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법 상 개설 허용되는 의료인에 의해 운영”…일반 의료기관과 차이 없어
공단 김준래 변호사 “기존 대법원 판결과 논리적 모순…추가판단 필요”

대법원이 의료법 상 금지되는 이중개설 의료기관에 대한 요양급여비용 환수 처분을 연이어 부당하다고 판단한 것을 두고 그 배경과 향후 변화에 대해 의료계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이번 대법원 판결이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1인 1개소법(의료법 제33조 제8항) 위헌법률심판 사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출처:대법원 홈페이지)

지난달 30일 대법원은 이중개설 의료기관과 관련한 요양급여비환수처분 취소 소송에서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상고를 기각하며, 공단의 환수 처분이 부당하다는 원심 판결을 인용했다.

또 진료비지급보류정지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는 이중개설을 이유로 ‘진료비 지급을 보류한 공단의 처분이 적법하다’는 항소심 결정을 부정하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했다.

지금껏 하급심에서는 이중개설금지 위반 의료기관에 대한 환수처분이 부당하다는 판결이 여러 차례 나왔지만 대법원이 이를 인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은 먼저 국민건강보험법과 의료법의 입법목적과 규율대상이 다르다고 판단했다.

건보법은 질병의 치료 등에 적합한 요양급여 실시에 관해 규정하는 법률임에 비해, 의료법은 모든 국민이 수준 높은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의료인, 의료기관 및 의료행위 등에 관해 규정하는 법률이라고 구분 지은 것.

따라서 건보법에 의해 요양기관으로 인정되는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의 범위는 건보법과 의료법의 차이를 염두에 두고 건보법에서 정한 요양급여를 실시하는 기관으로서 적합한지 여부를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게 법원의 입장이다.

즉, 대법원은 의료인이 둘 이상의 의료기관을 다른 의료인 명의로 개설·운영했더라도, 해당 의료기관이 의료법에 의해 의료기관 개설이 허용되는 의료인에 의해 개설·운영되고 진료행위가 이뤄진다는 점에서 이중개설금지 조항을 위반하지 않은 의료기관과 차이가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의료인이 의료법에 따라 의료기관을 개설, 건강보험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에게 건보법에서 정한 요양급여를 실시했다면 설령 이미 다른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고 있는 의료인이 해당 의료기관을 실질적으로 개설·운영했거나, 의료인이 다른 의료인의 명의로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한 것이어서 의료법을 위반한 경우라 할지라도 그 사정만을 가지고 그 의료기관이 건보법에 의한 요양급여를 실시할 수 있는 요양기관인 ‘의료법에 따라 개설된 의료기관’에 해당하지 아니한다거나 그 의료기관이 요양급여비용을 수령하는 행위가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에 의해 보험급여 비용을 받는 행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진료비지급보류정지처분 취소 소송에서도 같은 논리를 보이며, 원심의 판단이 부당하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의료인으로서 자격과 면허를 갖춘 A씨가 자신의 명의로 의료법에 따라 병원에 관한 개설허가를 받았고 해당 병원에서 건강보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인 환자에 대해 질병의 치료 등을 위한 요양급여를 실시한 후 공단에 대해 요양급여비용을 청구했다면 중복 운영하는 의료기관이라는 이유를 들어 이에 대한 지급을 거부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원심은 ‘해당 병원이 의료법에 따라 적법하게 개설·운영된 의료기관이 아니어서 요양급여를 실시할 수 없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A씨가 청구한 요양급여비용을 지급을 거부한 공단의 처분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러한 원심의 판단은 건보법에서 정한 요양급여를 실시할 수 있는 의료기관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판결이기에 이를 파기하고 사건을 다시 심리·판단하도록 원심법원에 환송한다”고 밝혔다.

한편 법무법인 지평 김성수 변호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부당이득징수로 환수하거나 미지급하는 급여는 사실 건보법 상 허위청구와 무관한 것으로 당연히 지출돼야 하는 의료비”라며 “공단 방식대로 하면 오히려 진료가 필요한 환자에게 적정한 진료가 제공됐음에도 공단은 그에 대해 비용 지불을 면제받거나 강제 상환한 게 돼 부당이득을 누리는 것과 같다”고 평했다.

김 변호사는 또 “대법원 판결은 중복개설금지 조항이나 그에 대한 중복개설자의 중한 처벌 규정 자체는 합헌으로 보고 있고 오히려 그런 처벌규정이 유효하게 적용되기 때문에 실제 그 위법행위나 가담정도가 극히 가벼운 명의상 개설자가 감당할 수 없는 과도한 부당이득 징수 처분의 대상이 되는 건 불합리하고 불필요하다고 해석한 것”이라며 “이번 판결은 오히려 헌재가 중복개설 금지 규정이나 그에 대한 처벌 규정을 합헌으로 해석할 가능성을 높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공단은 이번 대법원 판결이 기존 입장과 모순된다고 비판했다.

공단 김준래 변호사(선임전문연구위원)는 “이번 대법원 판결은 의료서비스의 질이 보장된다면 환수가 불가하다는 판단인데, 사무장병원 경우에도 의료인이 의료행위를 하기에 의료서비스 내지 요양급여의 질은 담보된다”면서 “이에 대해 대법원은 비용을 환수하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형평에 반하는 판단이며, 논리적으로도 서로 모순되는 판결”이라고 지적했다.

또 “배후의 의료인이 개설·운영했다면 여러 개를 개설해도 적법하다는 것인데, 과연 ‘의료인이 개설·운영했다는 것’을 어느 범위까지 인정할 것인가에 대한 판단이 없어 향후 추가적인 판단을 받아야할 필요성이 있다”면서 “배후의 실질 개설 운영자가 의료인이라고 해 주식회사를 도구로 의료기관을 운영하거나 비의료인을 대리인으로 보내서 개설명의 의료인들을 지휘 감독하는 것도 가능한 것인지, 그렇다면 이것은 사무장병원이거나 사무장병원 보다도 더 비난가능성이 중한 것인데, 이러한 운영도 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울러 “이번 판결이 현행법을 사문화 시키고 실질적으로 여러 개의 개설을 허용하는 것이라면 판결이 아닌 법을 개정해서 허용해야 한다”면서 “국민으로부터 선출된 입법자의 입법의도에도 반하는 판단”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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