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김유정 연구원, ‘HiPex 2019’서 라이프로그로 파악하는 환자의 삶 강의
“라이프로그 활용, ‘3분 진료’ 등 국내 의료 환경 맞는 한국형 모델 필요”

유방암 환자인 A씨는 항암치료를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손목에 시계형 웨어러블 디바이스(Wearable Device)를 착용하고 있다. 병원에서 제공한 이 디바이스는 A씨가 암 치료를 받는 동안 신체활동량을 비롯해 식단, 수면패턴 등의 ‘라이프로그(Lifelog)’를 저장한다. 디바이스를 통해 모아진 A씨의 라이프로그는 병원 내 데이터 저장소로 이동되고 다음 진료 시 암 치료 기간 동안 기초 체력을 유지하고 좋은 컨디션을 지속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라이프 처방(Life Prescription)’의 근거로 활용 된다.

A씨의 사례는 우리나라 대형병원에서 라이프로그가 활용되는 한 예다. 일부 국내 대형병원들에서는 라이프로그를 환자 진료를 위한 보조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라이프로그는 개인의 생활이나 일상을 스마트폰의 애플리케이션이나 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디지털 공간에 기록하는 모든 일을 의미한다. 의료분야에서는 주로 걸음 수, 수면시간, 혈당, 식사 기록 등 건강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데이터를 한정해 라이프로그로 활용하며, 환자의 병증에 따라 활용하는 라이프로그의 범위나 종류는 달라질 수 있다.

의사들은 라이프로그를 통해 환자를 잘 이해할 수 있고 환자는 이를 통해 자신의 건강에 대해 잘 알 수 있게 돼 향후 질병 치료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최근에는 이 같이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모아진 라이프로그를 의료기관에서 유의미하게 활용할 수 있을지, 그 방안에 대한 연구가 한창이다. 그 중심에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사용자경험연구실이 있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사용자경험연구실 이중식 교수와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유정 씨는 청년의사와 명지병원 주최로 오는 6월 19일부터 21일까지 경기도 고양시 일산 명지병원에서 열리는 ‘HiPex 2019 컨퍼런스(Hospital Innovation and Patient Experience Conference 2019, 하이펙스)’에 연자로 참여한다. 이들은 하이펙스 첫째 날인 19일 ‘라이프로그로 파악하는 환자들의 삶’을 주제로 강연에 나선다.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사용자경험연구실 이중식 교수(왼쪽)와 같은 연구실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 김유정 씨(오른쪽)

라이프로그로 파악하는 환자의 삶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사용자경험연구실은 분당서울대병원과 3년간 대사증후군 환자들의 이 같은 라이프로그를 활용한 건강관리 방안을 연구했다.

연구실은 대사증후군 환자들을 대상으로 라이프로그를 추적해 걸음 수, 수면시간, 식사, 감정, 스트레스 등의 데이터를 의료진이 분석하고 이에 대한 데이터 처방을 전자의무기록(EMR)에서 내릴 수 있는 시스템을 디자인했다.

연구실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유정 씨는 라이프로그를 활용한 환자 치료가 환자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프로그 분석을 통해 의사의 구체적인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물론 환자 스스로가 병증에 대한 인식을 높일 수 있어 치료에 직접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씨는 “환자들이 데이터를 기반으로 병증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기 때문에 병원에 갔을 때 의사의 조언에 따라 환자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게 되는 것 같다”며 “특히 과거 ‘운동을 더 하세요’ 정도에 그쳤다면 라이프로그를 활용하게 되면서 ‘일주일 후 내원할 때는 1만보 이상 걸으세요’처럼 수치로 더 명확하게 처방을 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향후 의료기관에서 라이프로그의 중요성은 점점 더 중요해질 거라고 전문가들은 전망했다. 하지만 라이프로그에 대한 해석과 활용에 대한 다양한 차원에서 국내 전문가들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환자가 만드는 라이프로그 데이터는 점점 더 중요해질 것”이라며 “환자들이 병원에 갔을 때 병증에 대한 전후 맥락을 보여줄 수 있는 게 라이프로그”라고 의료분야에서 라이프로그 활용의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하지만 김 씨는 “환자들이 모은 데이터들이 얼마나 정확하게 그 환자를 반영하는지 입증된 게 없기 때문에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돼야 한다”며 “개별 질병에 대한 의료진과 라이프로그 데이터를 어떻게 활용할지 국내 환경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라이프로그 활용, 한국형 모델 연구 필요

특히 전문가들은 의료현장에서 라이프로그의 활용을 주저하게 되는 이유로 대형병원의 고질적인 문제로 꼽히는 ‘3분 진료’를 지목했다. 또 환자의 개인정보에 포함되는 라이프로그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이나 의료법에 따라 공유가 불가능하다는 점도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숙제로 지적됐다.

이에 의료기관에서 라이프로그를 활용할 수 있는 한국형 모델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김 씨는 “대기 환자가 많은 의료진의 요구사항을 반영해 최대한 짧은 시간 안에 환자 데이터를 확인할 수 있도록 인터페이스를 만들어 임상 환경에서 테스트를 해봤다”며 “없던 게 생기니 당연히 진료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어 사용을 주저하게 되는 이슈가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한국은 여전히 법적으로 막혀 있는 부분이 많고 보험 문제도 따른다”며 “라이프로그를 활용하면 진료시간도 늘고 의료진의 인지부담은 늘지만 인센티브가 없는 상황이다. 질적 케어가 가능하려면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도 했다.

김 씨는 “의료는 문화적으로 구성된 부분이 많다. 의료진과 환자 관계도 나라마다 모두 다르다”며 “이에 따라 한국형 모델을 개발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하이펙스(HiPex)는 지난 2014년 처음 개최된 이래 매년 환자경험과 서비스디자인을 주제로 보건의료계 관계자 수백명이 참가하고 있다.

올해 개최되는 ‘하이펙스 2019’에서는 환자경험서비스의 숨겨진 영역 찾기, 의료진은 모르는 환자 이야기, 입원전담전문의 제도와 환자경험평가 등을 주제로 한 다양한 강의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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