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료계 대책 마련 논의 시작…전문가들 “운영 가능한 체계 구축 필요”

강원도 강릉 펜션 사고로 고압산소치료실(고압산소챔버) 부족 문제가 공론화되면서 정부와 의료계가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강릉 한 펜션에서 발생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온 고등학생 2명이 18일 퇴원한다. 강릉아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5명은 이미 퇴원한 상태다.

의식까지 잃었던 이들이 한달여만에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던 건 고압산소치료를 제때 받았기 때문이다. 의식이 없는 중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다인용 고압산소치료실을 갖춘 의료기관이 강원도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수도권에는 하나도 없다(관련 기사: 청와대에서 일산화탄소 중독 사고 발생해도 강원도로 가야).

이 사고로 중환자 치료를 위한 다인용 고압산소치료실을 갖춘 의료기관이 없는 지역이 많다는 사실이 공론화됐다. 경기도 등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으로 고압산소치료시설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보건복지부도 대한고압의학회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대책 마련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기회에 정확한 실태조사와 지역별 상황에 맞는 고압산소치료실 구축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의료기관이 고압산소치료실을 운영해도 최소한 적자는 보지 않는 구조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압의학회에 따르면 1인용 고압산소치료실을 설치하려면 2억원, 10인용 고압산소치료실은 1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또 의사 1명과 간호사나 응급구조사 1명, 장비 운영자 1명 등 3명이 한 조로 24시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유지비도 만만치 않다. 환자 1명을 치료하는 데 평균 2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하지만 수가는 환자 1인당 10만원 정도로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순천향대부천병원에 있는 1인용 고압산소챔버(위)와 제주의료원에 있는 다인용 고압산소챔버(사진제공: 대한고압의학회).

고압의학회 허탁 회장(전남대병원 응급의학회)은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사고는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 화재가 나면 유독 가스가 많이 발생하고 이로 인한 질식사도 많다”며 “지역별 고압산소치료실 구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24시간 운영돼야 하고 가능하면 중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다인용이어야 하는데 현 수가로는 고압산소치료실을 운영하기 어렵다“며 ”다인용 고압산소치료실을 설치하려면 MRI 촬영실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병원 입장에서는 공간 확보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고압의학회 김기운 정책이사(순천향대부천병원 응급의학과)는 “고압산소치료실은 공간을 많이 차지하기 때문에 병원 경영자 입장에서는 그 자리에 커피숍으로 내주는 게 더 이득인 게 현실”이라며 “정부 대책에 고압산소치료실 운영비 지원까지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철저한 사전조사와 의료생활권 등을 반영해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대로 된 조사와 분석 없이 지역별 나눠주기식으로 고압산소치료실이 설치되면 자원 낭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 교수는 “고압산소치료실이 있어야 하고 이를 운영할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특히 중환자를 치료하려면 고압산소치료 전문가뿐만 아니라 다른 과 전문의들도 필요하다”며 “의료소비 행태에 따라 나눈 의료생활권을 조사하고 그에 따라 고압산소치료실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김 교수는 “현재는 실태 파악조차 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래서 정책 연구용역부터 신청할 계획”이라며 “고압산소치료실 구축은 국가 재난관리체계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환자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방치하면 안된다”며 “철저하게 조사하고 준비해서 체제를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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