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전문의까지 됐지만 미국 의사에 다시 도전한 조도연 교수

한국 의사 면허는 미국에서 인정되지 않는다. 한국 의사라고 하더라도 미국의사면허시험인 USMLE(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를 보는 등 별도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한국에서 의대 6년을 마치고 전문의 자격까지 취득한 의사라면 도전하기 쉽지 않다. 전문의까지 되는데 10년 이상이 걸렸는데 의사로서의 생활 터전을 미국으로 옮기려면 면허부터 다시 취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공의 수련 과정도 다시 밟아야 한다.

이 쉽지 않은 길을 걸은 의사가 있다. 조도연 교수다. 그는 현재 미국 앨라배마 대학병원(University of Alabama at Birmingham) 이비인후과 조교수로 있다.

조 교수는 지난 1999년 충북의대를 졸업하고 삼성서울병원에서 전공의 수련을 받고 2004년 2월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전공의 시절에는 대한전공의협의회 홍보국장을 맡았으며 공중보건의사로 복무하면서도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에서 활동했다.

공보의를 마치고 진로를 고민하던 그는 전공 분야 연구를 하고 싶어 객원 연구원 자격으로 지난 2007년 미국 스탠포드 대학병원에 갔다. 1~2년 정도 연구를 하고 돌아올 생각으로 갔지만 막상 가보니 생각이 달라졌다.

미국 앨라배마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조도연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한국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 자격까지 취득했는데도 미국 의사에 도전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미 이비인후과 전문의였지만 美연구환경에 반해 재도전

우선 한국에 비해 연구 환경이 좋았다. 연구비 지원도 여러 곳에서 이뤄지고 실리콘밸리 등 다양한 기업과 연계된 산학연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었다. 미국 의사면허가 없으면 이 시스템을 활용해 연구를 하기 힘들었다.

그는 미국에서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전공의 수련도 다시 받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시 5년이라는 시간을 투자해 이비인후과 전공의 수련을 받아야 하는 부담이 컸다. 하지만 미국 전공의 수련환경을 보니 해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와서 보니 전공의 수련환경이 한국과 달랐다. 주당 60시간 근무제한이 있다 보니 전공의들은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깔끔한 모습으로 출근했다. 컨퍼런스를 들으면서 조는 전공의도 없었다. 한국은 펠로우(전임의)를 해야 배울 수 있는 술기를 미국에서는 전공의 때부터 가르친다. 전공의 수련을 마친 전문의라면 해당 분야 수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가르쳤다. 그런 과정이 좋아 보였다.”

미국에서 이비인후과 전문의가 되기로 결심한 그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비인후과는 인기가 좋아서 외국인이 들어가기 힘들다”며 경쟁률이 세지 않은 다른 과를 권했다. 하지만 그는 이비인후과, 특히 코 분야 연구를 하기 위해 미국에 왔고 그 분야 전문가가 되기 위해 미국에 남기로 결심했기에 전공을 바꾸는 건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외국인은 들어가기 힘들다는 말에 오기가 생기기도 했다.

그는 이비인후과에 도전했고 성공했다. 그는 스탠포드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지난 2009년 7월부터 2014년까지 전공의 수련을 받았고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미국 이비인후과 전공의 수련 과정은 인턴 포함 5년이다. 인턴부터 아예 이비인후과 소속으로 시작한다.

“미국 전공의 수련 과정은 한국과 달랐다. 다른 동료 전공의보다 6살 정도 더 많았지만 이미 한국에서 전문의 자격을 취득 했고 논문도 여러 편 썼던 터라 도움이 됐다.”

한국과 다른 미국 전공의 수련환경

그가 한국과 다르다고 한 부분은 미국 전공의들은 1년 단위로 계약하고 일주일마다 교수는 물론 동료, 간호사로부터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었다. 전공의들도 교수를 평가한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매주 평가를 받아야 하는 시스템을 가장 힘든 점으로 꼽기도 했다.

“일주일마다 나에 대한 평가가 나왔다. 좋은 평가도 있지만 나쁜 평가도 있다. 감당하기 힘들어서 담당 과장에게 말했더니 문화라고 하더라. 잘하자는 차원에서 주는 평가이니 노력하면 된다고 했다. 미국은 어떤 의미에서는 평가의 나라였다.”

주 60시간 근무라는 제한이 있기는 했지만 집에서 콜을 받는 시스템이 운영돼 실제 근무 시간은 이보다 길었다. 한국 간호사보다 미국 간호사의 업무 영역이 넓기에 전공의가 집에서 오더를 내리는 게 가능했다. 하지만 집에서 하는 일은 근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보통 오전 6시 50분이면 시작되는 수술 때문에 회진이 빠르다는 점도 뒤늦게 전공의 수련을 다시 한 번 더 받는 그에게는 부담이었다. 회진은 보통 오전 4시경 진행됐고 아랫년차 전공의는 오전 3시 30분에는 나와서 준비를 해야 했다.

이비인후과 전공의 수련 과정에서 배우는 술기도 한국과는 차이가 있었다. 한국과 달리 미국은 이비인후과에서 외상 환자도 보기 때문에 전공의 수련 과정에 외상도 포함돼 있다.

“미국은 전공의들이 직접 수술을 한다.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배웠다. 외상 환자를 본다는 점도 한국과 달랐다. 구강외과 분야를 많이 배웠다.”

“도전이 쉬운 환경, 한국 의사들에게도 알리고 싶다”

다른 미국 의사들보다 뒤늦게 출발선에 선 그였지만 자리는 비교적 빨리 잡았다. 전공의 수련받기 전 진행했던 연구 논문들이 이번에도 도움이 됐다. 조 교수는 전공의 수련이 끝나기 1년 전 앨라배마 대학병원에서 근무하기로 계약했다.

“한국에서부터 만성 축농증, 낭포성 섬유증 등에 대한 연구를 해왔고 미국에 와서도 많이 했다. 이 분야 논문을 많이 쓴 사람이 별로 없었다. 앨라배마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서도 내가 두 번째로 관련 분야 논문을 많이 쓴 사람이었다. 병원 측에서 한국에서 전공의 수련을 마쳤고 2년 동안 연구도 했기 때문에 펠로우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하지 않았다.”

그는 현재 앨라배마 대학병원 이비인후과 조교수로 있으면서 연구담당 부과장도 맡고 있다. 임상과 연구 비율은 50대 50이다. 그가 하루에 보는 환자는 40명 정도인데 많은 편에 속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연구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좋다. 연구를 할 수 있는 자원도 많고 독립적으로 진행할 수 있다. 도전하는 게 쉽다. 한국에서 의사들은 임상과 연구 비율은 50대 50으로 가져가기 힘들다. 외래진료도 해야 하고 수술도 해야 한다. 그리고 남는 시간에 연구를 하기 때문에 힘들다.”

그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이 보고 싶고 한국 문화가 그리울 때가 있지만 미국에서의 삶을 후회해 본적은 없다고 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의사들에게 자신 있게 도전해 보라고 말하고 싶단다. 그가 신문 청년의사와 연세의대가 오는 26일부터 27일까지 진행하는 특별컨퍼런스&워크숍 ‘미국에서 의사하기’에 연자로 나서는 이유다.

“미국에서 의사로 사는 삶에 대해 궁금해 하는 한국 의사들에게 제대로 된 정보와 현실을 알리고 싶다. 힘든 점도 있다. 하지만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도전했으면 한다. 꿈이 있으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