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국회 토론회서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따른 입법방향 조언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모자보건법 등을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법 개정 시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백혜련, 민주평화당 정인화 의원, 정의당 이정미 의원 주최로 국회 입법조사처 대회의실에서 열린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입법과제’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강조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김동식 연구위원은 “이번 헌재 결정을 통해 확인된 것은 임신기간 전체에 걸쳐 여성은 자신의 몸을 임신상태로 유지할지, 출산할지 여부를 스스로가 결정할 수 있다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며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인격권의 핵심을 이루는 기본권임에도 불구 그동안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부 경우를 제외하고 제한돼 왔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동식 연구위원은 헌재 결정에 따른 후속입법 과정에서는 “권리로서 여성의 임신중단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어떻게 입법과정에 녹여낼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가장 먼저 자기낙태죄와 동의낙태죄는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특히 임신중단 결정 가능 시기와 관련해서는 “국가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임신 1/3분기, 일부 국가들은 2/3분기까지 여성의 요청만으로도 임신중단을 허용하고 있다”면서 “이번 헌재 판결에서도 단순위헌의견에서 14주가 되는 1/3분기에는 조건없이 여성의 결정에 따라 임신중단이 가능하게 해야한다고 했지만 사실 그 결정의 시기가 개인적 상황과 개인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에 의해 지연될 수 있는 만큼 임신중단의 시기(주수)를 설정하는 것은 여성이 충분한 정보와 상담을 통해 고민한 후 안전한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그 설정의 목적과 관점을 달리 적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부의 안전이 보장돼야 하는 만큼 안전한 임신중단을 위한 의료체계가 마련돼야 하며, 약물의 합법적 도입도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가장 중요한 것은 여성 누구도 위험한 임신중단은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안전한 의료체계를 마련하여 안전한 시기에 가능한 임신중단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와 교육, 상담을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료계를 대표해 참석한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김재연 법제이사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 존중을 위한 임신중단 허용 주수를 규정하려는 데 대해 “임신중단이 주수에 따라 위험하다, 위험하지 않다고 논의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8주라고 해도 의사의 경험과 능력에 따라 위험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이사는 “임신주수는 생리시작일이 기준인데 8주는 허용하고 9주는 안된다고 한다면 의사들이 9주라고 말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주수제한은 무의미하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는 “12, 14, 16주라고 하면 별차이 없을 거 같지만 14주는 12주 태아에 두배가 될 수도 있다”라며 “주수가 길다는 것은 출혈이 심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임신중절수술을 하는 의사는 합병증을 예견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위험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의사는 아예 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주수별 임신중절 허용은 의미가 없기 때문에 이보다는 낙태를 선택하게 되는 동기를 없애는 것이 낙태로 인한 사회적 논란을 해소할 수 있는 해법이라는 게 김 이사의 주장이다.

이밖에도 “많은 사람들이 임신중절수술로 의사들이 경제적 이득을 취한다고 생각하는데 아기를 지우지 않고 키울 때 산부인과 의사들의 수익이 10배는 더 많다”면서 “경제적 이득 때문에 의사들이 낙태한다는 얘기는 안했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헌법소원 대리인단 차혜령 변호사는 “지금 우리는 66년만에 낡은 법을 현재 수준에서 최선의 권리보장법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맞았고, 1년7개월의 시간을 벌었다”며 “정치적인 고려가 있을 수 있겠지만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 시간표를 정하고 논의를 성숙시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특히 “어느 나라가 최신의, 최선의 법률을 제정하고 있는지 연구해 참고할 필요가 있다”면서 “의료인, 임신한 여성, 그동안 임신종결의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청취하고 쟁점별로 하나씩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게 좋은지 심도 있게 논의한 후 논의된 내용을 성숙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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