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감축 및 진료시간 단축으로 버티기…“의료 질 하락 고착화” 우려
의정연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50.8% “최저임금 인상으로 진료시간 단축"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으로 개원가가 고사 직전이다.

최근 2년간 30%(2018년도 16.4%, 2019년도 10.9%)에 가까운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까지 더해져 의원 운영이 위태롭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하지만 2018년도와 2019년도 의원급 요양급여비(수가) 인상률이 각각 3.1%, 2.7%에 그치면서 개원가의 경영난 타개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직원 감축 및 진료시간 단축 등으로 대응하고 있지만 이같은 임시방편으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시 동대문구에서 재활의학과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A원장은 지난해부터 진료시간을 하루 평균 1시간 30분 가량 단축했다. 또 두명이던 간호사도 한 명으로 줄였다.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상황에서 환자까지 줄어들면서 직원들의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동대문구에 위치한 한 재활의학과 의원.

A원장은 “2년 전만해도 오전 8시 반부터 오후 7시까지 진료를 했다”면사 “하지만 지금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만 진료한다. 문을 오래 열어 둔다고 딱히 환자가 온다는 보장도 없고 인건비를 생각해 어쩔 수 없이 진료시간을 줄였다”고 설명했다.

A원장은 이어 “최저임금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부분을 감내하기 힘들다”면서 “최저임금 인상에 주휴수당까지 줘야하는데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직원들을 최저임금에 맞추다보면 그 이상을 받고 있는 정규직 직원들도 (임금 인상의)기대감을 갖게 된다. 그러면 부담이 배로 늘어난다”고 했다.

현재 이 의원에는 간호사 한 명과 물리치료사 한 명이 정규직으로, 환자 접수 등의 행정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두 명이 근무 중이다.

하지만 직원 네 명이 모두 근무하는 시간대는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다. 오후 1시와 2시에 행정업무를 맡은 비정규직 직원이 순차적으로 퇴근한다.

A원장은 “임금 총액의 한계가 있는데 매년 이렇게 최저임금이 오르면 도저히 맞출 수가 없다”면서 “환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직원들의 근로시간을 줄이고 휴식시간을 더 보장하는 방법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더 큰 문제는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으로 의료기관 매출이 계속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 평일 오후 4시부터 한 시간 가량 인터뷰가 진행되는 사이에 이 의원을 찾은 환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A원장은 “오후 6시까지 진료를 보지만 환자들에게는 5시 반까지 오라고 한다”면서 “하지만 4시만 지나면 환자가 없다. 예전에는 하루에 (환자를) 100명은 봐야한다고 했는데 이제는 60명도 못 미칠 때가 많다”고 설명했다.

A원장은 이어 “주변을 보더라도 거의 비슷한 상황”이라며 “상급종합병원은 예약하기도 힘들고 설사 예약을 해도 두세 달씩 기다려야 한다는데 의원에는 아무 때나 와도 진료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A원장은 “식당이야 주인 마음대로 음식 값을 정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정부가 수가를 통제해 지출이 늘더라도 뾰족한 방법이 없다”면서 “최저임금은 급격하게 올려놓고 수가에는 이를 반영하지 않겠다고 하니 서운하고 답답할 따름”이라고 토로했다.

인근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B약사도 개원가의 어려움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고 있었다. 주변 의원들이 진료시간을 단축하자 직원의 근무시간을 함께 줄인 것.

B약사는 “(오후)6시로 진료시간을 줄인 의원들이 많아서 (약국)직원을 6시에 퇴근시키고 그 이후는 혼자서 약국을 보고 있다”면서 “이 건물에 있는 소아과도 환자가 줄다보니 간호사도 줄이고 오전 진료만 한다”고 말했다.

실제 같은 건물에 위치한 소아청소년과 의원은 수요일은 아예 진료를 보지 않았고 평일에도 오후 1시까지만 진료를 시행하고 있었다.

본지가 입수한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이러한 상황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다.

의정연은 지난 2월 26일부터 3월 10일까지 의원급 의료기관 개원의를 대상으로 이메일 및 모바일을 통해 ‘최저임금 인상이 의원 경영에 미친 영향’에 대한 설문을 진행했다. 해당 설문에는 1,152명이 응답했으며 이상치 및 극단값을 제외한 1,060명의 답변이 유효하게 분석됐다.

의정연에 따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주 평균 진료시간은 45.7시간으로 확인됐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진료시간을 단축했다’는 의원은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39개(50.8%)로 나타났으며 ‘단축이 필요해 검토 중’이라는 의원도 348개(32.8%)에 달했다.

‘진료시간을 단축했다’는 의원의 주 평균 단축 진료시간은 5.2시간이었다.

반면 ‘단축하지 않았고 단축계획도 없다’는 의원은 173개(16.3%)에 불과했다.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의 주 평균 근로시간 또한 단축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 2017년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의 주 평균 근로시간은 43.3시간이었지만 2018년 42.1시간, 2019년 41.0시간으로 점차 감소했다.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의원이 진료시간을 단축하면서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의 근로시간도 줄었다는 게 의정연의 설명이다.

하지만 의원이 부담하는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의 연간 평균 인건비 규모는 수가인상률 이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의원이 부담한 최저임금 대상 근로자의 연간 평균 인건비는 2018년과 2019년 각각 전년에 비해 5.7%, 8.0% 상승했다.

서울시 중구에서 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C원장도 의정연 설문결과와 상황이 비슷했다.

현재 해당 의원에는 간호조무사 3명, 방사선사 1명, 물리치료사 2명 등 총 6명이 근무하고 있는데 C원장은 전년에 비해 인건비가 월 평균 150만원 이상 많이 지출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최근 2년 사이 진료시간을 주 평균 5시간 단축했다.

C원장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거기에 해당되는 직원 뿐 아니라 (최저임금을)넘는 직원들의 인건비도 올랐다”면서 “전반적으로 부담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C원장은 “인건비 부담이 커지다보니 진료시간을 줄이고 결원이 생겼을 때 충원을 하지 않는다”면서 “남은 직원들에게 월급을 더 주고 그 자리를 메우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월급을 더 받더라도 일이 힘드니 직원이 쉽게 그만두고 새로 와도 오래 있지 않는다”면서 “최근 의원급 의료기관의 간호인력 이직이 굉장히 많아졌다”고 전했다

C원장은 진료시간 단축으로 인한 의료공백을 우려하기도 했다.

C원장은 “평일 7시까지 하던 진료를 6시로, 토요일 4시까지 하던 진료를 3시로 줄이다보니 불과 한두 시간 사이에 아픈 환자들은 어쩔 수 없이 병원 응급실로 가야하는 불편함이 생겼다”면서 “동네의원에서 해결될 일로 병원 응급실을 가야하니 낭비가 발생한다. 경증환자들로 인해 병원 응급실이 혼잡해지고 중증환자의 진료에도 지장을 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원장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경영난이 계속될 경우 의료서비스의 질이 하락할 수밖에 없다고 단언했다.

C원장은 “직원을 줄인다고 해서 환자를 못 보지는 않겠지만 환자 응대나 진료시간이 짧아지는 등 질적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며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저질 의료가 고착화 될 것이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겠지만 노동집약적 산업이라는 의료의 특성상 자명한 결과”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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