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병원 류현철 과장의 노동자 진료 이야기…우리 사회 성찰로 나아가는 흐름 돋보여

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 대상에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류현철 과장의 <당신 탓이 아닙니다>가 선정됐다.

올해로 18회를 맞은 한미수필문학상 공모에는 지난 11월 30일까지 다양한 환자 이야기를 담은 수필 105편이 응모됐다.

대상은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류현철 과장의 <당신 탓이 아닙니다>로 선정됐으며, 우수상 3편은 ▲괜찮아, 안 죽어(김시영 일신의원) ▲지진 속에서 생명이(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커피(김지선 맘편한내과)로 결정됐다.

또한 장려상 10편은 ▲골룸의 탈을 쓴 선생님(박천숙 부산 개금미래 여성병원) ▲또 하나의 기적(김승연 을지대학교병원 소아청소년과) ▲로맨틱 파리의 응급실(양성우 분당제생병원 내과) ▲마지막 편지(장석창 부산 탑비뇨의학과의원) ▲미스터리 토끼다(김창우 강동경희대 외과) ▲아픈 추억(이용찬 에스웰빙의원) ▲어떤 용서(심병길 횡성중앙의원) ▲유서(조희인 충남대학교병원 외과)가 차지했다.

대상에는 상금 600만원과 상패가, 우수상 3인에게는 상금 300만원과 상패, 장려상 10인에게는 상금 200만원과 상패가 각각 수여된다. 모든 부문의 상금이 전년대비 100만원씩 인상됐다.

한미수필문학상 심사는 한국문단을 대표하는 서정시의 대가 정호승 시인, 한창훈 소설가, 문학평론가 홍기돈 가톨릭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맡았다.

심사위원들은 고심 끝에 최종 심사까지 올라온 류현철 과장의 <당신 탓이 아닙니다>와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용수 전문의의 <지진 속에서 생명이> 등 2편의 작품을 놓고 난상토론을 벌인 끝에 근로복지공단 안산병원 류현철 과장의 <당신 탓이 아닙니다>를 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대상을 수상한 <당신 탓이 아닙니다>는 환자 개인이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파악하고 포용하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는 흐름이 매끄러웠던 글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심사위원들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가 지식인으로서 의사의 품위가 드러나는 글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의사로서 애환만 그리는 게 아니라 다음단계까지 고려한 듯하다는 평가다.

더욱이 한미수필문학상이 의사-환자간 신뢰회복을 위해 제정된 상이라는 점에서 <당신 탓이 아닙니다>의 경우 상의 제정 취지와도 부합한다고 심사위원들은 전했다.

심사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호승 시인은 “매년 한미수필문학상을 심사하다보면 글들이 차분하고 정교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서 “이는 의사들의 글쓰기가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전했다.

한편, 본지가 제정하고 한미약품이 후원하는 한미수필문학상은 환자와 의사 신뢰 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지난 2001년 제정됐다. 시상식은 2월 중 한미약품 본사에서 개최되며 대상 수상자는 ‘한국산문’을 통해 정식으로 문단에 등단하게 된다.

<심사평-한미수필문학상 심사위원회>

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 응모 작품들을 대하면서 심사위원들은 먼저 그 수준이 일정 궤도에 올라섰다는 공감대를 확인했다. 소재를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염두에 두고 글의 구성을 마련해 나갔는가 하면, 긴장된 분위기를 팽팽하게 이끌어가는 솜씨, 촘촘한 문장의 밀도 및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상황 묘사 등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수필집 출간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한미수필문학상이 징검다리 역할로 활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객담이 나온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몇 년 동안 심사를 이어오는 입장에서 퍽 뿌듯하게 느껴졌다.

높은 수준에도 불구하고 본심에 오르지 못한 응모작들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부분에서 아쉬움이 느껴졌다. 첫째, 한미수필문학상은 환자와 의사의 관계 회복을 희망한다는 취지에서 제정됐다. 따라서 환자―의사 관계의 성찰로까지 이르지 못한 채 개인사 범주에 머물러 버린 경우는 적극적으로 평가할 수가 없었다. 기실 이런 사례는 매년 접하게 된다. 둘째, 환자에 대한 관찰자로서의 시선이 다른 어떤 요소보다 우위에 놓일 때, 사건을 매개로 하지 못한 채 내용을 설명하려 드는 경우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 어려웠다. 수필이란 장르에서 기대할 수 있는 공감ㆍ공명에 입각한 울림이 아무래도 떨어졌기 때문이다.

본심에 오른 스물세 편의 응모작 가운데 <당신 탓이 아닙니다>를 대상작으로 선정했다. 구성 면에서 보건대, 환자 개인사와 대한민국 경제ㆍ노동 현장 현실을 중첩시켜 앞부분에 제시해 놓았고, 이후 환자 개인이 겪고 있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를 파악하고 포용하는 한편,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는 흐름이 매끄럽다. 또한 그렇게 이어지는 내용의 초점을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하여 간단명료하게 제시하는 감각도 두드러진다. 예컨대 개인사와 사회 현실의 중첩은 “그때는 다들 그랬어요.”, “그때는 다들 그랬으니까요”라는 문장으로 수렴되며, 환자가 겪는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의 고통은 “내게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기는 것일까요?”라는 자문으로 부각된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성찰 내용은 “당신 탓이 아닙니다. 이젠 놓아주세요”로 정리되며, 이 문장은 글의 마지막을 차지한다. 심사위원들은 지식인으로서 의사의 품위가 드러나는 글이라고 판단했다.

<지진 속에서 새 생명이>는 대상작과 경합을 벌이다가 결국 우수상을 차지했다. 이 작품의 장점은 분명하다. 글의 첫 문장을 이처럼 열어젖히려면 오랜 숙련을 거쳐야 한다. 또한 급박한 상황의 긴장감을 시종 단문으로 몰아쳐 전개해 나가는 면모로 보자면, 글쓴이는 글맛을 알고 있을 뿐만이 아니라, 살려낼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임에 틀림이 없다. 의사로서의 사명의식을 둘러싼 주제가, 자칫 딱딱하고 건조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동감 있게 펼쳐지게 된 데에는 그러한 요소가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 작품이 우수상을 받게 된 것은 작품 질의 문제가 아니라 심사위원들의 선호도 차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다른 두 편의 우수상 수상작은 <커피>와 <괜찮아, 안 죽어>이다. <커피>의 경우는 의사의 위치가 독특하다. 폐암 판정 받은 노모의 보호자이기 때문이다. 조금의 배려도 없이 마치 비수를 꽂듯 수술 결과를 알려주는 의사가 그의 눈에 의해 드러나고, 존엄하게 스스로의 생을 마감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위한 법 때문에 분노를 느끼기도 하며, “검사를 받지 않았더라면, 수술을 받지 않았더라면” 상황이 더 낫지 않았을까 묻는 엄마에게서 그는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이는 의사로서의 그 자신에게 회귀하는 양상이다. 자신은 어떠했는지 반성의 계기를 마련하고, 80세 할머니 환자의 개인 사정을 헤아려 보게 되며, 환자 육체의 편안함뿐 아니라 정신적 편안함까지도 배려하는 의사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의사로서의 정체성이 흔들거릴 정도로 자신에게 물음의 방향을 맞춰 추궁해 나가는 태도가 인상적이다.

또 다른 우수상 수상작인 <괜찮아, 안 죽어>는 글쓴이의 재치가 돋보인다. 손가락에 가시 하나 박혔어도 당사자의 입장에서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아픈 곳이 바로 몸의 중심 아니던가. 반면 극한 상황과 수시로 맞대면하는 의사의 입장에게는 이와 같은 상황이 달리 다가설 수 있다. 글쓴이는 “괜찮아, 안 죽어”라는 문장을 반복하면서 튼튼한 벽을 만들어 나간다. 그런데 웬걸, 고단한 노동 속에 내버려진 할매가 툭 던진 한마디가 그 벽에 균열을 내고 만다. “다 죽어, 사람은.” 차츰차츰 견고함을 더해 나가던 흐름이 일거에 반전을 일으키는 지점이 인상적이다. 죽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분 단위로 만들어진 ‘패스트푸드’와 오래 고아낸 ‘순댓국’으로 비유해 내는 데서도 감각이 느껴지며, “허리 꼬부라진 노인네한테 왼 종일 밭일 시킨 빌어먹을 열무 모종에게 화가 났는지도 모르겠다”와 같은 표현에서도 유머가 살아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