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신고 및 중국 투자자도 고소…국내 상장사 통해 사무장병원 운영 폭로
중국 동업자, 수익 안나자 ‘폐쇄’…“제주녹지국제병원도 나처럼 될 수 있어”

지난 연말 신문사로 한통의 제보전화가 걸려왔다.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S의원을 운영해왔다는 한 남자의 전화였다. 의원을 운영하는 것이 뭐가 문제일까 생각됐지만 그는 의사가 아니라고 했다. S의원은 즉, 사무장병원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자신이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면서 스스로 사무장병원임을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된 원장인 의사나 직원이 아니라 자신이 사무장으로서, 실질적으로 그 병원을 운영해온 사람이 '내가 불법을 저질러온 사무장이요' 하고 양심고백을 한 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는 왜 '양심고백'을 하게 된 것일까.

사건의 시작

자신이 중국 투자자와 함께 동업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다며 자진신고한 사무장은 유미소향주식회사 김주영 대표다.

김 대표는 투자자들이 중국 국영기업의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국내 상장사를 인수한 후 상장사 인력을 활용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해 왔다며 이들도 자신과 함께 처벌해 달라며 지난 3일 서울 서부지검에 고소장을 제출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그가 의료법 위반으로 고소한 중국인 투자자는 주식회사 N사의 A대표이사와 B이사다. A씨와 B씨는 자매지간이다.

이들이 만난 것은 2016년이다. 김 대표에 따르면 당시 국내에서 ▲소향라포리스 스킨케어 ▲소향라포리스 의원 ▲(주)지경소향엠에스 ▲(주)소향코스메틱 ▲경희소향가맹점사업 ▲청도병원(2016년 말 개원 예정이었던 중국 내 병원) 설립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그에게 A씨와 B씨가 “소향이라는 브랜드를 중국에 가져가서 사업을 하자”며 합작투자회사 설립을 제안했다.

이에 양 측은 합작투자회사를 설립하기로 하고 2016년 10월 16일 '합작투자계약서'를 체결했다.

이에 따라 A씨가 대표이사로 있던 유미도그룹이 신규자금을 투자하고 그 투자금으로 김 대표가 보유하고 있는 기존 사업부분을 인수하며, 계약에 따라 한국에는 ‘유미소향주식회사’를, 중국에는 ‘유미소향과학기술유한회사’를 설립했다.

이후 김 대표는 중국 유미소향과학기술유한회사에는 단독 대표로, 한국 유미소향주식회사에는 B씨와 함께 공동 대표로 취임했다.

김 대표는 “임원 구성은 이처럼 됐지만 투자자인 유미도그룹 대표가 A씨이고 유미도그룹은 두 회사의 지분 55%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질적인 회사운영의 의사결정은 대표인 B씨보다 A씨가 했다”고 밝혔다.

사무장병원은 어떻게 운영됐나

김 대표에 따르면 양 측은 한중합작투자계약에 따라 2016년 12월경부터 서울시 마포구 동교동에서 피부과와 성형외과를 주력으로 하는 ‘S의원’을 재개원 했다. S의원은 김 대표가 이혼하기 전 의사인 부인과 함께 운영해왔던 곳으로, 부인과 이혼하며 문을 닫아야 했다.

S 의원이 입주한 건물 사진.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운영할 수 없기 때문에 김 대표와 A씨와 B씨는 의료법 위반을 피하기 위해 의사 P씨를 고용해 P씨 명의로 S의원을 재개원 했다. 김 대표와 중국 투자자인 A씨와 B씨, 의사 P씨 모두 불법임을 알면서도 사무장병원을 운영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대표는 또 A씨와 B씨가 합작투회사 설립을 결정하고, 회사 설립 전부터 자기 측 사람을 보내 S의원 등 김 대표의 국내사업에 대해 8개월 동안 실사를 벌인 바 있다고 했다.

실사에 참여한 곳은 A씨가 2016년 인수해 대표이사로 취임한 상장사인 주식회사 N사다. N사 법률 자문 변호사 B씨, 회계사 J씨, 부사장 J씨가 실사에 참여했다.

그러나 N사는 뷰티와는 아무 관련없는 ‘머신 비전(Machine Vision)' 기술을 바탕으로, 첨단의 제조현장에서 사용되는 각종 자동검사장치를 개발(N사 홈페이지)’ 하는 회사다. 2016년 2월 (유)유미도국제미용프랜차이즈그룹이 새로운 대주주가 되면서(넥N사 홈페이지) A씨가 대표이사가 됐다.

합작회사를 설립한 이후 A씨는 자신이 대표로 있는 N사 내 뷰티 화장품 관련 사업부를 신설해 S의원 운영을 직접 챙겼다.

특히 김 대표는 N사 J 부사장이 A씨와 통하는 연결고리며, J 부사장을 통하지 않고서는 A씨와 연결될 수 없을 정도로 (S의원 운영과 연관된) N사 신사업부의 헤드라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실사과정에서 N사 측 사람들은 (S의원을 운영하는 것이) 불법임을 알고도 사무장병원을 시작했다”며 “실사단에 변호사가 포함되는 등 법률 자문할 사람이 있었음에도 진행했다”고 말했다.

또한 “이후 (A 대표는) N사 내 뷰티와 화장품 관련 신사업부를 설립하고 신사업부 직원을 활용해 병원을 운영했다”고 주장했다.

김주영 대표가 A씨와 B씨, (주)N사 신사업부 관계자와 함께 S의원 운영 관련 회의를 하는 모습이라고 제공한 사진.

그러면서 김 대표는 A 대표가 S의원 운영을 직접 챙겼다는 증거로 ▲A 대표와 N사 측 인사들이 김 대표와 함게 S의원 운영과 관련한 회의를 하는 사진과 ▲회의 후 중국으로 출국한 A 대표와 김 대표 측이 나눈 메신저 대화 내용을 공개했다.

메신저에서 양 측이 통역사를 끼고 나눈 대화를 보면 A 대표는 병원에서 일할 의사들의 프로필을 보고받는 것은 물론 급여결정 과정에도 참여하고 김 대표 측 인사가 작성한 업무일지에 대한 평가까지 하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A 대표는 S의원의 인사, 마케팅, 재정 등 경영 전반에 대해 나와 직원들에게 지시하며 총경영자 역할을 담당했다”며 “S의원과 관련한 주요 결정에 결정권자로서 참여하고 날인했다”고 했다.

또한 “A씨와 B씨 자매는 주식을 과반수 이상 소유하고 있다는 이유로 (합작) 계약에 어긋나는 이사를 추가 선임하고 2018년 8월 16일에는 이사회를 개최해 나를 대표에서 해임했다”며 “그 후 S의원은 물론 경영 전반을 장악해 단독 운영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병원 수익 안나자 폐쇄 시도

이렇게 운영했던 소향라포리스 의원이 수익을 잘 냈다면 이들의 불법 사무장병원 운영은 지금까지 이어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병원은 이들 뜻대로 수익을 내지 못했다. 그러자 상황이 변했다.

김 대표는 A씨와 B씨 자매가 한국의 피부과, 성형외과를 통해 중국환자를 유치해 외화를 세탁하고 비자금을 형성하는 창구로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한국회사에서 물품이나 인력을 파견하면 그 대금으로 한국병원에 환자를 보내 상계처리하기도 했다고 했다.

김 대표는 “이런 식으로 사무장병원을 운영하다가 매출이 없을 때는 과도한 영업이나 홍보를 부추기기도 했으며, 결국 매출이 하락하자 병원을 폐쇄했다”면서 “이로 인해 명의를 대여한 의사에게 세금, 미수금, 직원급여 및 퇴직금, 고객환불금까지 모두 떠넘기고 안면몰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급여나 퇴직금을 받지 못한 직원들은 노동청에 신고한 상태지만 외국인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노동부에서도 제대로 조사를 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김 대표에 따르면 이들이 떠넘기고간 금액이 2억5,000여만원에 달한다.

양심 고백의 또다른 이유 ‘제주녹지병원’

김 대표가 자진신고라는 형태로 자신의 죄를 세상에 알리면서까지 A씨와 B씨를 고소한 이유는 또 있다. 이들이 중국 거대 자본을 등에 업고 국내 상장사까지 동원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했음에도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받지 않는 상황이 답답했기 때문이다. 특히 제주녹지국제병원 설립과정을 지켜보니 앞으로 자신과 같은 처지가 될 것 같은 걱정이 앞섰다고 했다.

김 대표는 “제주녹지국제병원 설립과 관련한 수많은 방송과 기사를 접하고 양심고백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며 “(이들이 S의원을 운영하면서 했던) 외화세탁, 비자금 형성, 부당이득 취득 등의 사례는 제주녹지국제병원과 같은 곳에서도 앞으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고 했다.

김 대표는 “병원도 영리를 추구하는 곳이다. 수익이 나지 않으면 투자자는 투자금을 회수해 한국을 떠나게 될 것”이라며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한국, 한국인 근로자에게 남겨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녹지국제병원은 47병상 규모인데, 이 정도 규모로는 수익을 내기 힘들다"며 "녹지국제병원은 중국의사들이 (성형이나 피부시술 관련) 기술을 익히는 공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의료연수를 빙자해 외국인 의사들에게 한국 의료기술을 유출시키는 아카데미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녹지국제병원이 특히 정상적으로 운영된다면, 한국 투자자들이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해외투자라는 명분으로 외국회사, 외국인의 차명을 통해 자금세탁을 할 수 있는 창구가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김 대표는 “(A씨와 B씨는) 국내에서 사무장병원을 운영하고 여러 피해를 떠넘겼음에도 중국인이라는 이유로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고 있다”며 “이번 고소를 통해 철저한 조사가 진행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편 N사 J 부사장은 이같은 김 대표의 주장에 대해 본지와 통화에서 “사무장병원 운영과 N사는 관련이 없다. (김 대표가 주장하는 8개월 실사 후 사무장병원임을 알면서도 운영했다는 부분과 A대표가 N사를 활용해 사무장병원을 운영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전면 부인하며 "김 대표 주장은 반박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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