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호 의정부성모병원 외과

병원 장례시장은 다니면서 늘 봤었고, 몇 번 가본 적이 있었지만 오늘은 평소와는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2014년도 11월, 가을의 막바지이자 겨울의 초입이었고, 가로수에는 달려 있는 나뭇잎보다 인도와 주차장에 굴러다니는 낙엽이 더 많아지고 있었다. 간만에 꺼내 입은 검은색 양복 안으로 스산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장례식장 밖 흡연장소에는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과 조문객들이 약간 술이 오른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서 대화를 하고 있었다.

장례식장 입구에 들어섰다. 밖의 어두운 분위기에 비해, 장례식장 안은 너무 밝았고, 환한 형광등 불빛으로 다소 낯섦과 괴리감이 느껴졌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상주의 명단을 확인했다. S씨가 상주로 있는 11호실은 꽤 큰 호실이었다. 이미 다소 늦은 시간인 까닭인지 2~3 테이블에만 사람들이 좀 있었을 뿐이었다. 11호실에 들어서자 S씨는 매우 놀란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나는 고인에게 예를 차린 뒤 S씨가 안내해 주는 테이블로 가서 앉았다. 어느새 남아 있던 문상객들은 일어서서 나갈 채비를 하고 있었다. S씨는 나에게 잠시 양해를 구한 뒤 문상객을 배웅하고 같이 있던 두 형을 내게 소개해 주었다. S씨에게는 형이 두 분 계셨다. 한 분은 내가 전에 병원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식사를 했냐고 물어보길래, 저녁은 먹고 왔다고 이야기를 하니 그럼 소주를 한잔 하자고 S씨가 이야기했다. 뭔가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이 들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S씨와 형제들이 나에게 안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고, 나도 내가 돌보던 환자의 장례식에 온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나도 왠지 모르게 와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작정 왔기 때문에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딱히 거절할 이유도 찾을 수 없었다. 그 때 나의 어색해하는 모습이 얼굴에 드러났는지 S씨가 먼저 소주를 따라주면서 말을 꺼냈다.

“정말 오셨군요. 이틀 동안 안 오시길래 그냥 예의상 하는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오셨네요.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형님들께도 제가 잘 설명 드렸습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다들 화를 많이 냈지만 지금은 다들 이해하고 있어요.”

나는 긴장으로 인해 마른 입술을 소주로 약간 축였다. 참으로 죄송하다, 그리고 최선을 다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의료진들도 정말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는 형식적인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투병 기간 동안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에 저는 감동받았습니다. 저도 사람이고, 아들이다 보니 아버지께서 안 좋아지실 때는 여러 가지 생각도 들고, 감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병원에 갔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도 틀림없이 그렇게 생각을 하실 겁니다.”

부끄러워졌다. 물론 당시 열심히 환자를 돌본 것은 사실이나 돌아가신 환자의 아들에게 감동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내가 정말로 최선을 다 했는가, 내가 뭔가 더 잘했으면 결과가 좋아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내가 환자에 대해서 놓친 것은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빠르게 지나갔다. 그리고는 나의 무지함으로 인해 사람을 구하지 못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부끄러움은 더욱 더 커져서 내 마음속과 머릿속을 완전히 채워버렸다.

“항상 환자 옆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계셔서 저는 어느 순간 선생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간에 선생님을 믿자. 그리고 저렇게 열심히 했는데 안 좋아 진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신의 뜻이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저희 집사람이 해준 이야기예요. 제가 병원에서 별다른 불만을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아버지께 면회를 다녀왔는데 상태가 안 좋으면 집에서 불만을 많이 이야기했었나 봅니다. 집사람은 애들을 돌봐야 하니까 면회를 자주 못 왔기 때문에 제가 아버지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 줬거든요. 평소에는 그냥 듣기만 하거나 제 불만에 대해서 맞장구를 쳐 주던 집사람이 어느 날 이야기하더군요. 자기가 보기엔 병원에서 최선을 다 해 주는 것 같다고. 당신이 병원에 가면 아침이든, 저녁이든 밤이든 그 선생님이 아버지 옆에 있다고 하지 않았냐고. 당신 갈 때마다 그 선생님한테 아버지 상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시술 동의서도 설명 듣지 않았냐고, 그렇게 밤낮없이 환자 옆에서 지키고 있는 의사는 자기는 보지 못했다고 그러더군요. 그리고는 집사람 아버지, 저에겐 장인어른이시죠. 그분이 예전에 돌아가실 때는 의사에게 그렇게 자세한 설명들을 듣지 못했다고 그러더군요.”

다소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마음과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부끄러움과 죄책감은 사라지지 않고 점점 단단한 가시처럼 변해 심장을 서서히 파고드는 것 같았다. S씨의 아버지 K씨는 70대 중반의 노인으로 간염, 간경화로 간 이식 수술을 받은 환자였다. 나는 당시 임상강사였고, 병원에서 환자에게는 담당의도, 주치의도 아닌 중간 위치에 있는 의사였다. K씨의 주치의는 내 스승님이셨고, 담당의사는 전공의로 되어 있었지만 수술 후 환자의 관리는 주로 임상강사들이 했었다. 사후 장기 기증자를 기다렸다가 간 이식을 받는 환자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수술 전부터 상태가 좋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K씨도 마찬가지였다. 수술 과정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지만, 수술 후 이식한 간이 회복하지 못하고 기능이 점점 떨어져 간데다, 나중에는 감염까지 겹쳐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상태에 다다랐다. 항생제를 쓰면서 감염이 잡히기를 거의 기도하는 심정으로 환자를 돌봤는데, 수술 후 제대로 되지 않은 면역억제와 잡히지 않는 패혈증으로 환자는 서서히 무너졌었다. 마치 도미노가 차례대로 쓰러지는데 도중에 막을 수 없어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다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차례대로 쓰러지는 도미노의 중간 블록을 어떻게 잘 빼내어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었다. 하지만 종국을 향해서 달려가는 환자의 운명 앞에서 나는 무력 했었고,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상태였다. 결국에 나는 단지 보호자들보다 환자의 죽음을 조금 더 일찍 예측하는 정도였다.

“저도 아버지께서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객관적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집사람이 하는 말을 듣고 나서 다음날 병원에 왔을 때는 선생님 얼굴도 보이고, 중환자실에 간호사 얼굴도 보이더군요. 환자에 대한 절실함이 비치는 선생님의 눈이 그제서야 보였어요. 그 때부터 저도 선생님과 의료진을 완전히 신뢰하게 되었습니다. 우린 마치 고지를 탈환해야 하는 군인들 같았어요. 그리고 전투에서 지기는 했지만, 선생님도, 나도 우리는 같이 싸운 전우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버지도 함께요. 45일간의 정말 치열한 전투였다고 생각해요. 전투에서 늘 이길 수는 없겠지요. 지금은 저도 마음이 좀 편안합니다. 후회도 남지 않구요. 아버지도 좋게 생각하실 거예요.”

나는 왜 여기에 왔을까? 돌아가신 환자분에게 예의를 차리기 위해서 왔을까? 아니면 보호자들을 위로하러? 내가 정말 최선을 다 했노라고 알리기 위해서 왔을까? 아니었다. 좀 더 최선을 다 하지 못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서 왔을 것이다. 슬픔에 빠져 있는 보호자들을 위로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내가 위로 받기 위해서 온 것이었다.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애써 모른 체 해서 인지 못하고 있던 진심이 드러나 다시 한 번 나를 부끄러움으로 채웠다. 나는 지식이 모자라서 최선을 다 못한 것이지, 알면서도 나태하지는 않았다고 알량한 자기 방어로 터져 나오려는 부끄러움을 간신히 억눌렀다. 하지만, 지식의 모자람도 의사에게는 죄악이 아니던가.

“앞으로도 계속 열정적인 모습으로 남아주세요. 그래야 아버지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것 같아요.”

나는 고개를 숙이며, S씨에게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시계가 1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른 장례식장에서 간간히 들리던 대화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만 가봐야 할 것 같다고 S씨에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S씨와 형제들의 배웅을 받으며 장례식장을 나섰다. 장례식장을 나서는데, 예전에 어디선가 읽은 글이 생각났다. 읽은 지 좀 오래 되어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일본의 한 나이든 의사가 후배에게 했다는 말이었다. “의사는 병과 싸우는 군인이다. 진짜 군인과 다른 점은 죽도록 싸워도 의사는 죽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싸움에서 지면 대신 환자가 죽는다. 그렇기 때문에 의사는 죽을힘을 다해서 싸워야 한다”라는 말이었다.

나는 환자를 위해서 죽을힘을 다해서 싸우고 있는가?

예전부터 한미수필문학상에 대해 알고 있었고,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주변에 글을 잘 쓰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고, 블로그를 운영하시거나 책을 이미 내신분들도 많이 계셔서 저에게는 도전 자체가 높은 벽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번 18회 한미수필문학상에 대한 이 메일을 읽고 나서 오랫동안 머리와 가슴 속에서 사라지지 않던 한 환자와 그 보호자에 대한 생각이 다시 들었고, 몇 년 전의 느낌이 마치 며칠전에 있었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되살아나, 다른 사람들에게 그런 느낌을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한미수필문학상의 취지에 따라 최근 멀어져 가는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상호간의 신뢰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의 실력이 매우 중요한 것은 변치 않는 사실이나 환자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그것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의사의 마음이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의사의 치료 계획에 잘 따라오도록 만드는 원동력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의사와 환자가 서로 더 신뢰하고 치료에 임하는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며,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 이 글로서 제18회 한미수필문학상 수상작 연재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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