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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입 안만 들여다봤던 치과의사, 의료인문학을 논하다

기사승인 2019.02.19  12: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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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 치대 김준혁 자문위원,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서 의료인문학 중요성 강조

성격이 급하고 다소 의존적인 환자 A가 있다. 그에게 치료의 첫 번째 선택지와 두 번째 선택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다. 결정은 전적으로 환자에게 맡겼다. 그런데 환자 A로부터 “그래서 둘 중에 뭐가 좋다는 거에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번에는 의심이 많고 굉장히 신중하며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환자 B에게 치료의 첫 번째 선택지와 두 번째 선택지에 대해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었다. 의사는 환자의 의견을 묻지 않은 채 앞으로 첫 번째 선택지로 치료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자 B로부터 “왜 제 의견은 묻지도 않고 결정하시는 거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의사는 어떻게 진료해야 할까?

연세대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김준혁(치과의사) 자문위원은 저서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서 ‘공유 의사 결정(Shared Decision Making)’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김준혁 자문위원은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고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한 의사라도 모든 것을 결정하기엔, 의료는 결국 환자를 의한 것이기에 환자의 뜻을 무시할 수 없다”며 “환자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은 그 책임을 환자에게 전가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많은 환자가 혼자서 결정하는 일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기도 하다. 결국 양편이 함께 모여 같이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자문위원은 또 “이것이 의료 의사 결정에서 목소리를 키워가고 있는 공유 의사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치의학교육연구센터 자문위원(치과의사)

김준혁 자문위원이 말하는 의료인문학

김준혁 자문위원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군의관 생활을 하다가 부산대학교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강신익 교수에 이끌려 의료인문학에 발을 담그게 됐다. 처음부터 의료인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치대를 졸업하고 전공의 수련까지, 10년 동안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무언가 언짢은 기분이 들었어요. ‘내가 환자를 잘 보고 있는 것인가’ 같은 맥락의 의문들이었죠. 의료인이라면 누구나 배우면서 스스로에게 물음표를 던지는 순간이 있을 겁니다. 이러한 물음들에 답하기 위해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의료인문학을 접하게 됐어요.”

그렇다면 김준혁 자문위원이 말하는 의료인문학이란 무엇일까? 인문의학, 사회의학, 의인문학, 인문사회의학, 보건인문학 등 나라마다, 학교마다 의료인문학을 부르는 이름은 매우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은 인문학과 의료, 의학이 상호작용하는 분야를 다루는 학문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적용하는 사람마다, 쓰는 사람마다 의미가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의료인문학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은 힘듭니다. 굳이 의료인문학을 정의하자면, 의학을 통해 다른 학문에 접근하거나 다른 학문을 통해 의학에 접근하는 내용을 다루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의료인문학 중에서도 김준혁 자문위원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영역은 ‘서사의학’다. 서사의학은 미국 콜롬비아 의과대학의 리타 샤론 교수가 이끄는 학문으로, 환자의 이야기를 이끌어내고 이를 해석하는 능력의 중요성에 대해 중점을 두고 있다.

“진료 차트에는 기록하지 않는 환자의 감정 상태, 외향적인 모습, 의료인의 감정, 당시의 상황 등을 서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서사의학은 질병 자체에 국한된 관점에서 벗어나 그 주변의 이야기들을 듣고 기록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어쩌면 치료를 위해서는 질병 자체보다도 그 밖의 이야기들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치과의사들은 ‘우리는 입만 봐서 세상이 입만해’라는 자조 섞인 말을 자주 합니다. 우스갯소리에 불과할 수도 있지만, 이에 대해 ‘입 안의 세계 외에도 그 바깥에는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많고 중요한 것들이 있다’라고 계속 일깨워줘야 해요.”

하지만 아직 한국의 의료인문학 수준은 이제야 발을 띠고 출발을 하는 단계다. 어떻게 하면 서사의학과 의료인문학이 추구하는 가치를 진료에 온전히 녹여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고민해봐야 한다는 게 김 자문위원의 지적이다.

“의료인문학을 공부하면서 ‘과연 실제 진료에서는 그것들을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이것은 나 자신의 한계이기도 하며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다는 방증이기도 하죠.”

의학교육에 발을 들이다

김준혁 자문위원은 ‘어떻게 하면 의료인문학이 말하는 바를 진료에 실천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의 일환으로 의학교육에도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3년 전에는 치대 예과생들을 대상으로 그가 평소에 해왔던 고민들을 나누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의료인문학과 의학교육’(앨런 블리클리 저)이라는 책을 번역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김준혁 자문위원이 말하는 의학교육의 개선 방향은 무엇일까? 그는 작품 감상과 그리기를 예로 들며 인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말했다.

“미국의 한 문헌에 따르면 학생들에게 미술 작품 감상을 가르치고 주기적으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줄 경우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진단 기술 습득이 빨라진다고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의과대학의 조직학, 병리학 수업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을 직접 그리게 되면 ‘그 안에 어떠한 것들이 있고 정상 조직과는 어떠한 점이 다르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되고 이는 곧 대상의 특징을 더욱 잘 잡아내는 능력으로 이어지게 되죠.”

이에 의학교육에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에요. 미국에서는 글 쓰는 능력을 제대로 가르치는 과정이 있어요. 또, 최근 들어 JAMA(The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는 의료인들이 겪은 경험들을 내레이션 형식으로 쓴 글들이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글을 받는 이유는 분명 학술지에서도 글쓰기가 의료인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겁니다. 이러한 시도들을 통해 ‘의학이 어떻게 바뀐다’라고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지금과는 달라질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인문학적 소양을 기른 의사들과 정해진 형식대로 차트만 써온 의사들을 비교하면 분명 큰 차이가 있을 거에요.”

하지만 그는 의료인문학을 담은 의학교육을 실행하기에는 아직까지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책을 읽어오라’, ‘영화를 보고 오라’ 등의 수업을 하려고 하면 미국의 학생들은 좋아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않죠. 그래서 의과대학, 치과대학 학생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수업을 진행하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 중입니다. 물론 예과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이러한 수업이 어떠한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인식과 동기가 부족해요. 한편으로는 그런 수업이 가능할까 생각도 들어요.”

그의 이러한 관심과 노력은 후배 의사들을 응원하고 그들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부터 시작했다. 그가 의료인문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는 우연함과 막연함 그 자체였으나 돌이켜보니 지금 하는 일들이 꼭 필요한 일이라고 느껴진다고.

“학생 때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이렇게 롤 모델이 없는 직업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학생들에게 길을 제시해주는 사람들이 비교적 적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의료인문학을 공부하고 의학교육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길을 제시해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조심스러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그는 미래의 의료인들에게도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라’는 말이 있듯 저 같은 사람들이 그런 역할을 해서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위에서 다가올 세상을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김도준 학생인턴기자 phil504@naver.com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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