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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연구하는 의사가 되고 싶어 미국행”

기사승인 2019.01.11  12: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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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의대 강현석 교수 “좋은 환경에서 연구하고 싶었다”

연구하는 의사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한국 의료 환경은 녹록치 않았다. 의과대학 시절 그의 눈에 비친 교수들은 밀려드는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항상 지쳐보였다. 하지만 우연치 않게 경험한 미국 대학병원은 달랐다. 미국 대학병원 교수들은 임상은 물론 연구에도 적극적이었다. 환경이 그랬다.

강현석 교수가 미국으로 간 이유다. 강 교수는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대 샌프란시스코 의대(University of California, San Francisco, UCSF) 혈액종양내과 부교수로 있다.

의대생 시절부터 연구 쪽에 관심이 많았던 강 교수는 연세의대 본과 1학년 방학을 연세암센터 연구실에서 보냈다. 그리고 두 달이라는 긴 방학을 보낼 수 있는 본과 2학년 때 미국 MD앤더슨 암센터(MD Anderson Cancer Center) 연구실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종양내과 전문의인 외숙부의 도움으로 여러 교수들에게 CV(curriculum vitae)를 보냈고 그 중 한 명이 자신의 실험실에 와도 좋다고 한 것이다.

본과 1학년 때 기본적인 분자생물학 관련 테크닉을 익힌 상태였기에 논문 검토에 필요한 데이터를 생성하는 과정에 바로 투입됐다. 실험이 잘 돼 중요한 데이터를 얻는데 성공했고, 강 교수는 지도교수의 논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 경험은 그가 삶의 터전을 바꾸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MD앤더슨에 있으면서 그랜드 라운드(Grand round) 같은 컨퍼런스에도 참석하고 의사이면서 연구자로 일하는 교수들을 만나기도 했다. 그들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 정도 환자를 보면서 적극적으로 실험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굉장히 인상 깊었다. 항상 환자들을 진료하느라 힘들어 보이는 한국 교수들과 비교됐다. 어차피 연구하는 의사가 되려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게 낫겠다 싶었다.”

미국 UCSF 혈액종양내과 강현석 부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연구하는 의사라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 미국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연구하는 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

지난 2002년 연세의대를 졸업한 그는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하면서 미국으로 건너갈 준비를 했다. 미국에서 분자생물학으로 PhD를 먼저 취득하는 게 목표였기에 공보의 3년차 때 미국 대학원 입학 자격시험(Graduate Record Examination) 등을 준비했다. 논문도 있고 성적도 괜찮아서 대학원 입학을 자신했지만 안됐다. 그해 인턴 선발도 끝난 상태였기에 당황스러웠다.

차라리 이 기회에 평소 관심 있었던 역학과 통계 분야를 공부해보기로 했다. 공보의 복무를 마친 2005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에 들어갔고 2007년 보건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좋은 선택이었다. 임상연구와 근거중심의학에 대한 기초를 잘 쌓을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했다.

공보의 시절 미국의사면허시험인 USMLE(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 Step1,2(현재 Step 2CK)와 Clinical Skills Assessment(CSA, 현재 step 2CS)도 모두 끝냈다. 미국에서 전문의 수련을 받기 위한 준비다.

그리고 보건대학원을 다니면서 여름방학을 이용해 한달 동안 미국 애틀란타 에모리 대학(Emory University)에서 옵서버(Observer)로 있었다. 이때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USMLE Step3을 마쳤다.

미국에서 전문의 수련을 받기 위한 준비를 모두 끝낸 그는 전공의 지원을 시작했다. 미국은 매칭(Matching) 프로그램으로 전공의를 선발하는 만큼 CV와 Personal statement(자기소개서)가 중요하다. CV와 자기소개서, 추천서를 모아서 전공의 지원 사이트를 통해 각 병원에 보내면 프로그램마다 인터뷰를 할 사람을 선정한다. 인터뷰가 끝나면 지원자와 프로그램이 각각 선호하는 순서대로 리스트를 작성하고 이를 토대로 수련병원을 찾아준다.

그는 “60곳 정도 프로그램에 지원해서 12곳에서 인터뷰를 받았고 그 중 하나였던 뉴욕 컬럼비아대학 부속 St. Luke’s-Roosevelt 병원에 매칭됐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혈액종양내과 교수가 되기까지

그는 St. Luke’s-Roosevelt 병원에서 내과 수련을 받았다. 미국 내과 수련 기간은 인턴 포함 3년으로 내과를 기초를 쌓는 과정이기에 분과 영역에 대한 교육은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때문에 주로 일반 입원환자와 일차의료, 외래진료를 로테이션으로 교육받으며 분과 특화 수련교육은 개인의 선택에 따라 진행된다.

“수련을 받는 동안은 철저히 피교육자 신분으로 중요한 의학적 결정은 지도전문의에 의존한다. 전공의의 역량에 따라 자율성을 더 부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책임은 지도전문의에게 있다.”

전공의지만 한국에 비해 시간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이 가능했다. 입원환자를 봐야 하는 기간에도 야간 시간대를 담당하는 전공의들이 따로 있기 때문에 당직인 날도 오후 9시면 퇴근할 수 있다. 당직이 아닌 날은 오후 4시 30분에서 오후 5시 사이에 퇴근한다. 외래진료 로테이션 중에는 당직이 없다.

그는 “드레싱을 비롯해서 폴리(foley) 같은 많은 프로시저가 간호사 영역이다. 그래서 인턴도 의학적인 의사 결정 과정에 집중할 여건이 조성돼 있다”고 했다.

지난 2010년 전공의 수련을 마친 그는 애틀란타 에모리대학병원에서 혈액종양내과 전임의를 지냈다. 종양내과의 경우 1년 동안 임상 수련을 받으면 나머지 기간은 연구에 매진할 수 있었다.

전임의 과정을 마친 그는 2013년 7월부터 볼티모어에 있는 존스홉킨스대학병원에서 전임강사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2015년 7월 조교수로 승진했다. UCSF로 옮길 때는 전임강사 경력까지 인정돼 부교수로 임용됐다.

“전임의 3년차 초반부터 구인공고를 보고 지원서(letter of interest)도 많이 보냈다. 멘토가 소개해준 다른 학교 과장들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관심 있는 학교는 따로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무작정 보낸 지원서는 응답을 받지 못한 적이 많은데 멘토가 소개해준 경우는 최소한 전화 통화라도 하는 성의를 보여줬다. 미국은 자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좋은 경력을 쌓으면 어디서든 학계 경력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는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쉽진 않지만 충분히 도전해볼만”…시행착오 줄이려면?

꿈을 좇아 미국으로 왔지만 힘들었다. 초반에는 외로움과 영어 때문에 힘들어 후회하기도 했다. 그러다 일에 익숙해지고 가정이 생기고, 안정적인 자리를 갖게 되면서 후회보다는 만족감이 더 커졌다. 강 교수는 전임의 시절 아내를 만나 현재 맞벌이 부부로 아이 한명을 키우고 있다.

“가끔씩 ‘언제까지 여기서 이방인으로 살 수 있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대 놓고 차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문화적인 차이에서 오는 ‘다름’에 대한 시선 같은 걸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 살았다고 그런 좌절을 느끼지 않았으리라는 보장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강 교수는 미국으로 진출하려는 한국 의사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했다. 신문 청년의사와 연세의대가 오는 26일부터 27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컨퍼런스&워크숍 ‘미국에서 의사하기’에 참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강 교수는 한국에 올 때마다 모교 등에서 관련 강의를 하기도 했다.

“의사로 미국에 진출하는 게 쉽지는 않지만, 직업적인 보람과 일-가정생활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거나, 학문적 야망이 있다면 충분히 도전할 만하다.”

송수연 기자 soo331@docdocdoc.co.kr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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