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로 진료비 결제에 검사결과 확인까지…병원은 오직 진료만
알리바바 ‘미래병원’ 도입 후 변화 시작…“의료IT, 이미 중국에 밀렸다”

진료를 받기 위해 대학병원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는 중국 환자들 모습.

대신 줄을 서주는 아르바이트가 성행할 정도로 환자가 몰렸던 중국 대학병원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모바일 헬스케어 등 의료 분야 IT가 중국 환자들의 의료 이용 형태를 바꾸면서 ‘도떼기시장’ 같던 모습이 사라지고 있다. 원무 창구를 없앤 병원들도 많다. 환자들은 병원에서 ‘진료’만 받는다.

중국 대학병원들이 진료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기능을 덜어내는 작업을 시작한 건 이미 오래전이다.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IT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중국 의료기관들을 직접 보고 온 사람들은 “의료 분야 IT는 이미 중국에 밀렸다”고 말한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병영경영학과 이상규 교수가 본 중국 의료기관들도 그랬다. 연세의료원이 추진하는 ‘칭다오세브란스병원’ 건립 사업에 초기부터 참여했던 이 교수는 지난 2014년부터 2018년 8월까지 중국을 수십 차례 방문해 여러 의료기관을 둘러봤다.

이 교수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중국 항저우에 있는 절강대학병원을 사례로 들면서 중국 의료 분야 IT 발전 속도를 설명했다.

원무 창구 사라진 중국 대학병원

이 교수가 수년 전 봤던 절강대학병원은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는 환자들로 북새통이었다. 하지만 2016년 다시 찾은 절강대학병원은 한산했다. 병원을 찾는 환자가 줄어서가 아니었다. 병원 1층을 가득 채웠던 대기 환자들이 사라진 것이다. 원무 창구도 사라졌다.

이런 변화는 알리바바의 ‘미래병원’을 도입한 후 시작됐다. 알리바바가 지난 2014년 5월 개발한 미래병원 시스템은 병원의 기능 일부를 모바일로 가져왔다.

환자는 미래병원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진료 예약 접수를 하고 진료 시각에 맞춰 병원을 방문한다. 병원에 미리 가서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의미다. 병원에 환자가 도착하면 예약된 진료과에 이를 알리고 환자에게 길 안내도 한다.

진료를 받은 뒤에도 진료비를 내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모바일로 진료비를 내고 검사결과도 확인할 수 있다.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은 ‘알리건강’이라는 앱을 이용해 집에서 택배로 받을 수 있다. 병원에서는 환자 진료와 관련된 일만 진행된다.

알리바바가 개발한 '미래병원'(제공: 이상규 교수)

알리바바의 미래병원은 환자의 증상에 따라 적절한 진료과와 의사를 추천하는 서비스도 제공한다. 환자가 위치한 지역 인근에 있는 의료기관과 진료과, 의사를 추천하고 예약 가능한 시각과 진료비도 알려준다. 환자는 진료과와 의사를 선택해 진료 예약을 한 뒤 해당 의료기관을 찾아 진료를 받으면 된다. 마찬가지로 모바일로 진료비를 결제하고 처방받은 의약품은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이미 중국 의료기관에서 사용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반드시 병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진단과 치료 외에 진료 예약이나 진료비 결제, 결과 확인은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며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을 도입해 환자가 증상을 적으면 어떤 과에서 진료를 받으라고 조언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앱으로 진료비를 낼 때면 총 진료비가 얼마이고 그 중 본인부담금은 얼마라고 나온다. 그리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결제가 끝난다”며 “이 시스템을 갖추려면, 한국으로 치면 국민건강보험공단 데이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데이터를 알리바바라는 회사에 제공한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이 시스템을 도입한 절강대학병원은 원무 창구를 없앴다. 우리나라 대학병원 중 원무 창구를 외주로 운영하는 곳들이 많은데 그 운영비로 연간 100억원 이상 쓴다”며 “미래병원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200억~300억원 정도 든다고 해도 일단 구축하면 매년 100억원 이상 절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의료정보 표준화해 클라우드로 공유하는 중국

중국이 진행하는 의료정보 표준화 작업이 마무리되면 관련 분야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 위생국은 모든 의료기관의 의무기록을 표준화해 클라우드로 관리하는 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상규 교수

이 교수는 “의무기록을 표준화해 클라우드에 올리면 병원끼리 정보를 공유할 수 있다”며 “칭다오시만 해도 의무기록이 이미 표준화됐다. 주요 IT 회사들이 표준화된 의무기록 시스템을 만들어 공급하기에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의료가 이처럼 빠르게 변화할 수 있는 원동력은 중앙 정부에 있다는 게 이 교수의 지적이다. 오는 2020년 중국 의료비 지출 총액은 1조 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시장이 될 거라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중국 국민 의료비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공공의료기관 중심인 의료서비스 공급은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중앙 정부 차원에서 민간 부문 투자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말한 ‘전면적 소강사회(전체 인민이 중산층의 삶을 사는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의료서비스 제공이 핵심 국정 과제”라며 “정부 차원에서 의료 분야에 투자를 많이 하고 규제도 많이 풀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공공만으로 한계가 있다는 걸 알기에 외국 의료기관 등 민간이 의료 분야에 많은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많은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며 “칭다오시만 해도 칭다오세브란스병원 건립을 지원하는 별도 부서를 신설해 전폭적으로 지원해주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이어 “정책 하나를 수립하기 위해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몇 년 동안 치열하게 논쟁해 합의점을 찾는다. 그리고 실효성이 있는지 정책 실험을 한다”며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관련 정책 담당자가 바뀌는 일이 거의 없어 그 분야 전문가가 된다”고 말했다.

“의료 IT 인력이 없다”…게임산업으로 쏠리는 전문인력들

중국과 반대로 한국은 의료 분야 IT가 제자리걸음만 걷고 있다고 했다. 정부 정책에도 문제는 있지만 무엇보다 현장에서 느끼는 문제는 관련 분야 발전을 이끌만한 인력이 없다는 점이다.

이 교수는 “대학병원이 의료정보 시스템을 한번 업그레이드하려면 수백억원이 든다. 그러나 돈보다 큰 문제는 전문 인력이 없다는 데 있다”며 “실력 있는 프로그래머가 투입되지 못해 속도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게임 산업이 발전하고 그쪽이 대우가 더 좋다 보니 실력 있는 엔지니어나 프로그래머들이 그쪽 산업으로 빠지고 있다”며 “심각한 문제다. 이쪽 분야에 시장이 형성되지 않으니 자본도, 인력도 모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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