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 “의료기기 사후 인증은 민간기업 이익만 우선시 한 것…의료영리화 신호탄”

정부가 ICT분야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를 허용하자 의료계가 이를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라 지적하며 즉각적인 폐기를 요구하고 나섰다.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18일 성명을 통해 “정부는 원격의료 추진에 대한 야욕을 버리고 의료영리화 정책추진을 중단해야 한다”면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협에 따르면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활용한 심장관리서비스’는 의료기기업체 휴이노와 고대안암병원이 실증특례 신청을 한 것으로, 의사가 손목시계형 심전도 장치를 착용한 심장질환자로부터 전송받은 심전도 데이터를 활용해 내원 안내 또는 1·2차 의료기관으로 전원 안내가 가능하다.

이에 대해 의협은 “의사가 심전도를 판독하고, 의사-환자 간에 병원 내원여부를 결정·안내하는 것 자체가 이미 의사의 의학적 판단과 소견이 바탕이 돼야만 가능한 원격의료”라며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이번 서비스가 단순히 의사가 의학적 판단과 소견을 환자에게 전달하지 않고 병원 내원 및 타 병원 등으로 안내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복지부가 ‘심장환자의 심전도 데이터를 의사가 24시간 모니터링하지 않고 축적된 데이터를 일주일에 한번 확인해 단순 내원을 안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기기 사용에 따른 심전도 체크가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이에 대한 본인 상태 정보를 의사가 인지하고 안내를 해줄 것이라 판단하게 될 소지가 높다”면서 “자칫 진단 및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치게 되는 빌미를 제공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기기의 단순오류로 발생하는 사고 위험도 모두 환자가 감수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면서 “결국 환자는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하고, 상태가 더욱 악화되는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했다.

의협은 정부가 이 장치를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인증을 받도록 조건을 부가한 점도 문제 삼았다. 아직 허가나 인증도 받지 않은 의료기기를 추후 인증 받는다는 전제 하에 허용한다는 것은 국민의 건강과 안전은 고려치 않고 민간기업의 이익만을 우선시 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

의협은 “안전성 및 유효성 등에 대한 검증이 안 된 기기에 대해 환자에게 25만원 내외의 비용을 부담하게 하고, 환자의 심전도 데이터 정보의 보관 및 전송, 관리에 있어 해당 의료기기 업체가 개인 질병 및 신체 정보 등을 집적,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은 국민에게 비용 부담만 가중시키고, 민간기업의 이익만을 극대화시키는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나아가 “이같은 방식으로 환자 정보를 수집한 민간업체가 해당 사업 범위 외적으로까지 환자 정보를 이용해 건강관리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보험 등 다른 의료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의료영리화 등 의료시장의 왜곡을 일으켜 많은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할 수 있다”면서 “이로 인해 국민 건강 및 안전시스템이 붕괴되는 결과가 초래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의협은 정부의 신기술·서비스 심의위원회 결정사항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이번 결정과정에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논의가 있었는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는 실질적인 논의과정에 철저히 의료계를 배제했고 심장질환자에 대한 의학적 판단과 서비스의 의료적 안전성 및 유효성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어 “정부는 즉각 결정사항을 철회하고 원격의료 추진에 대한 야욕을 버려야 한다”면서 “국민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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