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전공의들 “별도 휴게시간 없어…휴식은 물론 밥도 미루기가 부지기수”
"길병원 전공의 사망도 휴식시간 미준수가 요인…철저한 관리감독 나서야"

가천대 길병원 전공의 사망 사건으로 열악한 수련환경이 도마에 오른 가운데 과도한 연속수련에 이어 이번에는 휴게시간 미제공 문제가 전공의들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전공의 사망사건이 발생한 길병원에서 휴게시간을 임의로 제외하고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등 편법을 자행한 사실이 밝혀지자 현장의 전공의들이 저마다 유사사례를 공유하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근로시간이 4시간인 경우에 30분 이상, 8시간인 경우 1시간 이상 휴게시간을 근로시간 중 제공해야 한다.

전공의 법에서도 연속수련 후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주도록 규정돼 있다.

그러나 전공의들은 30분 이상 점심시간을 갖는 게 일주일에 평균 4번에 그치고 있다. 당직 후에도 휴게시간은 평균 6시간에 불과했고, 식사 중에 콜을 받는 경우도 하루 평균 2번이나 됐다.

이는 대한전공의협의회가 지난달 공개한 ‘2018 전국 전공의 병원평가’에서도 그대로 드러나 있다.

병원평가 결과에 따르면 ‘30분 이상의 점심식사 기간을 가진 경우가 일주일에 몇 번이냐’는 질문에 평균 4회라는 응답이 나왔는데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련병원이 전체의 절반(54%) 이상이었다.

가장 잘 지켜지지 않는 곳은 주 2.3회를 기록한 인제대일산백병원이었으며, 아주대병원(2.5회), 세브란스병원(2.6회), 강북삼성병원(2.7회) 등이 뒤를 이었다. 수련병원 중에서 점심식사 시간이 가장 잘 주어지는 곳은 6.7회라는 응답이 나온 국립재활병원이었다.

그러나 이런 식사시간 중에도 전공의들은 콜을 받아야 했다. ‘정해진 식시 시간에 받는 콜이 하루 몇건인지를 묻자’ 평균 2회라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 식사 중에도 가장 많은 콜을 받아야 했던 곳은 세브란스병원으로 하루 3.6회였다. 그 뒤를 인제대서울백병원(3.4회), 인제대일산백병원(3.3회), 분당차병원(3.1회)이 이었다.

일반적으로 외래진료(정규근무) 후 이뤄지는 당직 근무 종료 후에도 전공의들은 평균 6.9시간의 휴게시간만을 갖고 있었다. ‘당직 종료 후 정규 시작 전까지 주어지는 실질적인 휴게시간이 몇 시간인지 묻자’ 서울시 은평병원은 0시간이라는 응답이 나왔다. 대전보훈병원 0.5시간, 메리놀병원 2시간, 국립재활병원 2.1시간 등이었다.

현장 전공의들 “휴게시간 준수하는 곳 본적 없다”

설문 결과를 뒷받침하듯 현장 전공의들은 휴게시간 미준수가 일반적이라는 데 입을 모았다.

경기도 I병원의 경우 휴게시간을 임의로 근무시간에서 제외한 사실이 공개되기도 했다. 24시간 당직 시 휴게시간을 6시간으로 규정하여 실제로는 18시간만 인정하고 있었던 것.

전공의 A씨는 “휴게시간을 정확히 준수하는 사례는 단 한 곳도 없다”며 “보건복지부 수련환경평가위원회에서는 휴게시간 준수 비율이 67% 수준이라고 하지만 그 병원에 찾아가 전공의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라. 절대 그럴리 없다”고 단언했다.

전공의 B씨는 “휴게시간을 준수하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며 “주변 전공의에게 물어봐도 기간이 정해진 별도의 휴게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일이 잠깐 빌 때 계란후라이나 배달음식을 시켜먹기 급급한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B씨는 “그나마도 음식을 먹을 찰나에 급한 콜이 오면 못먹게 된다”며 “휴식은 물론 밥도 뒤로 미루는 일이 부지기수”라고 했다.

이런 상황이 길병원 전공의를 죽음으로 몰고 갔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또 다른 전공의 C씨는 “이번 길병원 사건도 휴게시간 미준수가 실질적으로 전공의의 과로를 이끈 것이 아닌 가 싶다”며 “(수련병원은) 전공의법을 잘 준수하고 있다고 서류상으로만 제출하고 (수평위는) 서류만 곧이곧대로 믿으며 전공의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가 적절한 관리감독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도 나왔다.

복지부는 최근 전공의 수련환경평가에서 확인된 전공의법 미준수 병원에 과태료 및 시정명령 처분을 내렸다. 수련규칙별로 ‘연속수련 간 최소 휴식시간’ 미준수 기관 비율은 12.7%였으며, 이들 병원에는 과태료 100만원에서 500만원, 시정명령 의무 이행기간 3개월이 주어졌다.

하지만 전공의 D씨는 “법을 어겨가면서 한 사람의 전공의를 착취한 벌로 내려지는 처분이 고작 몇 백만원에 그치는 과태료라는 사실이 개탄스럽다”며 “복지부가 개선이나 처벌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그나마 연속수련 간 최소 휴식시간 위반에 대한 부분만 처분이 내려진 것 아니냐”면서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휴식시간, 주어지지 않는 휴식시간에 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복지부가 관리, 감독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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