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년간 한국만 병상수 2배 이상 늘어…“병원 울타리 안에 갇힌 한국”

의료이용 행태가 달라지면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은 병상 수가 줄고 있지만 한국만 반대로 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만 모든 문제를 병원 안에서 해결하려는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이다.

‘OECD Health data’에 따르면 한국과 터키를 제외한 OECD 회원국들은 인구 1,000명당 병상(급성기) 수가 줄고 있다.

OECD 회원국 중 병상이 가장 많은 일본도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2002년 14.4병상에서 2016년 13.1병상으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독일은 8.9병상에서 8.1병상으로, 벨기에는 6.6병상에서 5.7병상으로, 덴마크는 4.3병상에서 2.6병상으로, 영국은 4.0병상에서 2.6병상으로 줄었다.

반면 한국은 지난 15년 동안 병상 수가 2배 이상 늘었다. 2002년에는 인구 1,000명당 4.8병상이었지만 2016년에는 12.0병상으로 증가했다.

지난 15년 동안 겨우 0.5병상 증가(2.3→2.8병상)한 터키와는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급증했다. 또한 2016년 기준 한국은 일본에 이어 병상 수 2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OECD 평균인 4.7병상 보다 2배 이상 많은 병상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과 한국의 격차도 급격히 감소해 2002년 9.6병상이나 차이 나던 병상 수는 2016년 그 차이가 1.1병상으로 줄었다.

자료: OECD health data

“의료가 병원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는 게 세계적 추세”

연세대 보건대학원 병원경영학과 이상규 교수는 병상 수 감소 이유를 환자의 의료이용 행태 변화에서 찾았다. 다른 나라들은 환자에게 제공되는 의료서비스가 기존 틀을 깨고 병원 밖으로 나갔다면 한국은 여전히 병원 안에서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카이저 퍼머넌트(Kaiser Permanente)는 이미 병원을 직접 찾는 환자보다 스마트폰 등으로 의료서비스를 받는 환자가 더 많다고 밝힌 바 있다. 카이저 퍼머넌트 CEO 버나드 J. 타이슨(Bernard J. Tyson)에 따르면 지난 2016년 계열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전체 환자의 52%가 스마트폰이나 화상, 키오스크 등 IT 기술을 이용했다(관련 기사: More Than Half of Kaiser Permanente’s Patient Visits Are Done Virtually).

미국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도 2002년 3.4병상에서 2015년 2.8병상으로 줄었다.

이 교수는 최근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우리나라를 제외한 다른 나라를 보면 병상 수가 줄고 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의 환자 수가 감소하는 건 아니다”라며 “의료기술이 발전하면서 병원 안에서만 해야 했던 일들이 병원 밖에서도 가능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병원에 입원해야만 받을 수 있었던 의료서비스를 이제는 입원하지 않고 가정 등에서 제공받게 됐다. 그리고 많은 나라들이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체 의료비도 줄기 때문에 이 방향으로 가지 않을 수 없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는 여전히 병원 울타리 안에서만 의료서비스를 받으라고 하고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많은 나라들이 병원이라는 틀을 깨고, 병원 밖에서도 의료가 이뤄지고 있다. 세계적인 추세”라고 강조했다.

"의료가 전달되는 방식에 대한 심각한 고민 있어야”

이 교수는 이어 정부 정책이 바뀌어야 한다고 했다. 의료가 전달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상태에서 나온 정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상규 교수는 최근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많은 나라에서 의료이용 행태 변화로 병상 수가 줄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성장하는 산업 생태계의 가장 큰 특징은 혁신성이 수익성을 압도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의료산업에서 혁신을 기대하기 힘들다”며 “우리나라 병원들은 수익을 내기 급급하다. 수익성이 혁신성을 압도하는 생태계는 성장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정부가 공급 측면에서 규제를 푼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현 시스템에 적응해 버려서 정부가 규제를 푼다고 수요가 늘어날 것 같지도 않다”며 “경영학적으로 봤을 때 정부는 마케팅 4P인 제품(product), 유통 경로(place), 가격(price), 판매촉진(promotion) 중 제품과 가격에만 묶인 정책을 내놓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일반적으로 환자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의료는 4P 중 Place인, 의료가 전달되는 방식이다. 하지만 정부가 의료산업 발전을 위해 내놓은 정책은 신약 개발과 의료기기 산업 육성과 관련된 내용이 대부분”이라며 “신약이나 의료기기는 의료를 구성하는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의료산업이 발전하려면 의료를 소비하는 과정이 즐거워야 한다. 비용을 조금 더 지불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정도로 혁신이 이뤄져야 산업 규모가 커지고 관련 분야가 발전한다”며 “의료가 전달되는 방식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없으면 의료산업도 발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병원이라는 울타리를 정해 놓고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 시작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의료의 핵심은 전달되는 방식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추세는 병원 틀을 깨고 밖으로 나가고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민 정서는 의료를 산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정부가 발표하는 관련 정책들이 제약이나 의료기기산업 육성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이라며 “고속도로를 까는데 정부가 돈을 쓰면 낭비라고 생각하지 않고 투자라고 생각한다. 의료 분야도 마찬가지다. 의료가 발전했더니 나에게 뭔가 도움이 된다는 인식이 생기려면 의료가 전달되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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