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학에 꽂혀 미국으로 건너간 전혜영 뉴욕의대 응급의학과 조교수

미국에서 의사로 살기로 한 이유는 명확했다. 재난의학을 제대로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의대생 시절 이미 결심했고 계획도 세웠다. 일찌감치 전공을 응급의학으로 정했다. 그리고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많은 기회를 잡으려면 한국보다는 미국에서 응급의학과를 전공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10여년 뒤 그는 뉴욕의대(New York Medical College) 응급의학과 조교수로 근무하면서 세계 재난 지역을 누비며 구호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서 의사로 살고 있는 전혜영 교수의 이야기다. 전 교수는 꿈을 좇아 미국에 정착했지만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만끽하는 삶도 ‘덤’으로 얻었다고 말한다.

재난의학에서 출발한 ‘미국 의사 되기’

의대생 시절부터 재난의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캄보디아, 동티모르,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다. 그가 결심을 굳힌 건 파키스탄에서였다.

지난 2005년 파키스탄에서 대지진이 발생해 7만5,000여명이 희생됐다. 당시 그의 모교인 이화여대는 개교 120주년(2006년)을 앞두고 우수한 프로젝트를 제출하는 재학생을 선발해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파키스탄 난민 캠프에서 구호 활동을 하는 프로젝트를 작성해 제출했고 선정됐다. 그렇게 파키스탄 난민 캠프에서 2주를 보내면서 “난 정말 이걸 해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는 미국에서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을 받기 위해 본과 4학년 때부터 ‘100미터 달리기’ 하듯이 준비했다. 한국 의사국가고시와 미국의사면허시험인 USMLE(United States Medical Licensing Examination)를 같이 준비했다. 공백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3월부터 전공의 수련이 시작되지만 미국은 7월부터 시작된다.

“이화의대를 2007년 졸업하고 미국에서 2008년 7월부터 응급의학과 수련을 시작했다. 미국은 7월부터 학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전년도 여름부터 전공의 지원을 받아 이듬해 3월이면 모든 일정을 완료한다. 전공의 지원을 하려면 최소한 USMLE Step1, Step2 Clinical Knowledge(Step 2CK), Step2 Clinical Skill(Step 2CS) 시험 결과는 나와 있어야 한다. 추천서와 에세이 등도 준비해야 하기에 한국 의대생들이 졸업 후 공백기를 줄이려면 일찍부터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 100미터 달리기처럼 시험을 보고 에세이를 쓰고 전공의 지원한 후 미국으로 날아가서 인터뷰했다.”

뉴욕의대(New York Medical College) 응급의학과 전혜영 조교수(가운데)는 지난해 크리스마스이브를 응급실에서 보냈다. 같이 근무한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집에서 파이를 만들어 와 함께 기념 촬영을 했다.

외국 의대 출신이 선호하지 않았던 길

외국 의대를 졸업한 의사들 중 응급의학과를 전공으로 선택하는 의사는 많지 않다. 한국 출신 의사도 마찬가지여서 전 교수는 응급의학과 전공의 지원 시 관련 정보를 얻는 데 애를 먹기도 했다. 미국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주로 이용하는 사이트 등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취합했다.

전 교수가 응급의학과 전공의 수련교육을 받은 곳은 뉴욕 브롱크스(Bronx)에 있는 링컨병원(Lincoln Medical and Mental Health Center) 레벨1 외상센터다. 링컨병원 레벨1 외상센터는 미국 내에서도 응급환자가 많기로 유명하다.

“뉴욕에서도 험하기로 이름난 사우스 브롱크스(South Bronx)에 병원에 있다 보니 미드 ER에서나 봤을 법한, 총이나 칼에 맞은 외상 환자들이 실려 왔다. 전공의 3년 차 때 열 살 짜리 남자애가 얼굴에 총상을 입고 응급실에 왔다. 어느 날 밤 동네 갱들이 형을 찾으며 집 현관문을 두드리자 문에 나 있는 구멍으로 밖을 내다보다가 갱이 밖에서 쏜 총에 맞았다고 했다. 응급실에 실려 온 아이는 ‘나 이제 죽는 거냐’며 비명을 질렀다. 다행히 그 아이는 살았다.”

의대 졸업과 동시에 낯선 타국에서 시작한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인턴 때도 레지던트 때도 그는 항상 막내였다.

“미국 전공의들과 같이 수련을 받으면 나만 너무 뒤떨어진 것 같아 마음고생이 심했다. 대부분 학사 4년, 의학전문대학원 4년을 마치고 오거나 중간에 다른 일을 하다가 의대를 오는 경우도 많아서 경험도 많고 성숙했다. 그게 당연한 건데 그땐 왜 그렇게 크게 느껴지고 혼자 끙끙댔는지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나 외국인이라서 잘 모르니까 도와줘’라고 하면서 먼저 손을 내밀었을 것이다.”

그래도 수련환경은 한국보다 수평적으로 느껴졌다. 상급자나 주치의가 개별적으로 지도하는 일이 많고 의약품 처방이나 입·퇴원도 전공의들과 상의해서 결정한다.

전공의 근무시간은 주당 80시간으로 제한돼 있으며 24시간 이상 연속 근무도 금지돼 있다. 24시간 근무 후에는 최소 14시간 쉬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는 수련병원은 Accreditation Council for Graduate Medical Education(ACGME)에 의해 수련교육 프로그램 취소라는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워라밸’이 가능한 미국 응급의학과 전문의

응급의학과 전문의가 되고 나면 생활은 더 나아진다. 전 교수가 오는 26일부터 27일까지 진행되는 컨퍼런스&워크숍 ‘미국에서 의사하기’에 연자로 참석하는 이유 중 하나도 ‘워라밸이 가능한 미국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삶’을 한국 의사나 의대생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전 교수는 현재 뉴욕의대에서 조교수로 근무하면서 Ultrasound Director로 응급의학과 전공의 초음파 교육도 맡고 있다. 재난의학에도 관심이 많아 소속 병원의 Disaster Committee Board Member다. Core Faculty로 전공의 인터뷰 및 선발 과정에도 참여했다.

전 교수에 따르면 미국 의사들은 주당 평균 35~40시간 근무하면서 병원과 협의해 임상 시간을 조정한다. 환자 진료하지 않는 시간에는 연구를 하거나 병원 행정 업무를 맡는다. 하지만 급여는 임상과 비임상 시간이 똑같이 적용된다. 한국처럼 환자를 많이 봐야 돈을 더 많이 받는 구조가 아닌 셈이다.

특히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일주일에 3~4일 정도 일하고 나머지는 쉴 수 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3시까지 근무하거나 오후 3시부터 근무하는 등 유동적인 근무 시간대를 잘 활용해 여가생활을 즐기기도 한다.

“운동도 하고 책도 읽고, 친구들도 만나고 여행도 다닌다. 일주일에 5일 정도 운동하고 여행을 다녀온 나라도 50개국이 넘는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는 시간을 비교적 자율적으로 쓸 수 있어서 미국에서 인기가 많다. 2017년 기준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30% 이상이 여성일 정도로 여성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과이다.”

물론 미국 응급실에도 난동을 부리는 주취자는 있다. 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뉴욕대학병원에는 경찰이 24시간 상주하고 있다. 뉴욕시에 있는 병원을 담당하는 병원 전담 경찰이 24시간 병원에 상주하면서 문제가 생기면 즉각 출동한다. 응급실 전속 경찰 2~3명도 의료진과 함께 대기하고 있다.

“문제가 생기면 상주하고 있는 경찰이 와서 상황을 진압한 후 문제를 일으킨 사람을 응급실 바깥으로 데리고 나가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폭력 사태나 더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면 병원 전담 경찰이 NYPD(New York Police Department)로 연행해 구속하는 경우도 있다.”

여자여서 고민하는 한국 여의사들에게

전 교수는 특히 미국 의사가 되고 싶지만 ‘여자여서’ 고민하는 한국 여의사와 여의대생에게 고민하지 말고 실천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자기 목소리를 내는 여성을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비하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에서는 일 잘하고 자기주장 똑 부러지게 하는 스타일이 오히려 존중받고 인정받는다. 미국에서도 여성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지만, 처음부터 단호하게 지적하고 그렇게 하지 말라는 의사 표현을 하면 대부분 중단된다. 여자 혼자 몸으로 외국 생활을 하는 게 힘들까봐 걱정하는 한국 여의사, 여의대생들을 많이 봤다. 힘들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한국에서 의대를 졸업한 능력이면 충분히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이번 컨퍼런스&워크숍에서 “‘한국인으로 미국에서 의사하기’가 궁금한 분들에게 내가 경험한 세상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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