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수연 기자의 히포구라테스

직역 단체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축사를 하기 위해 참석한 국회의원들은 대부분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한다. 각 단체의 현안을 해결해 주겠다는 게 단골 멘트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글래드호텔에서 열린 대한간호조무사협회 정기대의원총회도 마찬가지였다. 정총에 참석한 여야 의원들은 간무협이 법정단체로 인정받을 수 있게 돕겠다고 했다. 법정단체화는 간무협이 올해 사활을 건 사안이다.

하지만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좀 달랐다. 단상에 오른 오 의원이 한 말은 ‘예상 밖’이었다. 오 의원은 대한의사협회 최대집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최혁용 회장도 참석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직역 간 갈등은 없었으면 한다”고 운을 뗐다.

오 의원은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 간호사와 간호조무사 간 갈등이 있다. 직역에 대한 긍지와 보람, 전문성을 갖고 일하는 분들 간에는 갈등이 없었으면 한다”며 “각자 직역과 기능을 존중하는 게 더 큰 이익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의원은 “의사와 한의사 간 갈등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우수한 학생들이 의과대학과 한의과대학을 가서 의사와 한의사가 된다”며 “국민들이 존경하는 의사와 한의사라면 작은 이익을 두고 갈등할 필요가 있겠느냐. 의사와 한의사가 갈등하면 국민이 박수를 칠 수 있겠느냐”고 했다.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를 향해서도 “무엇을 위해 싸우느냐”고 했다.

오 의원은 “이제는 갈등과 대립이 아닌 통합하는 대한민국으로 가야 한다. 더 큰 대의를 위해 마음을 모아야 한다. 이제는 바뀌어야 할 때가 왔다”는 말로 축사를 마친 뒤 단상에서 내려왔다.

다른 의원에 비해 오 의원이 받은 박수소리는 작았지만 사회자는 “우리에게 뼈아픈 얘기”라고 했다.

4선 국회의원인 오 의원은 19대 국회에서 보건복지위원장을 맡았으며 이번 국회에서도 복지위에서 활동하고 있다. 오랫동안 보건의료 분야 직역 간 갈등을 지켜봐왔다는 의미다. 그런 그에게도 의사와 한의사,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현안마다 대립하는 이유가 국민 건강보다는 직역의 이익에 있는 것으로 비춰진 셈이다.

계속 이어지는 직역 단체 간 대립을 보면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다. ‘밥그릇 싸움’이라는 프레임에 걸리면 될 일도 안되는 경험도 많이 해 봤을 것이다. 모든 직역 단체가 ‘투쟁’을 말하고 있는 지금, 오 의원의 말처럼 “국민이 박수 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 봤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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