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ACO 모델 및 커뮤니티케어 연구포럼’ 창립…필요성 공감대 속 현실화 어렵단 우려도

고령화 시대의 커뮤니티 케어와 지방분권을 핵심으로 하는 ‘한국형 ACO(책임의료기구) 모델’을 연구해 실질적인 시범사업 모델을 제안하기 위한 보건의료계 논의가 본격 시작됐다.

명지병원 고령사회 통합의료·포괄케어 연구소와 청년의사는 13일 오후 서울대병원 의생명연구원에서 ‘한국형 ACO 모델 및 커뮤니티케어 연구포럼 창립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책임의료기구(Accountable Care Organization, ACO)는 의료서비스 공급자와 지역사회구성원 및 이해관계자 간 파트너십에 의해 운영되는 지역사회 기반 의료조직체를 뜻한다.

이날 ‘한국형 ACO 시범사업 전략’을 주제로 발제한 서울의대 의료관리학과 김윤 교수는 보건의료체계가 붕괴된 현재, ACO가 중소병원이 대형병원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ACO는 의료기관이 환자건강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이 다양한 서비스를 갖춰야 한다. 하지만 한 의료기관이 이를 모두 할 수 없으니 네트워크를 통해 갖추자는 것”이라며 “이런 시스템에서는 환자가 여러 의료기관을 다니면서 필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된 상황에서 ACO는 중소병원이 대형병원과 경쟁할 수 있는 무기가 될 것”이라며 “(최근 ACO와 관련된 연구를 봐도) ACO를 통해 의료비를 절감하고 의료 질을 높일 수 있으며, 이같은 효과는 의원급이 중심이 된 ACO에서도 효율적”이라고 덧붙였다.

이 외 김 교수는 우리나라에 ACO 도입이 유리한 이유로 ▲행위별수가제 ▲의료 질과 관련한 인센티브제도 ▲환자의 선택권을 제한하지 않는 특징 등을, 장애요인으로는 ▲의료기관의 네트워크 참여 경험 부족 ▲환자관리경험 부족 등을 꼽았다.

김 교수는 이같은 장애요인 극복을 위해 장기간·대규모 시범사업을 통한 학습과 경험 축적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형 ACO, 광역단위 시범사업을 통한 통합공급체계 혁신 추구’를 주제로 발제한 명지의료재단 이왕준 이사장은 현재 정부가 추진 중인 커뮤니티케어의 기본 컨셉에서는 보건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고 지적하며 ACO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이사장은 “커뮤니티 케어 기본 컨셉 중 방문진료 말고는 보건의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거의 없다. 때문에 커뮤니티 케어로는 보건의료계에 큰 파급효과를 가져오긴 어려울 것”이라며 “명지병원도 현장에서 방문진료 등을 하고 있지만 교수 인건비도 나오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커뮤니티 케어 추진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잘 작동될 수 있을지 우려는 있다”며 “다만 커뮤니티 케어를 추진하려는 정부의 정책의지는 높다. 이런 의지가 ACO 시범사업에도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특히 이 이사장은 “이번 연구포럼을 통해 단순히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권역이나 광역 단위에서 2~3년간 실제 진행 가능한 ACO 시범사업 모델을 정부에 제시할 것”이라며 “이런 제안 등을 통해 현장에 씨를 뿌리고 (커뮤니티 케어와 ACO 도입의) 산파가 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우리나라 의료는 국민건강보험의 통제와 민간주도 공급이 계속 충돌하는 구조인데, 이 충돌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네트워킹하고 재분배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라며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고 잘 조절하면 또 하나의 역동성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발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ACO 도입을 위한 다양한 방안과 우려가 나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급여기준실 지영건 실장은 ACO 도입 시 적절한 지불제도와 분배, 환자가 ACO를 선택할 수 있는 인센티브 등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지영건 실장은 “(한국형 ACO 도입을 위해서) 결국 수가가 중요하다. 의료기관에게 억지로 시킬 수는 없다. 정부가 한국형 ACO에 어떻게 재정을 투입할 것인지, 결국 지불제도 문제가 될 것”이라며 “재정 투입 후 각 의료기관이 이를 나눠 갖는 것도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말했다.

지 실장은 “환자가 ACO를 활용할 수 있는 유인책도 필요하다. 환자를 ACO에 배정하는 방식보다는 환자가 선택하는 방향으로 가야하기 때문”이라며 “ACO가 제공하는 의료의 질이 높으면 선택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지금처럼) 명의를 찾게 될 것이다. 환자들이 ACO를 활용할 수 있는 인센티브 설계가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한병원협회 서진수 보험위원장은 한국형 ACO 도입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지역편차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서 위원장은 병협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입장을 전제로 “만성질환자의 증가, 전달체계 붕괴 등 (한국형 ACO 도입을 위한) 여건은 성숙한 것으로 보이며 여러 시도를 해볼 수 있다”면서 “다만 시범사업 후 전국적으로 제도를 시행할 생각이라면 지역편차 등의 문제도 걱정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 위원장은 “국민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한국형 ACO가 먹힐 수 있는지도 고민해야 한다”며 “환자 통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환자들이 잘 따를지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대한의사협회 성종호 정책이사는 한국형 ACO 도입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성 이사는 “보건의료체계는 변해야 하지만 (한국형 ACO 도입과 관련해서는) 생각이 다르다. 한국형 ACO를 통해 지불제도와 의료전달체계 문제를 다 해결하려고 하는데, 단일보험체계인 우리나라에서 ACO를 도입하면 공급자는 힘을 쓸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성 이사는 “ACO 도입은 재정 문제를 공급자에게 떠넘기는 것”이라며 “의사가 환자를 어떤 의료기관으로 보내려고 해도 환자가 따르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국민 정서를 무시하고 재정적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한편 보건복지부 보험급여과 이중규 과장은 한국형 ACO 도입 필요성에 개인적으로 동의하지만, 복지부 입장에서 ACO 도입을 공식화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고 밝혔다.

ACO 도입에서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지불제도 개편 때문에 복지부가 먼저 나서 ACO 도입을 언급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중규 과장은 “분절적인 의료체계를 통합하고 (의료기관 간)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는 관점에는 동의한다. 다만 복지부가 나서 (ACO 관련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것과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의료계가) 받아들이는 반응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과장은 “(ACO와 관련된 논의를 하자면) 지불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공급자들이 의견을 내고, 필요하니 시도해보자는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정부도 관심을 기울일 수 있을 것”이라며 “(논의) 발화자가 누구냐에 따라 왜곡된 접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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