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창원병원을 떠다니는 다섯 척의 배가 바꾼 '병원 문화'…"내 스스로 바꿔보자"
삼성서울병원 김형진 전략혁신실장, ‘HiPex 2019’서 조직문화 변화 비결 공개

내가 속한 조직이, 내가 일하는 병원이 잘 될 것 같지 않다던 직원들이 있었다. 직원들은 병원에 대한 희망도 믿음도 없었다. ‘언제든 그만 두겠다’며 사직서를 늘 품고 다닐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환자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이들의 냉소적인 태도는 병원을 휩쓰는 성난 파도 같기만 했다. 이는 외과부터 신경외과, 비뇨기과까지 모든 과의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삼성창원병원 A병동 간호사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그들이 바뀌었다. 자신들과 함께 싸워주는 동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부터다. 마음이 누그러지더니 내 스스로 바꿔보겠다는 생각마저 들게 됐다. 바로 삼성창원병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운동을 통해서다.

삼성창원병원은 지난 2016년부터 병원 내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문화운동을 벌이고 있다. 올해로 4년째인 ‘블루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이 문화운동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조직원들로부터 시작됐다. 기존 기업들이 조직 문화를 바꾸기 위해 시행했던 ‘위에서 아래로’ 지시하던 ‘탑다운(Top-down)' 방식이 아닌 조직원들이 자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아래에서 위로‘ 진행된 ’보텀업(Bottom-up)' 방식으로 진행됐다.

이런 점에서 삼성창원병원의 블루 다이아몬드 사례는 특별하다. 조직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인해 이뤄진 변화이고 혁신이라는 점도 특별하지만, 문화적인 관점으로 조직을 새로이 디자인 한 사례도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기 때문이다.

삼성창원병원의 ‘성난 파도’를 잠재우는데 애를 쓴 이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김형진 전략혁신실장이 그 주인공이다. 김 실장은 청년의사 주최로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 명지병원에서 열리는 ‘HiPex 2019 컨퍼런스(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19, 하이펙스)’에 연자로 참여한다. 김 실장은 하이펙스 셋째 날인 21일 ‘디자인, 문화를 만나다: 삼성창원병원 사례 연구’를 주제로 병원 문화가 바뀌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삼성창원병원 사례를 소개할 예정이다.

삼성서울병원 김형진 전략혁신실장

- 삼성창원병원의 문화운동 사례가 특별한 이유가 있나.

삼성창원병원에는 조직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운동이 있다. 2016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4년째인 ‘블루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직원들의 자발적 문화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블루 다이아몬드’는 탑다운 방식이 아닌 보텀업 방식의 자발적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공식 조직도 없다.

블루 다이아몬드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었던 데는 ‘선주’의 약속이 중요했다. 삼성창원병원 홍성화 원장님께 두 가지 부탁을 드렸다. 이 프로젝트는 6년 동안 진행해야 하는 문화운동이며, 진행되는 동안 지원만 하고 관여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 약속의 전부였다. 이 프로젝트에 경영진의 요구나 욕구가 포함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고, 진정한 자발성을 갖기 위해서는 원장단의 관여를 단절시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구성원들에게 방법론에 기대지 않고 원하는 방식으로 해결방안을 찾아갈 수 있게끔 도움을 드린 게 전부다. 어디에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공감할 것인지 등 우리만의 대안을 마련하는데 주력할 수 있게끔 도왔다. 즉, 품세가 아닌 실전 격투기를 가르쳤다고 보면 된다.

- 블루 다이아몬드 프로젝트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삼성창원병원에는 행복의 바다를 떠다니는 다섯 척의 배가 있다. 소통과 문화를 담당하는 ‘네버랜드 호’, 환자 서비스를 담당하는 ‘곤든 프린세스 호’, 진료 성과를 개선하는 ‘리미츠 호’, 마케팅을 담당하는 ‘스틸레토 호’, 미래 전략을 세우는 ‘파이러츠 호’ 등 다섯 개의 테마로 구성돼 있다. 2016년부터 시즌제로 진행되고 있다. 매 시즌은 5월에 시작해 11월 말까지 진행되며, 올해 시즌 4가 진행되고 있다. 블루 다이아몬드에 참여하는 이들을 ‘블루 다이안’이라고 부르는데, 블루 다이안을 대상으로 한 워크숍이 한 시즌 동안 3차례 진행된다. 각 호마다 10명씩 참여해 서로 다른 주제로 다양한 직군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한다. 정원은 50명이지만 올해는 지원자가 많아서 60여명으로 늘렸다.

- 문화운동이라는 게 생소한데 이를 경영진이나 직원들에게 이해시키는데도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블루 다이아몬드 문화운동을 시작하기 전, 문제 진단을 하기 위해 다양한 직원들과 인터뷰를 했다. 새 병원은 다 지어 가는데 분위기가 너무 안 좋았다. 냉소적이고 희망도 없었다. 무엇을 해도 이 병원은 안 된다고 생각하더라. 전 직원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했는데 그 조차 하지 말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다.

설문조사 중에 ‘5년 후 우리 병원의 위상은 어떻게 될 것 같나’를 묻는 질문이 있었는데 2016년 당시 ‘높아질 것이다’라고 응답한 직원들은 37% 밖에 안 됐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정도로 바뀔 것 같지 않았다. 근본적인 DNA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작한 게 블루 다이아몬드 문화운동이다. 첫 회부터 분위기가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실패할까 두려웠던 사람들이 많아 실패하는 경험을 쌓게 하고 ‘무엇을 바꿔보자’가 아니라 ‘함께 놀자’ 분위기를 만드는 데만 한 시즌이 걸렸다. 처음에는 환자를 위해서, 우리 행복을 위해서 뭘 해보자고 했던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시즌 4까지 오게 되니 2019년 설문조사에서 5년 후 우리 병원의 위상을 묻는 동일한 질문에 74%가 ‘높아질 것’이라고 응답했다. 정말 큰 변화다.

- 변화의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보나.
혁신이나 변화에 대해서 단어 자체는 좋지만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수동적이다. 살아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삼성창원병원에서는 ‘변화가 즐겁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투박해도 좋으니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행복하기 위해 우리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하는 노력들이 성과를 만들어낸 것 같다.

- 블루 다이아몬드 문화운동 후 큰 변화가 있다면.

3년 전 삼성창원병원에 갔을 때는 외래 간호사들이 환자들과 눈도 잘 안 마주쳤다. 하지만 지금은 살아있는 것 같다. 특히 A병동 사례와 같이 문화운동에 참여했던 블루 다이안을 지켜보던 동료들이 변화를 목격하면서 참여자가 늘었다. 1,000여명이 넘는 조직에서 블루 다이안은 60여명 밖에 안 되지만 이들이 병원 곳곳에서 문화를 전파하고 있는 셈이다.

- 병원 내부 직원들의 행복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어느 순간 병원 내 구성원들이 고급감정 노동자가 돼 가고 있다. 감정 노동자라고 생각하는 것이 틀리다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고 고치기 위해 숭고한 뜻을 갖고 있는 의료 전문가라는 사실이다. 의료 전문가는 누구보다 자긍심을 갖고 행복해야 한다. 이 사람들이 행복하고 자긍심을 갖게 됐을 때 이 감정들이 고객에게, 환자에게, 보호자에게 간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말 행복하길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가 나서야 하는데 그것이 짜릿하고 행복한 경험이란 걸 말해주고 싶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