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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 우수상]지진 속에서 생명이

기사승인 2019.01.21  06: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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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용수

순간 땅이 출렁였다. 중심을 잃었다. 진동은 파도의 물결처럼 계속 몰아쳤다. 건물이 뿌리째 휘청였다. ‘이것이 지진이구나!’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밖으로 몸을 날렸다. 그들이 남긴 비명과 땅 울림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나는 일순 사고가 멈추었다. 생각지 못한 일이라 현실감이 없었다. 이런 일이 있을지 모른다는 경고는 들었다. 하지만 현실이 될 거라곤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막연하게 아무 일 없을 거라고 믿어버렸다. 세상의 불운한 사건은 전부 남들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러니 이 위험한 곳에 제 발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언제 죽을 모르는 땅으로. 멍청한 표정으로 오도카니 서 있는 내 팔을 누군가 잡아끌었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살아야 한다는 본능이 제 자리를 찾아 들었다. 남들처럼. 나도 뛰기 시작했다. 누가 가르쳐준 건 아니지만 그래야만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발밑이 출렁이는 감각이 낯설었다. 땅이란 본디 단단한 것으로만 알았다. 두 다리에 힘을 꽉 주면 넘어지지 않는 줄로만 알았다. 경험이 부족했다. 연두부처럼 물컹하게 땅도 흔들리는 물건이었다. 평생 딛어 온 대지의 감각과는 전혀 달랐다. 발바닥에 새겨진 익숙한 그 감촉이 아니었다. 흡사 놀이기구처럼 발밑이 들썩였다. 근원적인 공포감이 밀려들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빠져 죽을 것만 같았다. 네팔에 또다시 찾아온 두 번째 지진. 우리는 운동장에 모여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건물에 금이 가고 있어. 얼른 빠져나와."

나는 흔들리는 건물 안에 다시 들어와 있었고, 내 앞엔 기력을 소진한 여자 하나가 축 늘어져 있었다. 산모였다. 그것도 방금 막 애를 낳은. 아이는 하필 지진이 몰아칠 때 세상에 고개를 내밀었다. 아이를 낳느라 산모는 건물 밖으로 피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산파가 옆에 함께해 주어서, 아이를 무사히 받아 주었다. 하지만 지진의 재촉에 산파는 손을 다급하게 놀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사고가 벌어지고 말았다. 애가 빠져나온 자궁에서 새빨간 피가 넘쳐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산파는 비명을 질렀다. "블리딩(출혈), 블리딩." 그 소리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나는 건물 안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전기가 끊어져 컴컴한 내부, 건물이 흔들릴 때마다 떨어져 내리는 뿌연 흙먼지, 그리고 바닥을 적시고 흐르는 새빨간 피. 건물 안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응급실 의사로 수만 가지의 경험을 했지만, 이건 차원이 달랐다. 내 머리는 또 한 번 정전을 일으켰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다행히 몸에 새겨진 경험이 무의식중에 손을 이끌었다. 피 나는 곳을 두 손으로 힘껏 눌렀다.

차분히 출혈을 잡을 여유는 없었다. 건물에 금이 가고 있다고 했다. 밖에선 빨리 빠져나오라며 연신 내 이름을 불렀다.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당장에라도 나가야 했다. 하지만 누르고 있던 손을 살짝 떼었더니 새빨간 피가 솟구쳐 올랐다. 화들짝 놀라 피 나는 곳을 다시 틀어막았다. 땅이 흔들리고 피가 쏟아졌다. 하늘은 하나로 부족해, 두 개의 시련을 한꺼번에 내렸다. 감당할 수가 없었다. 쩍쩍 벌어진 천장 틈에선 시멘트 가루가 떨어져 내렸다. 두 쪽짜리 조그만 창문을 보며 침을 삼켰다. 건물이 무너져 내리면, 망설임 없이 창을 뛰어넘어야 했다. '건물에 깔리기 전에 뛰어넘을 수 있을까?' 얼추 주판을 튕겨보았지만, 견적이 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창문을 넘기 전에 깔릴 거 같았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통로는 너무 멀리 있었다. 창문을 보며 기도했다. "멈춰라. 제발."

출혈은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나는 새파랗게 질려가고 있었다. 건물이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나를 짓눌렀으니까. 심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더는 견딜 수 없었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진이 빠졌다. 내가 먼저 쓰러질 거 같았다. '이대로 있다간 둘 다 죽는다.' 이역만리 타지에서 눈 감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살리고자 의사가 되었지, 죽고자 의사가 된 게 아니니까.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혼자 나갈 수는 없었다. 의사의 숭고한 직업의식 같은 거창한 이유는 아니었다. 다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 눈앞에 쓰러진 사람을 두고 혼자만 내빼는 건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을 뿐. 큰 소리로 밖에 도움을 청했다. 몇몇이 쭈뼛거리며 안을 내다봤다. 겁먹은 기색이 역력했다. 쉬이 들어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발을 굴렀다.

"산모 출혈이 심해요. 혼자 걷지 못해요."

그들은 그제야 상황을 눈치챘다. 내 발밑에 흐르는 빨간 액체가 무엇인지. 방안 가득 넘쳐난 비릿한 냄새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나가지 못하고 있는지. 축 늘어진 산모의 모습을 보더니 더 망설이지 않았다. 용감하게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래. 살더라도 같이 살자.’ 우리는 힘을 합해 산모를 함께 떠안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밖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모퉁이를 돌 때까지만 기둥이 버텨주기를. 물먹은 바지처럼 다리가 무거웠다. 죽음이 양어깨를 짓눌렀다.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졌다. 우리는 감히 주위를 둘러볼 엄두도 못 냈다. 그저 앞만 보고 걸음을 옮겼다. 숨을 참고 걸음을 옮겼다. 남은 시간이 아직 있기를. 저 빛이 닿는 곳까지 나갈 수 있기를. 그렇게 겨우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를 에워쌌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 모습에 눈물짓는 이들마저 있었다.

널찍한 마당에 텐트를 쳤다. 안쪽에 자리를 펴고 산모를 눕혔다. 지진은 물러갔지만 죽음의 그림자는 아직 떠난 게 아니었다. 의사로서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환자의 자궁에 주먹을 밀어 넣었다. 꽉 쥔 주먹으로 산모의 배를 안팎에서 압박했다. 그러나 출혈은 좀체 잡히지 않았다. 손에 힘을 살짝만 풀어도 주먹 틈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이렇게 피를 많이 흘린다면 결국 산모는 목숨을 잃게 될 것이었다. 산모와 눈이 마주쳤다. 내 눈에 초조한 기색이 드러난 모양이었다. 그녀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저 이제 죽나요?"

환자를 불안하게 하다니. 의사로서 실격이었다. 나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했다. 과장해서 크게,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태연한 척 웃어 보였다. 피가 멈추고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조금 안심이 되었는지 그녀는 잠이 들었다. 피곤했던 모양이다. 사실 여기서 더 붙잡고 있을 상태는 아니었다. 자궁수축제도 써야 했고 수혈도 해야 했다. 출혈이 지속되면 급하게 수술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산 중턱에 차린 봉사 캠프에 그런 약물이나 장비가 있을 턱이 없었다. 가진 거라곤 링거 수액 정도가 전부였다. 한시바삐 환자를 병원으로 옮겨야 했다. 그러나 방법이 없었다. 지진이 휩쓸면서 병원으로 가는 유일한 산길이 끊어졌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었다. 좋든 싫든 여기서 끝장을 봐야만 했다.

울고 싶었다. 하늘이 원망스러웠다. 의료 봉사에서 환자를 잃는다니. 듣도 보도 못한 소리다. 텐트 밖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지진 속에서도 좋은 소식이 전해지기를 간절히 기대하고 있었다. 실망하게 할 수 없었다. 그 중엔 이제 막 울음을 터트린 아이도 있었다. 아이에게 엄마를 빼앗아 갈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아마도 사람들 앞에 고개를 들지 못할 거 같았다. 오기로라도 살려야만 했다. 다시 한번 의지를 다잡았다. 나는 망부석이 되었다. 다리 맡에 엎드린 채 몇 시간을 꼼짝하지 않았다. 불편한 자세에 허리가 아팠지만, 살리겠다는 집념으로 버티고 또 버텼다. 그렇게 장장 4시간의 사투를 벌였고, 마침내 나는 지혈에 성공했다. 간절한 기도가 통한 것이다. 조심히 손을 떼고 더는 피가 흐르지 않는 걸 확인했다. 나도 모르게 '됐다'를 외치며 산모를 쳐다보았다. 한국말이지만 그녀는 느낌으로 알아들은 모양이었다. 처음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네팔 언어로 인사를 했다.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통역 없이도 의미가 정확히 전달되었다.

나는 이제 상처를 꿰맸다. 커다란 바늘이 허공에 큰 원을 그렸다. 마무리까지 끝낸 후, 산모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새빨갛게 물든 흰 장갑을 벗었다.

"살았습니다!"

사람들의 환호가 쏟아졌다. 나는 제일 먼저 아이를 데려다 엄마 품에 안겨주었다. 엄마와 아이는 같이 울음을 터트렸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녀와 아이의 끈질긴 생명력은 지진 속에서 더욱 빛났다. 사람들은 죽음의 공포를 떨쳐냈다. 다 무너져 내린 건물들 사이, 흙먼지 가득한 땅바닥에 앉아 있으면서도, 그 순간 모두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이들은 먼 훗날 이 순간을 '지진이 온 생명을 앗아간 날'이 아니라 '지진 속에서도 새 생명을 이어간 날'로 기억할 게 틀림없었다. 나는 아이에게 '강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면서.

<수상소감-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용수>

항상 느끼는 게, 수필을 쓰는 것보다 수상소감을 쓰는 게 더 힘듭니다. 뭔가 이런 걸 쓸 때면 손발이 너무 오글거립니다. 감정을 표출하는 것 보다 갈무리 하는 걸 미덕으로 살아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 앞에 속 마음을 꺼내 놓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입니다. 의사로 살면서 문학도 점점 멀리하게 되고, 갈수록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때문에 수필을 쓸 때면 다른 글을 쓸 때 보다 배는 힘이 듭니다. 진지한 성찰이 빠진 무미건조한 글을 누구 앞에 내어놓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상금에 눈이 멀어 염치불구 또 한번 한미수필문학상에 응모를 했습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과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글이 다르다는 생각을 요새 자주 합니다. 때문에 글을 쓰면 쓸수록 힘들다는 생각도 자주 듭니다. 수상 소감을 검색해보니 상을 받은 감상을 얘기하고, 수상을 계기로 더욱 정진하겠다고 써야 한다고 하더군요. 이제 진짜 수상소감으로 들어갑니다. 상을 받아 기쁩니다. 제가 쓰고 싶은 글과 남들이 듣고 싶어 하는 글. 그 사이의 균형을 조금 알 거 같은 느낌입니다.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좋은 글을 많이 남기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청년의사 webmaster@docdocdo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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