지행동평가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김 교수는 지난 10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치매환자에게는 연상기억이 중요한데 동물실험에서는 연상기억을 평가하지 않는다. 임상시험에서도 단어 12개를 불러주는 단순기억, 회상기억을 평가한다”며 “글로벌제약사들이 치매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그런데 동물실험에서는 효과를 보였지만 임상시험에서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효과를 제대로 증명해내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신약 개발 과정에서 데스벨리가 생기는 원인은 다양하지만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의 평가 방법이 다른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며 “양쪽의 다른 방법을 통일한 게 터치스크린 인지행동평가시스템”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효과가 없는 후보물질은 수조원이 들어가는 임상시험 단계에 들어가기 전에 빨리 실패해야 손실이 적다”며 “이 시스템을 활용하면 기초연구에서 임상연구로 넘어가는 중개 예측력을 높일 수 있다. 동물실험 결과가 임상시험에도 얼마나 똑같이 나타날 수 있을지를 좀 더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기존 동물실험과는 달리 이 시스템은 인지유연성, 주의집중력 등 다영역 평가를 진행할 수 있다”며 “치매와 관련된 행동장애도 평가할 수 있으며 행동장애의 원인이 어느 부위 때문인지도 파악할 수 있다. 임상적인 중개연구가 가능하다”고 했다.

터치스크린 인지행동평가시스템이 동물실험의 트랜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예상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주위 환경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도 하기 때문에 기존 동물실험 자체를 믿지 않는 연구자들도 많다”며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기존 방식대로 동물실험을 해 왔지만 이 시스템을 도입하면 편차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최근 나타나는 추이대로면 앞으로 뇌과학 연구 분야에서는 기존 동물시험으로 연구 결과를 입증하는 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강조했다.

연세의대가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터치스크린 인지행동평가시스템은 총 3대다. 시스템 1대당 실험용 쥐 4마리를 동시에 테스트할 수 있다. 연세의대 정신과학교실은 치매 신약 후보물질 평가 등에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김 교수는 오는 17일 청년의사가 서울 서대문구 연세암병원 지하3층 서암강당에서 개최하는 ‘Dementia & Technology’ 융합 컨퍼런스에서 ‘치매 신약 개발을 위한 터치스크린 행동평가 기술’을 주제로 연세의대가 도입한 이 시스템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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