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거부처분 하자는 단순 취소사유"…공단 "비용청구소송으로는 최초 선고"

의료법 상 이중개설 금지를 위반한 의료기관이라도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거부하는 처분은 위법하다는 판결이 나왔다.

다만 법원은 지급거부처분의 하자가 당연 무효사유가 아닌 단순 취소사유에 해당한다면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법원이 명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치과의사 9명이 국민건강보험공단을 상대로 청구한 요양급여비 지급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치과의사 A씨는 자신의 자금으로 물적 설비를 갖추고, 명의 원장과 동업계약을 체결하는 형식을 취하면서 실제로는 명의 원장에게 급여를 지급하는 조건으로 치과의사를 구인, 지점을 설립했다.

2005년 8월부터는 병원지원회사, 치과치료 공급업체, 지점개설 및 인테리어 업테 등을 세우고 친인척들을 대표자로 내세워 각 지점들과 거래하게 해 수익금을 취득했다.

그러던 2012년 2월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 ‘의료인은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개정되면서 기존의 동업방식으로는 지점들을 직접 개설·운영할 수 없게 되자, 외형상 지점 원장들과의 동업관계를 해지하고 각 지점의 점포를 명의 원장들에게 임차 또는 전차하는 계약을 통해 점포를 양수하는 형식을 취해 각 지점의 명의 원장들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외관을 갖췄다.

하지만 실제 운영은 이전과 같이 명의 원장들에게 일정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지점을 관리·했다.

이를 적발한 검찰은 2015년 4월, 공단에 해당 치과의사들이 의료법 제33조 제8항(이중개설 금지)을 위반했다며 공소제기, 약식명령청구 또는 기소유예의 불기소처분을 했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이에 공단은 해당 치과의사들에게 ‘의료기관이 국민건강보험법에서 정한 요양기관임이 확인될 때까지 2015년 11월 10일 이후 지급될 청구금액에 대해 지급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처분을 내렸다.

또 의료법 제4조 제2항 내지 제33조 제8항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지급된 요양급여비를 환수하는 처분도 내렸다.

지급거부액과 환수액은 각각 24억4,487만원과 24억6,199만원에 달했다.

이에 치과의사들은 “각 의료기관들은 의료법에 따라 유효하게 설립된 의료기관으로 건보법 상 요양급여비용 지급청구권이 있고 설령 각 의료기관들이 중복개설에 해당한다고 하더라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최종 지급금액으로 통보받은 2014년 12월부터 2018년 1월분의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청구권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 “공단의 지급거부처분은 아무런 법률상 근거 없이 이뤄진 것으로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무효”라며 “처분 당시 아직 지급 청구를 하지 않았거나 청구를 했더라도 심평원의 심사통보가 없었던 부분까지 지급 거부를 할 수는 없으므로, 공단의 처분 이후 진료를 하고 그 대가를 받기 위한 이번 청구에 어떠한 장애가 될 수 없다”고 항변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먼저 공단이 내린 지급거부처분이 위법하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먼저 “건보법은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대해 형사책임까지 지워가며 요양급여 실시의무를 강제하는 반면, 그 반대급부로 요양급여를 실시한 의료기관에 대해서는 그 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함으로써 법익침해의 균형을 맞추고 있다”면서 “만일 어떠한 의료기관에 대해 어느 하나의 의무를 인정하면서도 다른 하나의 의무를 부정하게 된다면 이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취지에 어긋난다”고 전제했다.

이어 “이같은 당연지정제 방식의 연역 및 취지, 요양급여기관의 의무 및 권리 체계 등을 고려했을 때 이번 사건과 관련한 의료기관들은 건보법 상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으로 인정된다”면서 “요양급여비용의 수급자격이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건보법 제47조의2는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청구한 요양기관이 의료기관 개설 조항을 위반했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으로부터 확인한 경우에 해당 요양기관이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의 지급을 보류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고 같은 법 제57조에는 ‘의료기관 개설 조항을 위반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는 자가 의료인의 면허나 의료법인 등의 면허를 대여받아 개설·운영하는 경우 개설자에게 그 징수금을 납부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의료인이 복수의 병원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경우에는 이 같은 명문 규정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아울러 “의료법 제4조 제2항, 제33조 제8항을 위반해 개설된 의료기관의 경우 개설허가가 취소되거나 의료기관 폐쇄명령이 내려질 때까지는 요양급여를 실시하고 보험급여비용을 공단으로부터 받는 것 자체가 법률상 원인 없는 부당이득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의료인이 의료기관을 중복·개설 운영했더라도 실질적으로 정당한 요양급여가 이뤄진 것으로 평가된다면 원칙적으로 그 비용을 지급하는 게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취지에 부합한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은 공단의 지급거부처분이 당연 무효사유가 아닌 단순 취소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며 치과의사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적법하게 개설되지 아니한 의료기관에서 요양급여가 행해졌다면 해당 의료기관은 건보법 상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요양기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존재하고, 이중개설 금지 조항을 위반해 개설된 의료기관이 건보법 상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할 수 있는 요양기관에 해당하는지 여부와 이에 대한 지급거부처분의 적법 여부에 대해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처분의 하자가 다툼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또 “행정행위는 공정력과 불가쟁력의 효력이 있어 설령 행정행위에 하자가 있는 경우에도 그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해 당연 무효로 봐야할 사유가 있는 경우 이외에는 그 행정행위가 행정소송이나 다른 행정행위로 의해 적법하게 취소될 때까지는 단순히 취소할 수 있는 사유가 있는 것만으로는 누구나 그 효력을 부인할 수는 없다”면서 “법원도 그 처분에 기속돼 행정처분의 내용과 달리 급부의 지급을 명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에 “법원으로서는 공단의 지급거부처분이 당연 무효가 아닌 이상 처분에 반해 공단에 요양급여비용 지급을 명할 수 없다”면서 “따라서 치과의사들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사건을 담당한 공단 김준래 변호사(선임전문연구위원)는 “이번 판결은 의료법 제33조 제8항을 위반한 경우 비용환수처분이나 비용지급처분과는 별개로 해당 의료기관이 곧바로 비용을 청구해 지급받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판단한 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 “이중개설 관련한 소송은 환수처분소송, 지급거부처분소송, 비용청구소송 등 셋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번 판결은 비용청구소송으로는 최초로 선고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치과의사들은 요양급여비용 지급청구 재판과 별개로 공단을 상대로 환수처분 취소 소송을 제기했으며, 1심에서 승소했다.

하지만 공단이 판결에 불복, 서울고등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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